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살면서 나의 집을 꿈꿉니다
제가 살게 된 집에는 집 자체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월세방은 주인에게 동의를 구하고 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집주인과 관리소장님께 말했고, 심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집주인에게 통보를 하거나 허락을 구한 후 수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일단 화장실 손잡이가 낡아 문이 꽉 닫히지 않고, 화장실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이 녹이 슬어 여닫는 기능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관리소장님께 말씀드려 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테리어 깨나 한다는 사람은 무조건 흰색으로 칠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체리 몰딩, 사실은 순백이었을 에어컨, 콘센트 및 스위치 커버는 심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바꿔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집주인 분께 체리 몰딩은 고민을 해보겠고, 직접 손이 닿는 콘센트와 스위치 커버는 교체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저분한 것이 깨끗한 것으로, 그것도 세입자의 돈을 들여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의지와 실천의 문제였습니다. 어머니와 본의 아니게 같이 살면서 퇴근 후 인테리어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체리 몰딩
요즘 이사를 준비하거나 집을 꾸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어플이 '오늘의 집'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의 집'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바로 체리 몰딩이었습니다.
'오늘의 집'에서 검색을 해보면 체리 몰딩을 살려 인테리어를 했다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흰색으로 새로 칠해서 공간 자체를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체리 몰딩을 그대로 살린 소수의 사례에서는 휴양지 풀빌라에서 선보일 법한 레트로 느낌의 플랜테리어를 하거나, 라탄 소재의 아이템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흰색으로 칠해버릴까?"
"내 집도 아닌 월세방을 뭐하러 그렇게 힘들여서 바꿔?"
"그래도 체리 몰딩을 그대로 두면 인테리어 하는 맛이 나겠어?"
"그거 칠하다가 디스크 나갈 바에는 안 하는 게 나아."
"몰딩에 맞춰서 다른 걸 다 살 수는 없잖아."
"몰딩까지 바꿀 순 없어. 그냥 대충 살지 뭐."
이것은 선택의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 그대로 두고 여기에 어울릴 법한 가구나 아이템을 넣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누런 에어컨
에어컨은 교체밖에 답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락스칠을 하거나 산화방지제를 이용하면 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것이다 보니 그 방법들은 사용하기가 꺼려졌습니다. 여름에 사람을 불러다가 청소만 한 번 확실하게 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흰색 커버를 덮어놓기로 했습니다.
호스는 철물점에 가서 호스를 감는 테이핑 천을 사 와서 칭칭 감아주었더니 나름 봐줄 만했습니다.
누런 콘센트 및 스위치 커버
콘센트 커버와 스위치 커버는 집에 들어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불러다가 교체할까 하다가 직접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능한 선에서 직접 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이게 가능한 것인지 전기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사촌동생에게 조언을 구하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관련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전선을 뺀 위치와 동일한 위치에 넣는다"는 원칙만 지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선 해보고, 안 되면 그대로 중단하고 사람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쿠팡에서 일자, 십자드라이버 세트와 콘센트, 스위치 커버를 구매하고 동네 철물점에 가서 나사와 목장갑을 샀습니다. 총 9개의 커버를 교체했고,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해냈습니다. 1구든 3구든 원래 커버에 꽂혀있던 대로 위치를 그대로 반영하여 새로운 커버에 전선을 끼우면 되었습니다.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던 주방의 콘센트 커버도 타일만큼이나 하얀 커버로 교체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여서 거슬렸던 콘센트와 스위치 커버들도 벽색과 비슷한 톤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요상한 스티커가 붙어있던 화장실 스위치 커버도 교체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에어컨과 벽에 딸린 콘센트, 스위치 커버 교체 전후
주방 콘센트, 스위치 커버 교체 전후
주방 후드 쪽의 콘센트 커버 교체 전후
화장실 스위치 커버 교체 전후
2구 콘센트 커버 교체 전후
3구 콘센트 커버 교체 전후
아주 간단하게 방법을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전하게 교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과 방법은 유튜브와 블로그에 꼭 다시 한번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1. (매우 중요) 두꺼비집을 모두 내려줍니다. 그리고 목장갑을 착용해줍니다. 혹시라도 셀프 교체를 하실 분이 계시다면 이 두 가지를 안 하고서는 절대 다음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안전에 관해서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이어도 괜찮습니다.
2. 콘센트 또는 스위치 커버와 벽 사이에 일자 드라이버를 넣어 커버를 앞으로 젖히면 커버의 앞쪽과 뒤쪽이 분리됩니다. 뒤쪽 커버의 나사를 돌려 빼면 커버와 벽이 분리됩니다.
3. 콘센트나 스위치 커버에 전선이 꽂혀 있을 텐데,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전선 색이 서로 같을 경우에는 따로 표시를 해둔다든지, 기존의 커버에서 하나의 전선을 빼고 새로운 커버의 같은 위치에 넣는 식으로 반드시 원래 전선과 기존의 커버 연결 구성과 동일하게 전선과 새로운 커버를 연결해줍니다. 유튜브 영상을 꼭 찾아봐주세요.
4. 흰색 버튼을 십자드라이버로 깊이 눌러주면 전선 끝이 톡 하고 튀어나옵니다. 그러면 새로운 커버의 위치와 동일하게 전선을 연결시켜주면 됩니다. 그리고 커버를 씌우고 나사를 조이고 커버를 덮어주면 됩니다. 유튜브 영상을 꼭 참고해주세요.
5. 전원차단기를 다시 회복시켜주고, 스위치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다음 누렁이에서 뽀얀 하양이로 교체된 모습을 즐겨줍니다.
대청소
어머니께서는 머무시는 동안 있는 대로 청소를 다 해주셨습니다. 저는 충실히 조수역할을 하긴 했습니다만, 대충 살아도 될 것 같았는데, 어머니의 열정을 거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주방 타일 틈새에 꼬질꼬질하게 끼여있던 기름 때는 하다하다 안 돼서 일자 드라이버를 동원해 스케일링하듯 긁어냈습니다. 화장실에 피어있던 곰팡이는 어머니가 락스를 이용해 벗겨내셨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남의 집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며 현타를 느꼈습니다만, 몸이 닿고 직접 사용하는 사람은 제 자신이다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인테리어를 하면 보람이 느껴질 만큼 배경이 잘 구축되었습니다. 두근두근 가구를 골라볼 차례입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