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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Apr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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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며칠 전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느 시절로 가고 싶냐 물었습니다. 그 질문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구나 넘기려다 무심히 “나? 군대.”, “웬 군대?”, “그 때만큼 바보같이 놀았던 때가 있었을까 싶어.” 군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더욱이 공 차며 놀지도 않았습니다. 


나머지 시간을, 그러니까 제 인생에서 딱 2년을 뺀 시간은 온전히 바보가 아닌 자이기 위해 살았습니다. 바보처럼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바보처럼 속지 않기 위해, 바보처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간을 바쳤습니다. 바보이지 않기 위해 바보들 사이에 부러 엮여 들어가기도 했고, 에라이 바보들아 하고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을, 또, 착한 자로 ‘보이기’ 위해 살았습니다. 착한 자이기 위해 억지 웃음과 억지 눈물을 흘렸고, 궁금하지 않은 체 했으며, 궁금한 체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기억에 남는 자이기 위해 살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자이기 위해 수도 없이 그런 ‘체’ 했고, 기억에 남는 자이기 위해 선을 넘나들기도 했으며, 기억에 남는 자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과하게 솔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어제까지 그래왔으니 오늘도 그렇게 살아야겠어요. 다만 바보가 아닌 자이기 위해 공부하겠어요. 착한 자이기 위해 일찍 자고 골고루 먹으며 열심히 뛰겠어요. 기억에 남는 자이기 위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제 마음만 들여다보겠어요.


갑작스런 고해와 선언은, 오늘이, 딱 41년 되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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