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 3
마주 앉아 함께 일하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지금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아?” 창밖은 정말 그랬습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비를 뿌리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동네 하늘은 느릿한 흰 구름 한 덩이조차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한데 아내가 느끼는 비현실은 갑자기 맑아진 날씨가 아닙니다. 길고 축축한 겨울을 지나 이제야 산뜻한 유럽의 봄이 왔는데 응당 거리를 채워야 할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COVID19는 2020년 봄의 모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미리 계획한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지갑 없이 스마트폰만 가지고 나가도 하루를 먹고 즐기는 데 무리가 없는 2020년에도 대개의 독일 성인들은 평균 100유로(현재 환율 기준 약 13만 5천원)정도의 충분한 현금을 지니고 다닙니다. 아직도 현금만 고집하는 빵집, 레스토랑 따위가 있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자신의 재정 상태를 늘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이유가 더 큽니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소비 규모를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독일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연방 총리는 15년 총리 재임 기간 가운데 단 한 번도 없었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제발 집에 머물러 주세요. 지금 그것 말고는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준비성 철저한 독일 사람들은 COVID19의 무시무시한 확산세 앞에 아무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의 준비는 창고에 휴지와 장기 보관 식품을 쌓아두는 게 전부입니다. 독일은 지금 멈춰 있습니다.
독일에 살면서 아내와 제가 가끔 그리워하는 곳은 서울이 아닌 영국 런던입니다. 저희가 살던 동네는 ‘마을’이라 불러도 될 만큼 따뜻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웃집에 드나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웃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먼저 나서 도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죠. 직선 거리로 5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동네 중심가에는 다섯 곳이 넘는 Charity shop(자선 중고 물품 가게)이 있었습니다. 독일에 이사온 뒤 런던에 잠깐 놀러 갔을 때도 가게 안을 메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아이들 읽을 책들을 사 올 정도로 저희 또한 그 가게들이 익숙했습니다. 지난 주말, 옆집 이웃이었던 할머니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잘 있다는 인사와 함께 보내온 할머니의 메시지는 슬펐습니다. “마트가 비었어.” 문을 열고 함께 살던 사람들이 문을 닫고 마음까지 닫아버린 것 아닐까 싶어 더욱 슬픕니다.
2020년 3월 24일 GMT 10시 기준, COVID19 감염자는 196개국에서 38만여 명 발견되었고 이 가운데 1만 6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1]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 재난이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어디까지 갈 지 모른다는 겁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 앞에 사람들의 행동은 극단의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 아직 자신감에 찬 미국 사람들은 총포상 앞에 줄 서 혹시 있을지 모를 폭동과 약탈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본성에 가장 가깝다 여겨온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유례없는 위기 앞에 속수무책인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를 포함한 사람들은 비로소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할 겁니다. 다같이 살 길을 찾지 않으면 다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그래왔으니까요.
[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ppss.kr/archives/6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