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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렸을 때 잘 탔던 놀이기구가 지금은 무서울까

손에 땀 나

by 잘 사는 진리

오늘도 정처 없이 인스타그램 탐색 탭을 구경하다가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의 시점에서 수직 낙하 하는 영상을 봤다. 으. 손에 땀 나.


어렸을 때는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같은 공포의 놀이기구를 잘 탔다. 한 번 타고 내려와서 신이 나게 다시 타러 가서는 세 번을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와 오늘 놀이공원에서 제대로 놀았다~”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놀이공원은 알록달록한 세상, 어린이들의 생기가 넘치는 세상을 구경하러 가는 목적이 더 커졌다. 그것마저 ‘차라리’ 그렇다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놀이기구가 주는 즐거움은 전혀 없다. ‘왜 내가 이걸 타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더 크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구글링도 해보고 유튜브에 검색도 해봤지만 어른이 되고서 무서운 놀이기구에 거부감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나와있는 콘텐츠는 없었다. 어느 기사 칼럼에서 유일하게 하나 건진 것이 어렸을 때 놀이기구에서 한 번이라도 공포감을 느꼈다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의 맨 아래에).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 재밌던 것들이 지금은 재미가 없다. 더 이상 새롭지 않고, 그것 말고 놀 것, 즐길 것이 많다. 놀이공원은 부모님이 보내주는 것이지만 자유이용권으로 입장을 하고 나서는 내 의지로 자유롭게 논다. 간섭에서 잠시 벗어난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놀이공원이 아니고서도 자유를 느낄 곳은 많다. 재미있고 싶으면 내가 재미를 느낄 만한 곳에 내가 번 돈을 잘 쓰면 된다.


이유 없이 그 자체만을 즐기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게 되고, 굳이 내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나를 던져놓지 않게 된 것도 한몫한다. 합리적인 것인지 현실적인 것인지 아무튼 그렇다. ‘그거 하면 돈이 나오나, 뭐가 나오나’ 하는 말도 있지 않나. 그 자체만의 재미로 하는 것들이 많지 않다. 교훈이 있어야 하고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이리저리 따지고 핑계를 대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어른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많은 것들에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는 게 어른이기도 하다.


놀이기구를 잘 못 타게 된 건 중요한 건 아니다. 놀이기구가 아니라도 많은 것들에 그렇다는 게 찔린다. 낭만도 없고 도전정신도 없고 이런저런 걱정만 많은 내 모습이 괜히 거기에 투영된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손에 땀을 내봐야지. 생각 없이 덤비고선 그저 즐겁다고 웃을 줄도 알아야지. 무섭고 두려워도 시도해 볼 줄 알아야지.


그나저나 아까 언급했던 어릴 적 놀이기구를 타면서 느꼈다는 공포감 썰.


경주월드로 소풍을 갔을 때, 토네이도 바이킹을 탔다가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유독 타기 싫게 생겼던 놀이기구지만 친구들이 하도 타자고 해서 탔는데, 안전벨트가 헐겁고 몸과 기구의 유격이 너무 커서 뭔가 잘못된 줄 알았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다른 기구보다 지나치게 컸다. 출발하고서 얼마 되지 않아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사장님(?) 이거 잘못됐어요!”

진심으로 잘못된 줄 알았다. 그간 내가 탔던 놀이기구는 몸과 기구가 딱 밀착되어 있어서 불안감을 주지 않았다. 그 무섭다는 드라켄이나 T 익스프레스도 막상 타보면 몸이랑 기구가 잘 붙어 있어서 탈 만했다. 하지만 토네이도 바이킹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 죽어요!!!! 제발요!!! 멈춰주세요!!!!”

몇 번의 스윙이 반복되고서 이놈의(?) 기구는 원래 그렇다는 걸 직감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는 이상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 으어어.... 으어어....”

그날 도시락으로 싸간 걸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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