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MBTI 검사를 해보면 대체로 E가 나오지만, 야매(?) 검사들에서는 I도 꽤 나와요. 제가 맘 편히 보내는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저는 I 성향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걸 좋아하지만 너무 다수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요. 저 포함 네 명까지가 딱 좋은 거 같고, 그런 모임을 하고서는 충분히 쉬어 줘야 합니다.
증거가 또 있습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한 지 한 달 정도 되어 가는데요. 얼른 낫는 게 이달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 작정하고 쉬어 보자는 마음으로 월, 화는 휴가를 냈습니다. 주말에는 집에만 있었고, 오늘(월요일)은 나갔다 왔어요. 그러면서 느낀 건데, 저는 혼자 산책하고 놀러 다니는 걸 꽤 좋아하더라고요. 여기에서 중요한 건 ‘혼자’입니다.
흩어진 내적 에너지가 응축될 시간이 필요해요. 그게 신체로도, 정신으로도 이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에너지는 대체로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욕심을 내어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소싯적에 놀만큼 놀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대학생 때는 하루 네 개의 약속도 잡던 저였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하나도 많다 싶습니다. 혹시 지금까지의 가설은 다 틀리고,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늘 좋습니다. 그 대신 좋지 않은 사람에게 쏟는 에너지를 현저히 줄이게 되었어요. 인사치레로 만들어진 자리, 나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없고 남을 위해 내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하다가 끝나 버리는 자리, 그런 것들에 매기는 가치가 어렸을 때에 비해서는 줄었습니다. 물론, 그 기준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엄밀하게 따지기는 어렵지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불편할 게 뻔한 자리에는 굳이 참석하지 않습니다.
소심한 것과 내향적인 건 다르다면서요? 요즘은 그게 딱 느껴집니다. 저는 대체로 아무 데나 가서 말을 편하게 하는 편이고 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꺼리지 않아요. 남들이 보기에 저는 결코 소심해 보이지 않습니다. 할 말 다 하는 캐릭터예요. 그런 캐릭터가 유지되는 비결은 오히려 스스로 단속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수할 때도 있고 괜한 말을 했나 이불킥 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줄어든 것, 가능하면 정리된 생각을 말하는 습관 같은 것들이 그 증거일 수 있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회사 생활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고도 이야기하더라고요. 공교롭게도 회사 생활과 동시에 나이도 들고, 이런저런 변화들이 생겼다 보니 명확하게 회사 생활이 원인 변수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겠지요. 회사라는 제한된 사회에서는 만남을 통한 여러 가능성을 굳이 열어두지 않아도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내가 할 일을 잘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이러나저러나 이렇게 바뀌어 버린 내가 싫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요.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무게 추가 내 안에 내리 앉은 느낌이라서요. ‘어리고 빛나고 활달했던 내가 세상의 때에 쪄들었구나’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그 자리를 빛낼 줄 아는구나’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ENTJ라고 할지, INTJ라고 할지 고민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