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주말, 등산 02
금정산 미륵암
금정산에는 미륵암이 있는데, 부장님이 준비하신 알찬 코스는 미륵암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조금 내려가서 고당봉까지 올라가는 것이어서 미륵암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어느 절이나 그렇듯 기도를 드리는 곳이 있었고, 몇몇 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몸의 뾰족한 부분을 바닥에 부딪혀가며 온 몸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수능이었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소원
어렸을 때는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지낼 때나 어딘가 명소에 가서 기도를 드릴 때 조상신이나 부처님, 온갖 신들께 바라는 게 참 많았다. 우리 가족 화목하게 해주세요, 제가 잘 되게 해주세요, 우리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종교는 없지만 빌 소원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별로 바랄 게 없어졌던 것 같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미륵암에서 전방에 부처님을 모시고 납작 엎드리긴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서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도 참 그렇고, 신이 있다면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게으른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지. 그렇다면 이런 높고 깊은 곳에 와서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도덕 시간에 들은 부족의 이야기처럼, 제대로 된 양심의 모양은 둥글지 않고 뾰족해서 터무니없는 소망을 들이밀 때마다 자꾸 찔렸다.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해서, '열심히 살 테니 응원해주십쇼!' 하고 말았다.
부장님의 진단
그럴 때가 있다. 이게 지금 내가 정상인 건가? 이런 나이에 생각할 만한 게 맞나? 모두가 다른 인생을 살고 나 또한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민간요법을 따라 자가진단을 하는 것처럼 그런 의문을 가질 때. 부장님들은 그럴 때 좋은 진단 키트가 되어주신다.
"부장님, 저는 이제 별로 기도드릴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열심히 하지 않고 뭔가를 바라는 게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요. 이상한가요?"
"아니지.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거야. 다만 노력하고서도 안 되는 게 있으니 나도 그냥 노력한 만큼만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려보는 거야."
좋은 부장님들의 말씀이 인생에 좋은 지표가 되는 것은 결코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특히 남 부장님은 더 그렇다. 남 부장님은 우리 회사 영업의 산 증인이신데, 말 그대로 수많은 경험을 하셨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셨다. 누군가는 그런 경험을 통해 인간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며 오만해지지만 부장님은 다른 이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쪽으로 연륜을 쌓으셨다. 부장님은 일반화된 남을 빌려 이야기하기보단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기도 드릴 건 없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좋은 어른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누구에게라도 드리고 싶었다. 표현이 커다란 편인 나는 부장님께 직접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부장님, 저는 우리 팀 부장님들이 진짜 좋아요. 저 다른 팀 가면 이제 더 좋은 부장님들 못 만날 거 같아서 걱정되는데 어떡하죠?"
그럼 부장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딴 팀 가도 다 있어~"
글쎄요, 제가 부장님 말씀 다 맞는 말씀이라 생각하지만 부장님처럼 좋은 분은 또 만나기 힘들 것 같은데. 부장님처럼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길, 후배들이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선배가 될 수 있길 기도, 아니 되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