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 1
수두에 걸렸습니다. 몸 속까지 가렵고 온몸이 뜨거웠습니다. 엄마는 옅은 분홍색 끈적한 약을 한 점 한 점 찍어 발라주면서 물집 터지면 곰보 된다고 긁지 말라 일렀습니다. 막상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가려움증과 열이 아니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은 동그란 벌레가 덮고 있었죠. ‘나는 사바나 초원 위 상처 입고 쓰러진 어린 사슴이야. 곧 무자비한 파리떼가 달려들테고 갈라진 틈새마다 가득 찬 구더기들은 채 영글지도 못한 뼈만 남을 때까지 꾸물거리겠지? 구더기들은 다시 무자비한 파리떼로 자라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날아갈 거야. 결국…… 나인지도 모를 나만 남겠지.’ 차라리 곰보 자국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가려움증과 그보다 더한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발병 첫날 새벽, 출근을 준비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조퇴하는 한이 있어도 학교는 보내야지” 또래들만큼 학교에 가기 싫어했던 열 살 아이는 얼른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면서 속으로 외쳤습니다. ‘나 학교 갈 수 있대. 괴물같이 변한 내가 밖에 나갈 수 있대!’ 엄마 손을 잡고 학교에 갔습니다. 등굣길에 몇몇이 찡그리며 쳐다보기는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전염병을 품고 학교에 가다니, 요즘 같으면 경을 칠 일이었겠지만 선생님 또한 교실 뒤쪽 따로 마련한 자리에 앉는다면 수업을 들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다시 열이 오르고 가려움이 심해져 한 시간쯤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구더기같은 얼굴 벌레들이 결코 나를 파먹어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 이미 저는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요? 얼굴 뿐만 아니라 온몸을 덮었던 물집이 잦아들면서 딱지가 내려앉았습니다. 엄마는 “우리 아들 낫는가보다.” 했죠. 검은 딱지는 투명했던 얼굴 벌레보다 벌레 모습과 오히려 더욱 닮아 있었지만 저는 더이상 상처 입은 사슴이 아니었어요. 여느 때와 같이 집 앞 공터에서 동네 친구들과 유리 구슬 따먹기, 야구 따위 하며 놀다 어둑할 때쯤 집으로 들어왔는데 엄마의 미간에 세 줄 주름이 잡혀 있었습니다. “아이고, 네 동생한테도 오나보다.”
동생 얼굴에 투명 물집 벌레들이 옮겨 붙기 시작했습니다. 세 살 어린 동생은 “엄마, 엄마……”만을 우짖고 있었죠. “엄마, 나한테 옮은 거지?”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만을 외치다 겨우 잠든 동생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데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날 밤의 촉감은 아직도 손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다음 날부터 한동안 친구들 얼굴을 몰래 살피기 시작했죠. 혹시 뾰루지같은 게 보이면 차마 묻지는 못하고 괜히 그 친구 옆으로 서성대기도 했어요. 제 얼굴에 구더기같은 벌레들이 드글거릴 때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불안했고 미안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하나 옮아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에!” 한다면 그야말로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불안의 정점으로 치달을 때는 그 불안을 강화하거나 경감하는 소식만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요. 감염자의 이야기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 달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불안의 원흉이었고,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으며 격리 처리되어야 할 희생양이었습니다.1) 모 종교 단체가 확산의 모체로 지목되면서 ‘감염자=특정 종교 단체 관련자=음흉하고 악랄한 사이비’의 모호한 등식이 성립되어왔습니다. 설령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신자라 해도 부러 바이러스를 껴안고 퍼뜨리려 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요? 광고주와 데스크 눈칫살에 ‘신천지 관련자’로 식별되어 온나라에 보도된 X번 감염자는 모두 광기 어린 눈의 신천지 교인일까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더 나가기 전에 한 가지 고지해야 할 것이 생기는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새로운 병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병에 걸린 자들을 집단화하여 매질해왔지요. 매독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영국인들에게 매독은 ‘프랑스 발진’, 파리 사람에겐 ‘독일 질병’,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들에게는 ‘나폴리 질병’이었고 일본인들은 ‘중국 질병’이라 불렀답니다.2) 우한 폐렴이라는 말은 이제 어느 보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매질 할 묵직한 덩어리를 찾습니다. 독일에 살고 있는 저는 혹시 독일인들 눈에 제가 그 덩어리의 일부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 밖에 잘 나가지도 않습니다.
살면서 새로운 전염병은 끊임없이 생겨날 것입니다. 아마 대략 얼마 주기로 유행하는지도 곧 알 수 있을테죠. 최근 10년 남짓의 기간 동안 기억나는 것만 해도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가 있었습니다. 증상도 유형화할 수 없고, 경과는 더욱 모르는 무서운 병들은 제가 수두를 앓았던 시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퍼질 거에요. 그 때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을테고 그나마 조금씩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절반 넘게 가려졌을 겁니다. 집 앞 마트 선반은 텅 비어버릴테고 동네 분식집에는 멍한 눈의 주인장 한숨 소리만 들릴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감염자를 가두어 확산을 막는다’는 개념은 무의미하겠죠. 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창살 안에 가두어 격리하는 형벌은 인간사와 궤를 같이 할만큼 오래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범죄들은 생겨나며 오히려 더욱 악랄해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끝내 살아남는 바이러스를 모두 잡아 가둘 수 있을까요? 이 때마다 누군가를, 어떤 기호를 가진 사람들의 묶음을, 지역을 솎아내는데 집중한다면 과연 남아나는 지구인이 있을까 하는 다소 과한 상상도 더해봅니다.
그럼 어떻게 이 불안을 타개해야 하냐고요? 모르죠. 저 따위가 그걸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다만 그 많은 마스크 어디 가져다 숨겼냐, 왜 중국인들의 입국을 못 막느냐, 막지 않는 것이냐, 못 막는 것이냐, 신천지 수괴들을 왜 잡아 가두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내는 시간에 제가 이 상황에서 가져야 할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광고 카피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고, 무서워 보이는 전염병이 무시로 퍼지는 현대 사회에서 치료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사명감과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으려면,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나랏님들이 목소리 큰 자들의 눈치 보는 시간을 줄이고 제대로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혹시 제가 될지도 모르는 감염자가 “나 많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또는 "감염되면 이런 증상과 경과가 나타나요”라 드러내 말할 수 있으려면 제가 견지해야 할 시선이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려고요. 이번만큼은 마흔 넘은 꼰대의 ‘제멋대로 세태 한탄’을 멈춰보려고요.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두 달이 넘은 지금에야 ‘감염될 지도 모르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소식 사이 사이 ‘이미 감염된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1) 2020년 2월 5일, 정관용 시사자키 출연자 박한천 (정신과 의사, 서울대 인류학과 소속)은 감염병의 대유행기 사람들이 겪는 심리 과정이 ‘불안->혐오와 배제->희생양 찾기’라 밝혔다.
2)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176쪽
표지 사진은 연합뉴스 3월 3일 <1129번 확진자의 꼼꼼한 일지..."무고한 시민에 피해 없길">의 사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