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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l 14. 2023

30대를 앞둔 직장인의 역류성 식도염

역시 건강이 최고여

저는 제가 저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1%는 안다고요. 알려고 노력하고 있고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몸이 아플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건강했습니다. 잠깐 며칠 아프고 나면 멀쩡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요. 근데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30대로 넘어갈 때쯤에 꼭 한 번 아프더라면서요.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골치 아픈 훈장,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습니다.


과식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과식을 했거든요. 생일 주간을 기해서 평소보다 맛있는 걸 많이 먹었어요. 근데 시작은 그러했으나 경과를 지켜보니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의사 선생님을 3주째 찾아가는 중이에요. 2주 동안 의사 선생님들 말을 잘 들으며 식사를 조심조심하다가, 중간에 괜찮아진 줄 알고 소고기를 먹었는데 식도염이 세게 도져서 어제는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기피하던 죽을 한 그릇 사서 점심, 저녁에 나눠 먹었습니다.


역류성 식도염 후기를 찾아보니 2주 만에 나은 사람도 있고 몇 년이 걸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퇴사를 하니 씻은 듯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있는 팀의 선배님은 그렇게 아프더니, 2주 동안 회사를 쉬고 해외여행을 가니까 싹 나아서 바리바리 챙겨갔던 죽을 안 먹고 현지식을 잘 먹었다고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아, 역시 퇴사를 해야 하는 걸까요? 대출 잔액이 떠오르네요. 그건 안 됩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나오는 영상을 몇 개 찾아보니 역류성 식도염은 식도와 위 사이에 있는 괄약근(똥 눌 때 괄약근 말고 이 부위도 괄약근이라 한다고 합니다)이 제 기능을 못해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건 이 근육은 우리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해요. 그렇습니다. 응가용 괄약근과 대비됩니다. 그러면 무슨 기전으로 움직이느냐? 정확한 게 밝혀지지 않은 모양인데, 몸 주인의 스트레스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3주 차에는 항불안제(자낙스정 0.25mg)를 미량 처방해 주셨습니다. 후기들을 찾아보면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장 증후군 등등에 종종 사용되는 약이라고 합니다. 자기 전에 심장이 뛰거나 잠이 잘 안 오면 먹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지는 않아서 아직 안 먹었습니다. 머리만 대면 자요.


지난 몇 주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고민했던 것은, ‘도대체 어떻게 살면 좋은가’ 하는 것이었어요. 너무 진지하고 답도 없고 거창하죠? 저도 어이가 없어요. 근데 진짜 고민이 심각했어요. 제가 삶의 변곡점들에서 늘 해왔던 생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수준에서 상당히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성과를 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거죠. 회사에서든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든 말이에요. 그놈의 욕심이 문제입니다. 욕심은 항상 저를 좌절하게 했고 또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환영해 주기로 마음먹은 존재예요. 그래도 몸을 아프게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몸으로 탈이 찾아왔나 봐요? (아닌가, 그냥 내가 많이 먹어서 그런가... 그치만 몇 주 동안 약도 잘 챙겨 먹고 건강식 먹고 많이 씹고 삼키려고 노력했는 걸...)


아파보니 알겠다 싶은 건, 건강한 몸의 소중함이 1번이었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 출퇴근도 너무 귀찮고 집에 택시 타고 집에 갈까 생각할 정도로 힘들기도 하고, 확 휴가나 내버릴까 싶기도 합니다. 진짜 많이, 더 크게 아픈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제가 이거 조금 아프다고 엄살떠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느껴지더라고요. 먹으려고 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살려고 먹었다는 걸요. 사람들 대하는 것도 피곤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나름대로 친절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건강한 몸 덕이었나 봐요.


곧 여행을 갈 예정이라 그때는 진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7월 동안에는 정말 건강만 신경 쓸 생각입니다. 위에 나쁜 건 안 먹고요. 한 입 먹을 때마다 30번씩 씹고요. 싫어하는 죽도 먹고요(근데 막상 먹으면 맛있음ㅋㅋㅋ), 고강도 유산소, 근력 운동 대신 위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걷기도 할 거예요. 그리고 몇 년 동안 식도염으로 고생했다는 분 후기를 보고 양배추 효소 같은 것도 사봤어요. 이렇게 했는데도 안 낫는다? 그러면 선배님 후기대로 휴가를 아주 대차게, 2주 써보겠습니다. 껄껄.


낫겠죠. 나을 텐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으니 되려 걱정되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고기를 와구와구 못 먹으니 재미가 없기도 하고, 사실은 과식한 건데 괜히 내 정신 상태를 돌아보면서 더 걱정만 늘리고 있나 싶기도 하네요. 그렇게 스트레스-식도염의 악순환이 반복되고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식습관은 좀 고치려고요. 와구와구 먹는 버릇, 조금밖에 안 씹고 넘겨버리던 버릇 고치고, 건강한 식사의 비중을 훨씬 더 키워야겠어요. 9:1 정도? 참고로 못 먹어서 살 빠지겠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렇진 않네요. 대사가 느려져서 그런가?


아, 근데 아프기 시작한 시점부터 참 감사한 주변 사람들이 많습니다. 체한 건줄 알고 팀 워크아웃 자리에서 하루 종일 지압을 해주셨던 책임님, 일본에서 왔다는 약빨 좋은 약을 양껏 나눠주신 팀장님과 선임님, 병원에 가거나 집에 일찍 가라고 해주신 리더님, 구하기 어렵다는 아사히 드라이를 혼자만 먹어도 되는데 나중에 다 나으면 같이 먹자며 기다려준 남자친구, 찡찡거림을 받아준 엄마까지, 스트레스 받는 이유가 사람 때문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네요. 오히려 사람들 덕분에 다 낫게 생겼어요.


아무튼 건강 잘 챙기시길! 그래야 사는 게 재밌는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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