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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Mar 12. 2020

채식주의자

또는 간헐적 육식주의자

코끼리 발에 밟히거나 코에 채이면 영영 못 일어날 수도 있어요. 문과에 급제한 이몽룡은 그리운 연인이 기다리는 전라도 남원까지 내려올 때 엉덩이 튼실한 말 한 필을 하사 받았을 겁니다. 한겨울 눈 쌓인 산등성이를 타고 토끼몰이를 하다 보면 손아귀에 쥐는 건 토끼 귀가 아니라 흥건한 땀 뿐입니다. 결혼하기 전 아내는 물었습니다. “한우는 풀만 먹는데 왜 마블링이 예술이지?” 물론 그 때는 아내도 저도 한우가 사료를 먹고 자란다는 걸 몰랐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저는 매일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일정한 운동량에 관절과 근육이 적응하고 나면 몸은 자꾸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기 마련이지요. 5 킬로미터 달리기가 10 킬로미터를 넘어가고 거들떠보지 않던 바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만으로도 꽤 그럴싸한 멋이 나더군요. 운동량이 많아지니 덩달아 식사량도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식사량은 대체로 고기가 채웠습니다. 근육의 회복과 생성에는 단백질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렇게 몇 달을 보냈을까요? 한바탕 달린 뒤에도 몸이 가벼워지기는커녕 아침이 무겁고 종일 처지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운동량도 충분할 뿐더러 영양 상태도 좋은 제 몸이 왜 그랬을까요?


범죄 스릴러를 워낙 좋아하는 독일인들인지라 전세계의 범죄자들은 저희집 넷플릭스에 모여 있습니다. 도서관과 서점에도 Crime fiction 서가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지요. 아무렇지 않게 찌르고 쏴 죽이는 이야기를 아무리 싫어해도 하수상한 시기라 넷플릭스는 제게 유용합니다. 범죄물들을 걷어내다 발견한 영상물이 하나 있습니다. <THE GAME CHANGERS>, 이제 질리기까지 하는 ‘잘 먹는 일’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한데 열량과 체중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섭식과 운동 능력의 관계를 다루는 다소 독특한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운동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한 때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었던 미국 스프린터 칼 루이스, ‘I’ll be back.”을 외치면 어김없이 돌아왔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소환됩니다. 그 밖에 저는 잘 모르는 사이클 선수, 산악 달리기 선수, UFC 싸움꾼, 미식 축구 선수 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밝히고 각종 실험에 참가하죠. 하나같이 “소고기 스테이크, 닭가슴살이 아니어도 된다”를 넘어 “채소, 과일, 곡류 만으로 오히려 운동 능력이 더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부상과 회복이 일상인 그이들은 운동 능력 뿐 아니라 회복 속도 즉, 격한 운동 뒤 몸이 다시 가벼워지는 속도 또한 놀랍도록 빨라졌다 입을 모읍니다. 게다가 함께 인터뷰하고 실험을 진행한 의사들은 오히려 “육류가 우리에게 단백질 공급원의 역할을 한다면 바로 그 육류의 단백질은 어디로부터 왔느냐”고 반문합니다(왜 그러한지에 대한 과학의 근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남겨둡니다). 그 밖에도 '콩은 여성 호르몬 분비를 늘려 운동 능력을 낮춘다', '육류 단백질의 질이 식물 단백질의 질보다 우수하다'와 같은 통설에도 반대 근거를 제시하는군요.


우리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먹고, 먹은 걸 쓰고, 쓰고 남은 걸 버리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종일 한 무더기 건초만 우물거리는 코끼리가 왜 그리도 육중한지, 사람들은 미끈한 근육을 왜 채식주의자인 말의 근육에 빗대는지, 저보다 짧은 다리를 가진 조그만 토끼를 왜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는지 의 질문과 더불어 연애 시절 아내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한우는 풀만 먹는데 왜 마블링이 예술이지?” 더는 그 답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운동량과 음식량(육류 섭취량)을 늘린 뒤 제가 만성 피로에 시달린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존 관념을 뒤집는 이야기는 우선 의심부터 하는 고약한 성미를 가진데다 어떻게 세어도 나이 앞자리에 4를 지울 수 없는지라 아마 당장은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Vegan은 말할 것도 없고 생선, 달걀, 유제품까지는 허락된 Vegetarian으로 살지는 못할 겁니다. 대강 구워 소금 한 종지와 함께 올려도 맛이 나는 고기는 매일 가족의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제게 포기하기 힘든 선택지이기도 하고요. 다만 옳다 믿는 것마저 행동에 옮기기 주저하게 되는 나이와, 가정, 사회에서의 위치를 호기롭게 무시해보는 연습 삼아 ‘간헐적 육식주의자’로 살아 보려고요. 반 년쯤 지난 뒤 ‘활기 있고 상쾌한 삶을 위해 고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제 새로운 믿음을 행동에 옮긴 결과가 어떠할지 기대됩니다. 아내가 오래 전에 사둔 채식 요리책을 책상에 가져다놓음으로써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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