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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빈 Dec 22. 2023

로봇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가 코 앞이다. 언젠가부터 설렘이 없어진, 아무 감흥도 없는 크리스마스를 두고 만감이 교차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크리스마스를 꽤 좋아했는데! 나는 의미충인 편이라 내 생일, 크리스마스, 연말과 같은 날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이다. 시간을 소중히 쓰겠다는 일념에서 비롯한 것으로, 1년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날이니,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랬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제는 전혀 아무 감흥도 없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캐럴을 들어도, 달력에 평일에 빨간 날이 떡 하니 표시 되어있는 걸 봐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이게 다다. 


'아.. 곧 크리스마스구나.' 


로봇이 되었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면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도 이런 점이다. 

옛날에는 오두방정 떨었을 일들이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되어버린.. 


20대 시절, 나는 표정에 나의 감정이 다 드러나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부장님의 말 한마디에 나의 감정은 들쑥날쑥 요동쳤고, 또 그게 얼굴이 빨개지거나 뿌루퉁해지거나 좋고 싫고가 얼굴에 확연히 다 드러났다. '안 돼, 표정 관리 해!' 마음속으로 소리쳐 봤자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랬던 나의 감정에도 장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선물해 줄 때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표현했고, 친구가 힘들 때 나는 슬픔을 느끼며 같이 울었다. 나의 표정에는 행복, 기쁨, 환희, 슬픔, 화남, 삐침 등등을 꽤 잘 드러냈고, 그랬기에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오히려 더 쉬웠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드러냄은 오히려 나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말 안 하면 상대방이 알 수 없지만 나는 표정이 다 말해주었으므로.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참 고마운 단점이다.  


그렇게 나를 숨기는 연습을 10년 동안 나는 부지런히 해왔다. 30대가 되고 나니 이제 나는 나의 바람대로 포커페이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포커페이스가 돼 보니 이제는 오히려 옛날의 내 모습이 더 그립다. 솔직하게 나를 표현하고, 나를 드러내고, 그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째서 나는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나 자신을 남들에게 표현하지 말고, 나대지 말고, 눈에 띄지 말라고 나를 억압하고 가둬두려 했나. 


나는 포커페이스도 가능하지만, 옛날의 역동적인 나를 찾기 위한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물해 줄 때 환하게 웃기, 친구가 힘들 때 같이 울어주기, 나의 표정에 행복, 기쁨, 환희, 슬픔, 화남, 삐침이 다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이제 나는 로봇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더이상 내 감정을 숨기려고 애쓰면서 살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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