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살면서 나의 집을 꿈꿉니다
플랜테리어에 발을 담가 보았습니다
회사 덕분에 갖춘 인테리어 아이템이 꽤 있었습니다. 전에 있던 팀에서도, 새로 옮긴 팀에서도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예산을 제시해주신 선에서 제가 고른 거긴 합니다. 전에 있던 팀에서는 이불을 선물해주셨고, 새로 옮긴 팀에서는 화분을 선물해주셨어요.
해초 바구니와 함께 오는 몬스테라, 녹보수를 골랐습니다. 화분이 도착했다고 문자가 온 날 야근을 하고 10시에 돌아와서 새벽 2시까지 정리하고 가꿨는데도 피곤한 줄을 모르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화이트, 우드 인테리어에 화분은 정말 찰떡같이 어울려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꿈꾸던 나만의 예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아주 즐거웠습니다. '아주아주 잘 키워서 무럭무럭 무성하게 자라나게 해 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콧노래도 흥얼거렸습니다.
일장춘몽이었다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녹보수는 시들어갔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이파리들이 땅을 향해 추욱 늘어져 갔습니다. 평소 손재주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 식물도 잘 키울 수도 있을 거라는 논리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녹보수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시들 시들어갔습니다. 발코니에 내놓고 키우자니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어 걱정이 되었고, 실내에 두고 키우자니 너무 따뜻한 건 아닌지, 햇볕이 잘 안 드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건조한 것도 유의해야 하지만, 과습에도 유의해야 해서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이 아이를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인테리어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녹보수와는 작별 인사를 했고, 팀원들께 죄송하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팀장님이 즐거운 듯 웃으며 위로해주셨습니다.
"벌써 죽였어? 그래, 식물 키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지금 생각해보니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늘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하시는 책임님은,
"고속터미널 상가에 가면, 조화가 엄청 많아요. 저는 목화 있죠? 그거 샀거든요. 예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 이제는 생화를 키울 필요 없어요!"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아이고~ 불쌍한 녹보수~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집 중에 우리 딸네로 갔대~ 다른 집에 갔으면 더 잘 살았을 텐데~"
라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여러 모로 착잡했습니다.
몬스테라는 아직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이 친구도 생을 다해버린다면, 저는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을 것입니다.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귀한 생명을 집에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플랜테리어는 카페에서만 구경할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였거늘, '치국'과 '평천하'는 꿈도 안 꿨고, '제가'까지는 잘하고 싶었는데, 제 집에도 저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많더라고요. 하하.
갬성 조명과 우드 액자
회사에서 하는 이벤트가 있어서 응모했는데, 운이 좋게도 당첨이 되어서 10만 원 상당의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커다란 조명과 엽서나 사진을 넣어둘 수 있는 예쁜 우드 액자를 골랐습니다.
커다란 무드등은 집의 분위기를 바꿔주었습니다. 다른 가구와 참 잘 어울렸습니다. 머리 위에서 흐드러지는 벚꽃과 발밑에서 자라나는 들꽃의 느낌이 다르듯, 키가 큰 무드등이나 장스탠드는 책상에 올려두고 쓰는 조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샤워를 하고 파자마를 챙겨 입은 후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향수를 조금 뿌리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으면 포근하고 흐뭇해서 '캬-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우드 액자에는 제가 좋아하는 모네의 그림엽서를 꽂아두었습니다. 몇 년 전 대학생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 온 엽서입니다. 엽서가 많아서 생각날 때마다 바꿔 끼우면 될 것 같아요.
작은 화병은 조화 고사리와 세트인 제품이었습니다. 고사리를 잠시 빼둔 후 승진 선물로 받은 꽃들을 추려 꽂기도 했고, 친구가 집들이를 오면서 준 노란 튤립을 꽂아두기도 했습니다. 녹보수 육성 실패를 통해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생화를 사서 꽂아두게 될지 모르겠지만 생화나 조화를 꽂아둘 작은 화병이 있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도마는 친한 언니가 생일 때 줬던 선물입니다. 원래 도마 플레이트로 예쁘게 음식을 해 먹을 때 요긴하게 썼는데, 향수나 핸드크림과 함께 두니 꽤 어울리는 느낌이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저만의 스윗홈을 완성했습니다. 집을 예쁘게 꾸며두니 주중에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도, 주말에 집에서 푹 쉴 때도 행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