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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10. 2021

월셋집의 찐가치를 따지는 체크리스트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73만 원짜리 집의 가치를 따질 때, 또는 그에 대한 월 지출액을 따질 때 단순히 73만 원으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가치를 따질 때에는 액면 월세 이외에 다른 요소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선 글인 '집은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길래 살아보고 하는 말'에서 줄글로 나열했던 내용을 아래에서 질의응답식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나름대로 고려요소를 항목화하고 순서를 고려했습니다. 월세 임차를 기준으로 적어두긴 했으나, 대출과 세금, 거래량과 갭 가격 등 거래와 관련한 지표, 결혼 여부 및 자녀 유무로 인한 요소(배우자의 직장과의 거리, 학군 등)를 추가로 고려한다면 주택을 매매할 때에도 집과 입지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생각해볼 법한 항목들입니다.

 예시 답변은 제가 월세를 구할 때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며, 아래의 질문들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면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집에 대한 통찰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feat. 회사와의 거리,
교통비, 피로도, 생산성)



Q. 나에게 익숙한 지역은 어디인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일대

Q. 회사와 가까운 지역은 어디인가?

A. (예시) 강남 일대

Q. 회사 사람들 중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자취를 하는 곳은 어디인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일대, 강남 일대

Q. 위에서 선정된 지역에서 각각 살았을 경우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시간과 돈이 얼마인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에서 회사까지 출퇴근을 하면 시간은 왕복 1시간 이상, 교통비는 5만 원은 더 든다. 반면, 강남에서는 회사까지 도보 10~15분이다.

Q.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지옥철을 겪지 않는 대신 더 생산성 있게 살 수 있는가? 또는 훨씬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가?

A. (예시) 생산성은 모르겠지만 지옥철을 매우 싫어하는 나로서는 도보로 출퇴근 가능한 곳에 살면 훨씬 더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월세(feat. 기회비용, 씀씀이)



Q. 절대적인 예산의 상한은 얼마인가?

A. (예시) 보증금을 예금으로 묶어두었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포함한 월세가 월 80만 원 이하여야 한다.(*)

Q. 집을 대강 알아봤을 때, '이 정도면 그래도 못 살지는 않는다'인 집 vs. '이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다'인 집 간의 비용 차이는 얼마인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 1000/62, 강남 빌라 3000/73, 전자는 월 64만 5천 원, 후자는 80만 5천 원 수준이다.

보증금을 1.2%의 이자율인 예금으로 묶어둘 때의 기회비용 또는 3%의 이자율인 대출을 일으킬 때의 이자로 전환하여 계산하고, 거기에 월세를 더하면 월 액면 지출액을 대충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예) 대출금리 3% 적용 시,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
1000만 원*3%/12개월+62만 원=64만 5천 원
강남 빌라
3000만 원*3%/12개월+73만 원=80만 5천 원

참고) 카카오뱅크 예금이자는 1.2%, 전월세 보증금 대출이자는 최저 1.83%, 신용대출 최저 2.66%입니다. (2021년 3월 현재 기준)



집의 퀄리티



Q. 집의 절대적인 면적이나 옵션은 어떠한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은 5평 남짓, 강남 빌라는 9평 정도이다. 옵션은 강남 빌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나, 자가로 이사할 때 들고 갈 수 있는 가구나 가전을 구매하면 문제없다.

Q. 방향은 어떤가?

A. (예시) 애초에 남향만 고려했다. 하지만 월세는 동향이나 서향도 상관없다.

Q. 주변 환경은 어떠한가? 자주 가는 상점이나 외부에서 즐기는 취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은 대학생들이 많이 살다 보니 활기찬 편이며, 술집이나 모텔이 많은 편이다. 나는 산책 러버인데, 산책을 만한 곳이 근처에 없다. 강남 빌라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주거 분위기이다. 근린공원이 많아 산책할 곳이 많고, 집을 살펴보면서 미래에는 어디에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공부해볼 수 있다.

Q. 컨디션은 더 좋지만 월세가 더 비싼 집에 살면 씀씀이를 줄일 용의가 있는가?(**)

A. (예시) 매달 밖으로 나다니거나 쓸데없이 옷을 사는 데에 들였던 비용을 포함해 10~20만 원 정도 줄일 용의가 있다.

Q. 집순이/집돌이인가? 역마살이 낀 타입인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가? 그래서 예산을 늘릴/예산을 줄일 용의가 있는가?

A. (예시) 원래는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있었지만 요즘은 집에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밖에서 쓰는 시간과 비용을 집에 월 5만 원 정도는 더 들일 생각이 있다.



월세 거주 기간



Q. 앞으로 전세 또는 월세로 얼마나 오랜 기간을 살아야 하는가? 그 시간 동안 저렴한 곳에 사는 것과 비싼 곳에 사는 것과의 차이는 이자율 고려 없이 단순 계산을 했을 때 얼마인가?

A. (예시) 2년 또는 4년,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 1000/62에 사는 것에 비해 강남역 빌라에 사는 것이 매달 16만 원씩, 2년이면 384만 원, 4년이면 768만 원

Q. 교통비와 매달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한 씀씀이까지 포함하면 앞서 계산된 월세와 차이가 있는가?

A. (예시) 월 교통비 5만 원, 씀씀이 축소 최소 10만 원, 집순이 감안 추가 지불 용의 월 5만 원이므로 강남 빌라에서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나쁜 선택이 아니다.



시나리오



Q.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집 안에 있는 나의 모습과 행동과 표정을 상상해보면 어떤가?

A. (예시)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에서 나는 살짝 해가 질 무렵 아이패드를 켜놓고 옆으로 몸을 돌려 누워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냥 예능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다. 집이 너무 좁아서 짜증은 가끔 나지만 무던한 성격상 그렇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샤워할 때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힌다. 주방은 너무 좁아서 요리할 기분이 나지 않아 배달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더 많다. 배달을 시킨 것은 밥상을 펴서 바닥에 앉아 먹는데 이제 나이가 슬슬 들어가서 궁둥이가 배긴다. 허리도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 옷장이 좁아서 나름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강남 빌라에서의 나는 식탁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뭔가 끄적이고 있다. 차를 마시면서 가끔은 기지개를 켜준다.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재료, 또는 쿠팡 로켓 배송으로 시킨 재료들로 맛있는 것도 곧잘 해 먹는다. 찌뿌둥할 때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월세를 내고 나면 잔액이 얼마 남지 않는 통장을 보면 '이게 잘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가끔 들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잘 지낸다. (진짜 그럴까?)



최종 결정



Q. 그래서, 결론은?

A. (예시) 강남 빌라에 가서 즐겁고 행복하게 씀씀이를 줄이면서 하우스푸어로 살겠다. 그래, 어디 잘해봐라!




(*) 투자를 할 수도 있고, 예금 이자는 실질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지 않기 때문에 재테크에 대한 적성과 흥미에 따라 계산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원래 씀씀이가 작은 사람이면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하.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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