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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나 유튜브 ‘중독’이잖아.”

“내가 탄수화물 ‘중독’이거든.”

같은 말을 두 시간 간격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셉니다.


생각과 말, 행동은 서로를 추동합니다. 말은 생각으로부터 튀어나오지만 내뱉은 말이 다시 생각을 조형하여 말을 짓기도 하죠. 그 가운데 일부의 말들은 행동으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사고의 틀 안으로 들어가 다시 말을 짓거나 사멸합니다. 머릿속과 혀끝, 손발 움직임의 선후 관계는 구조화하기 힘듭니다. 그러하다 하여 어쩌면 사람의 전부인 생각과 말, 행동이 제멋대로 춤추게 놔두기에는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극단의 표현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빨아들입니다. 인과 관계를 흐리죠. 갑자기 욱하는 것은 유튜브 영상의 선정성 때문이고, 머리가 무거운 아침은 전날밤 늦도록 새로 발견한 유튜브 다이어트 채널을 섭렵한 탓입니다. 현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인간의 성정에 비추어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과연 유튜브 시청을 줄이면 온화했던 원래 성격으로 돌아올까요? 오래된 피로가 사그라들까요?


어디 이 뿐일까요? 중간과 정도를 무시한 1과 0의 말들은 스스로의 행동을 가둡니다. 이미 배가 불러옴에도 국수나 밥을 시켜야 하죠. 커피를 마시지 않은 아침이 아무리 상쾌해도 스타벅스에 들러야 편해지는 것처럼 스스로가 내뱉은 자신의 성향이 자꾸 그 성향대로만 움직이게 만듭니다.


스스로의 삶을 객관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극단의 말들이 세상으로 향할 때 세상은 두 쪽으로 갈라지기에 이릅니다. 흑과 백 사이 수많은 회색들을 가린 채 나는 검은색인데 너는 나와 같은 검은색이냐, 아니면 하얀색이냐를 묻습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를 묻고 있지만 결국 궁금증의 핵심은 너는 내 편이냐 내 편이 아니냐로 모입니다.


“아빠 이거 몰라? 요즘 완전 핵인싸잖아.”

“이 게임 핵꿀잼.”

“와아, 개맛있어.”

열 살 큰아이가 요즘 자주 쓰는 말입니다. 아이들 입에서는 고운말만 나왔으면 좋겠지만 어디 마음먹은대로 되나요. 아직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상태 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간결함으로 이해합니다. 다만, 지금부터 아이의 언어 습관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해거름의 하늘이 깊고 깊은 다홍빛 뿐만 아니라 모든 색을 담고 있듯 세상에는 핵인싸와 아웃사이더, 핵꿀잼과 노잼, 개맛있는 음식과 개맛없는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동물 농장>, <1984>를 쓴 조지 오웰이 그랬대요.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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