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 2
2020년 3월 16일, 독일 연방 정부는 최소한의 생활 유지에 필요한 상점과 시설을 뺀 모든 공간의 영업과 운영을 중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학교 문을 닫고 종교 집회 또한 금지했습니다. 이에 앞서 인접 국가와의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죠. – 폐쇄와는 다릅니다. 출퇴근, 물동과 같은 일상의 이동은 막지 않았습니다 – 국가가 전면에 나선 겁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물론 바깥양반마저집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활절 방학 전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으며 바깥양반은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을 빼고 당분간 집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북적대는 저희 집, 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지 별 수 있겠어요.
독일 연방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국가 개입의 목적을 “COVID 19의 확산을 지연시킴으로써 국가 의료 체계 과부하를 방지하는 것”이라 밝혔습니다. 다시 말하면 병원과 의료 인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감염자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는 말입니다. 요즘 독일과 인접국 –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따위 나라들 – 의 일일 감염자 수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에 이릅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경우 치명률이 8%를 상회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1918년 창궐하여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h4N1형 인플루엔자[주1]의 공포를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죠. 그러니 독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이 취하고 있는 시민 생활 적극 통제는 언뜻 보면 과하지 않아 보입니다. 한데 과연 그럴까요?
2020년 3월 14일 월간지 신동아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아래부터 안철수)를 인터뷰했습니다. 3월 14일은 의사 면허가 있는 안철수가 아내와 함께 대구 동산병원에 의료 봉사를 끝낸 날이었습니다. 3월 17일에 공개된 기사에서 (신동아가 인터뷰 원문을 소위 ‘마사지’하지 않았다면) 안철수는 감염병의 대유행이 국가 간 경쟁력 시험이라고 운을 띄웁니다. 이어 “메르스 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시스템 개선보다는 발등의 불만 끄려 했다. 현장 의료진은 메르스 사태 때 만든 규정이 코로나19와 맞지 않아 즉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더니(막상 현장 의료진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물론 지면이 허락하지 않았을수도 있고, 기자가 정말 '마사지' 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대만의 초기 출입국 통제, 마스크 물동의 국가 관리 기조를 칭찬하며 현 정부를 실력 없는 정권으로 규정하더군요. 아울러 감염병의 전문가가 아닌 의사결정권자(대통령이겠죠, 물론?)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2011년 이슬람 무장 테러 조직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회의 때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령관 자리가 아닌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이의 입술과 혀가 진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가정하면) 안철수에게 현 정부 사람들은 초기 강력한 대응에 실패하여 중국 다음으로 많은 감염자를 ‘양산’했고 마스크 수급 하나 원활하게 하지 못해 시민들을 우왕좌왕하게 한, 실력도 없을 뿐더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 부리다 이 사달을 낸 이들의 집단인 셈이군요. 이런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비단 안철수 뿐만이 아닙니다. 마침 안철수가 그 동안의 모든 정부 비판을 인터뷰 기사 하나에 편리하게 모아줬을 뿐입니다.
다시 독일로 돌아옵니다. 그동안 COVID19 감염에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않은 독일 정부가 처음 내 놓은 정책이 ‘문을 모두 걸어 잠그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제 마음같이 움직여주지 않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소리 한 번 빽 지르고 매를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독일과 유럽의 나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 지르고 매를 들기 시작한 겁니다. 의료 역량의 역부족을 인정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스스로 잦아들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독일이 늦게나마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오직 그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COVID19 유행 초기, 언론과 (4월 15일 총선을 앞둔) 야당은 중국 입국자를 왜 막지 못하냐고, 다른 나라는 아무렇지 않게 우리나라 시민 입국을 금지시키는데 왜 우리는 못하냐고 굴욕 외교라며 느닷없이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라 외치는가 하면, 마스크를 왜 집에 쌓아둘만큼 팔지 않느냐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능력을 운운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 방지에 있어 마스크 효과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물론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조금은 낫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유의미한 수준으로 감염을 막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요. 독일 보건복지부(Bundesministerium für Gesundheit)는 마스크 착용이 감염 방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까지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교수가 인터뷰한 COVID19 관련 기사[주2]
의 일독을 권합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들었느냐 깎아내리기 바빴지요. 단지 우리나라 정부는 다른 선택을 한 겁니다. 문을 닫는 대신 엄청난 의료 자원과 공항 출입국 관리 인력, 정부 부처 인력를 쏟아 부어 눈 부릅뜨고 문 앞을 지켜 온 겁니다. 어차피 경제에의 타격은 대규모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순간 국경 개폐 여부, 시민 이동 통제와는 무관하게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감염된 사람들을 한 시라도 빨리, 가능한 한 전부 찾아 살려낼 수 있는 만큼 살려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선택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국경을 봉쇄하지도 동네 가게들에게 문을 닫으라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쉬운 명령을, 그 쉬운 선택을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아베의 일본에게까지 말이죠. 안철수가 또한 지적했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의사 결정, 물론 필요합니다. 다만 COVID19와 같이 유례 없는 사안은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리기 마련이죠. 게다가 감염 경로, 전염 속도와 강도, 증상의 진행 과정, 예후 들을 아무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깜깜이 상황에서 의견이 갈리는 전문가들에게 의사 결정을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정은 고사하고 시민의 불안만 증폭시킬 겁니다. 안철수가 예로 들었던 군 작전, 즉 누가 적이고 그 적이 어디 있는지 알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아는 군 작전과는 본질이 다릅니다. 바로 그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최종 재가도 작전 참모들의 의견을 들어 결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했습니다. 장관, 대통령은 원래 군 작전 뿐만 아니라 이런 전대미문의 상황에도 의사 결정이라는 어렵고 어려운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겁니다. 독일에 사는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건 제가 살던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감염의 불안을 견뎌내고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를 돕기 위해 나서기까지 하는, 내가 숙주가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전염시킬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우리나라 사람 하나하나가 오스카를 휩쓴 봉준호 감독보다 훨씬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문도 걸어 잠그지 않은 채로 전염의 불길을 서서히 잡아갈 수 있는 건 문 안쪽에서 차분하고 또 차분했던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물론 바이러스 창궐을 이용해 국회 본회의장 좌석 몇 자리를 더 차지하겠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선동 근거를 제공하는 글쟁이들은 빼겠습니다.
이제 막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독일에서 저희는 ‘버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저희 식구들은 감염되어도 증상이 거의 없거나 잠깐 앓다 말 겁니다. 다만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다시 이 봄을 만끽하고 다가올 여름을 설렘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제가 살던 나라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버텨볼 겁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신동아 기사 : https://news.v.daum.net/v/20200317140306353
[주1]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 알려져 있으나 첫 사망자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명명한 것이므로 h4N1 인플루엔자로 표기
[주2] http://m.kmib.co.kr/view.asp?arcid=0014365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