사람은 자연을 닮았다
화초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진 않았고, 매일 아침마다 잘 있나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봐주고 주말마다 물을 주며 잘 자라라 노래를 부르는 정도다. 브이로그 카메라를 들이밀며 ‘이거 보세요, 너무 귀엽죠~?’라는 말을 여러 날 반복하는 정도다. 그게 재미에 푹 빠진 건가?
세상 모든 것은 사람 또는 사람의 인생과 조금씩 닮았다. 사람과 삶도 세상 모든 것과 닮았다. 초등학생 때 수학을 조금 더 심도 있게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프렉털 구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배웠다.
프랙털 구조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위 이웃님의 재미난 포스팅 참고 부탁드립니다:)
프랙털 구조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이다. 위 삼각형의 일부를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아까 봤던 전체 구조가 또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알고 보면 이 우주 전체가 프랙털 구조이며, 그렇게 따지면 내 안에도, 내가 키우는 화초 안에도 내가 있고 우주가 있고 이 세상이 있다. 그래서 한 인간은 화초가 자라는 걸 보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서론이 길었다. 화초에 새싹 봉오리가 맺힌다. 그 봉오리가 정말 작은 싹이 된다. 애기 치아 나는 것을 보는 것마냥 귀엽다. 봉오리가 아주 작은 싹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하지만 싹이 한 번 트이면 작은 잎이 커다란 잎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잠재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의 작은 싹을 틔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이후의 성장은 놀랍도록 빠르다. 그 시간을 미처 다 기다리지 못해 그대로 시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싹이 ‘푸하‘ 하고 바깥공기를 향해 숨통을 트고서도 푸르른 잎이 되지 못하고 썩은 채로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잎사귀 하나하나로 보지 않고 화초 하나로 본다면? 우리가 이리저리 뻗어둔 봉오리가 많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푸르른 잎사귀를 내놓으면서, 가끔은 썩은 잎사귀도 보이면서 그렇게 생존해 나가는 것이다.
화초가 자라는 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그러나 적절한 것들이 필요하다. 물을 적게 줘도 안 되지만 너무 많이 줘도 안 된다. 무성하게 자라는 것도 정도가 과하다면 필요한 곳에 양분이 전달되지 않으므로 잎을 정리해줘야 한다. 고마운 누군가가 주는 적당한 햇볕과 물과 바람과 사랑을 맞으면서 푸르게 예쁘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사실 화초를 키우는 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두 차례 화초를 죽인 적이 있다.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는데 통풍이 안 되는 원룸이 문제였는지, 초절정 무더위가 문제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식물 키우기에 무지한 내가 문제였는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더니 기어이 생을 다해버렸다.
그때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진짜 상처 입음ㅠㅠ) 괜히 식물을 키워서 죽이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만약 실패할 것이 두려워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렸다면 이런 기쁨은 맞이하지 못했겠지. 그런 마음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얼마나 많을지, 실패를 맞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성공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을지. 화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나저나 화초의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뭘로 지어줄지 고민이다. ‘화초’라고 칭하는 건 나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없으니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내가 없는 시간에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으렴. 나도 바깥세상에서 성장하고 올게!
+) @물결 님께서 ‘초하’라는 좋은 이름을 주셨답니다! 청초하고 기분 좋은 이름이 저도 쏙 마음에 들었지 뭐예요! 감사합니다:D
초하야 이름이 늦어서 미안해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