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5
삶은 단 한 번도 100%가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다 잘 될 거야. 잘 하고 있어”와 같이 툭 던지고 내빼는 광고 카피가 아닙니다. 좋든 싫든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나 하루 스물네 시간을 살아내야 하지요. 스물네 시간 동안 저는 (정확히 제 몸은) 무엇인가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느끼는 순간마저 “저녁에 뭘 먹지?”, “이렇게 주말 오후를 날려 버릴 순 없는데……”, “이렇게 있는 것도 좋아. 거실 창틀에 못 보던 새가 앉았네. 가만 보자. 목덜미만 노랗잖아.” 따위를 생각합니다. 제 몸에는 전원 스위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생명 자체를 멈출 권리는 있어도 살아 있는 동안 움직임을 멈출 능력은 없습니다. 101% 또는 97%를 살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보름 동안 대개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고, 아내도 집에서 일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이것 저것 알아보고 사러 다니는 시간 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비어버린 건 아닙니다.
한 때 고전 음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무작정 검색하고 뭣도 모르고 CD들을 사들였습니다. 그 CD들은 두 번 이사하는 동안 ‘Fragile’ 딱지가 붙은 이삿짐 상자에 담긴 채 옮겨 다니기만 했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꺼냈습니다. 1악장 7분 45초 부근을 지날 때 아직도 눈을 감고 고개를 흐느적거리게 되더군요. 비발디 사계,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하이든 런던 교향곡, 바이스 류트 모음 들을 다시 들었습니다. 늦은 밤 식탁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면서 90년대 발라드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들었습니다. 90년대 댄스 음악 모음이 나올 땐 딸의 손을 잡고 춤도 췄어요. 음악이, 노래가 다시금 제 시간, 가족의 시간으로 들어왔습니다.
겨우내 돌보지 않아 엉망 된 뒷마당을 손질했습니다. 이미 새순이 돋기 시작한 터라 더 미루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전기톱까지 마련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어색할 만큼 작은 마당이라 점심 소화시킬 겸 한 시간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아내가 “저녁 먹어”할 때까지 끝맺지 못했습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드리기만 해도 툭 부러졌던 줄기와 가지들이 튼실해진 겁니다. 전기톱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봄, 시작의 질긴 생명력을 시(詩)가 아닌 톱질로부터 배웠습니다. “자, 아버님. 아기 손에 새끼손가락 살짝 가져가 보세요.” 10년 전 큰아이가 태어나던 날, 간호사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모로 누운 아이의 손아귀 힘을 기억합니다. 제 엄지손가락보다 작았던 손, 채 마르지 않은 다섯 손가락으로 아비인지도 모르고 힘껏 쥐던 그 대단했던 힘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의 기억으로 모처럼 아이들이 기어다니지도 못했던 시절의 사진들을 한참 넘겨봤습니다. 무섭고 모난 아빠가 되어버린 지금을 반성하면서 아들에게 “오늘 아빠가 재워줄까?” 해 볼까요? 큰아이는 “왜 이래, 갑자기” 할 겁니다.
혼자 있는 시간 거의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을 버무려 문장을 매만지는 일 말고도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 온라인 무료 강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으로 사진 잘 찍는 법, 부모 노릇의 과학, 집단 면역, 독일의 역사 따위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하여 죽을 힘을 다해 파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인 줄 알았는데, 죽을 힘을 다해 나누는 사람들도 참 많더군요. 아마 두 사람은 석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COVID19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 연일 수천 명의 감염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가 생겨나는 이탈리아의 좁은 골목,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Nessun Dorma(Let no one sleep 또는 No one sleeps로 번역)가 울려퍼집니다. 다른 골목 이름 모를 트럼펫 주자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시즘 저항 노래였던 Bella Ciao(Hello, Beauty 또는 Bye, Beauty로 번역) 연주를 시작하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안에 갇힌 사람들이 발코니로 함께 리듬을 맞춥니다. 돈 버는 시간이 사라진 삶의 국면들은 나눔이 채웁니다.
자신의 삶이 늘 부족하다 느낀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린다면, 이 슬픈 시기는, 늘 100%였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도 괜찮은 지, 덜어낸 그 자리에 무엇을 갖다 놓아야 하는 지 실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할 겁니다. 아마 석 달 전 어느 고단하거나, 무료하거나, 불안한 하루가 나의 100%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오늘은 뭘 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