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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

by 흰머리 짐승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아닌 앞날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막연합니다. 거친 스케치를 다듬고 색을 입힙니다. 그 모습에 이르는 지도까지 그리고 나니 꽤 구체화된 형상이 나타나는군요. ‘그래, 이대로만, 계획한 그대로만 가면 될 거야.’ 지도 위에 표시해 둔 이정표를 지날 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삶은, 특히 마흔 즈음의 시간은 꿈만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디다. 미처 그려 넣지 못한 돌부리가 자꾸 발끝에 걸려 불안에 시달립니다. 너무도 먼 그 시간 속에 아이들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고 얽히고 설킨 사람 관계, 재정 문제 따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다른 국면의 문제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의도된 계획은 제 안에서도 아직 의심받고 있습니다. 이러다 허울 좋은 선언으로 끝나지 않을까 무섭기까지 합니다. 삶은 불규칙하게 너울집니다. 이런 느낌에 사로잡힐 때는 달리면 좀 나아집니다. 좀 달리고 올게요.


25미터 레인 스물 내지 스물 한 바퀴, 1킬로미터를 지났을 즈음 삼두근의 긴장이 풀리면서 자맥질이 쉬워집니다. 한껏 차올랐던 숨이 잦아들며 마치 부유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 속을 달릴 때 뿐만 아니라 육지를 달릴 때에도 5킬로미터쯤 다다르면 비슷한 기분이 들죠. 길이 끝나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깁니다. 별안간 쓰러질 지도 모르는 스스로를 미리 부여잡는 몸의 영민함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지가 춤을 추는 그 순간의 역설을 참 좋아합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오랜 시간 운동을 지속할 때 몸이 가벼워지고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드는 시점을 말합니다.


러너스 하이는 참 매력 있는 순간입니다. 자꾸 근원 모를 의욕이 솟고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며 잔뜩 찌푸린 독일 아저씨마저 분위기 있어 보이기도 하죠. 언제나 올지, 오기나 할는지도 몰라요. 물 속 1킬로미터, 땅 위 5킬로미터도 대강 감으로 잡은 거리일 뿐입니다. 어떤 날은 그보다 일찍, 또 다른 날은 그보다 훨씬 늦게 찾아오기도 해요. 생일 아닌 날 받는 선물 같다고 할까요? 한데요, 러너스 하이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습니다. 자꾸 달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움직임에 오롯이 몰입해야만 나타난다는 것. 한 발 한 발 내딛는 관절과 근육의 감각, 들숨과 날숨의 리듬에 집중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달리는 동안 다음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까, 저녁으로 뭘 차리나, 오늘은 아이들하고 뭘 하고 놀아주나, 지쳐 보이는 아내에게 무슨 재롱을 부려볼까 따위 생각 들은 접어두어야 합니다. 곁눈질하다 접질리면 밥이고 글이고 못 지어내요. 노트북을 열면 문장은 나올 거에요. 아이들이 버둥거리면 라면이라도 끓이겠죠, 뭐. “당신 라면에만 특별히 달걀 두 개 넣었어.”라 하면 아내도 살짝 웃지 않을까요?


저 멀리서 흔들리는 목표, 꿈 따위 집어치우고 오늘 하루를 달릴까봐요. 언젠가는 노련한 살림꾼이고야 말테다 말고 오늘 저녁 당장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 생각만 해볼까 싶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노련한 살림꾼, 완벽한 아빠가 될 거야 말고 아이들이랑 #아무노래챌린지나 해볼까봐요. 언젠가는 노련한 살림꾼, 완벽한 아빠임과 동시에 유명한 작가가 되겠어 말고 오늘 하루 쓰는 문장들에만 집중해야겠어요. 파파스 하이(Father’s high), 라이터스(Writer’s high) 하이가 올 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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