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리 버튼 글, 그림《작은 집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지는 올해로 8년 차, 만 6년이 훌쩍 넘었다. 아들 시윤인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파트 숲에서 살다 온 4살 꼬맹이는 제주에서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까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우리가 제주로 이주한 것은 아이를 자연과 함께 키우고 싶은 이유가 컸다. 푸른 바다와 더 푸르른 숲 그리고 넓은 하늘을 눈과 마음에 담기를 원했다.
8년 전, 제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에게 "우리 제주에서 사는 거 어때?"라고 했고 남편은 "그럼, 우리 그냥 집이나 알아볼까?" 인터넷으로 제주 오일장 신문과 카페를 뒤져 찾은 우리의 첫 번째 집은 북촌리의 다세대 주택. 당장 1박 2일 일정으로 집을 보러 왔다 덜컥 계약까지 하고 그렇게 무작정 제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엔 정말 떨리고 설레는 맘으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늘 가까이 있던 동생네와도 멀어지고 친정, 시댁 다 서울인데 우리만 달랑 이 섬으로 떨어져 나왔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저 먼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작은 집 이야기》의 시작이다. 내가 30년 가까이 지내왔던 나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 작은 빌라에 우리 집이 생겼다. 책 속 작은 집이 언덕 위에서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행복했던 것처럼 나도 저 넓은 바다가 저 푸르른 숲이 내 것인 거 같아 행복했다. 낮에는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고 밤이면 유독 선명한 달과 별을 바라본다. 봄이면 지천에 핀 벚꽃나무의 꽃잎 비를 맞는다. 여름이면 뜨거운 햇살을 즐기며 바다로 향한다. 가을이면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를 만나러 오름에 간다. 겨울엔 누군가에게서 얻어 온 귤을 까먹으며 그렇게 지낸다 (여기 있다 보면 귤을 돈 주고 사 먹는 일이 드물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책 속 작은 집이 지내는 4계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집이 하듯 나도 이 자연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꼬마를 지켜본다. 꼬마는 바다와 숲을 사랑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책을 보면서도 개발로 인해 작은 집 뒤로 사라져 가는 나무를 보며 무척 안타까워하는 그런 어린이.
그러고 보니 지금 살고 있는 "함덕"만 해도 그렇다. 점점 나무들이 사라지고 새 건물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보니 몇 년째 여기저기서 공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동네의 모습도 알게 모르게 바뀌고 있다. 원래 건물이 많지 않은 곳이라 더 티가 나는 걸 수도... 시골에 사는 입장에선 안타까움도 있지만 편한 점도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소아과가 없어 아이 병원도 몇 킬로나 떨어진 아파트 단지가 있는 시내 언저리 동네까지 다녔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타벅스에 올리브영까지 생활이 점점 편해지고 있다. 그런 생활의 편리함을 얻은 반면 마음속 나만의 바다와 숲은 잃어버렸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던 7,8년 전엔 아무도 없는 저 에매랄드 빛 바다가 나만의 보석이었는데 이젠 모두의 소비재가 된 것만 같다.
책은 세월이 지나 폐가가 되어 홀로 있는 작은 집을 보여준다. '작은 집'만 빼놓고 모든 게 변해갔다. 교통수단과 사는 집들이 변하고 사람들도 바빠진다. 그리고 계절조차 알 수 없는 도시가 된다. 내가 살았던 도시도 저런 모습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까지 비추는 밝은 빛 때문에 달과 별을 볼 수 없고 먼지와 매연, 소음으로만 가득 찬 그런 곳이었나? 내 기억 속 내가 살던 도시는 가로등 불이 밤하늘의 별은 아니지만 별빛처럼 느껴지던 곳이었다. 높은 빌딩 때문에 하늘이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비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시골의 뜸한 길과는 달리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자연보다는 사람이 가득한 곳. 비록 책 속에서 묘사된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작은 집'이 원래의 자기 자리를 꿈꾸듯 나도 가끔은 내가 있던 곳을 꿈꿀 때가 있다.
밤이 되면 작은 집은 시골 마을과
데이지 꽃 들판과 달빛 아래서 춤추는
사과나무 꿈을 꾸었습니다.
작은 집은 도시가 생기고 나서 도시 생활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데이지 꽃과 사과나무는 그립다고 한다.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4분의 3을 보냈으니 나도 시골 살이에 가끔 도시가 무척 그립다. 지난 추석 서울에 갔을 때, 사진 전시를 보러 서촌에 갔었다. 거의 2년 만에 간 서울이었는데 어찌나 복잡하고 사람도 많은지... 잠시 적응은 안 되었지만 경복궁 돌담길에 떨어진 은행잎들을 보며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가을은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잎들을 차들이 지나가며 흩뿌리는 그런 풍경의 가을이다. 제주에선 노란 은행잎을 보려면 일부러 어딘가를 찾아가야 한다. 가을이 되면 나는 그 샛노랑이 매번 그리웠다.
책 뒷부분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이 출간된 시대적 배경을 보면 미국이 거대 자본주의 국가로 변하던 시기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고 되어있다. 책에선 점점 산업화되어가는 도시의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어 있다. 현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시골 생활이나 편리함이 함께 하는 도시 생활이나 어느 곳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은 서울에 있든 제주에 있든, 도시는 도시인대로 시골은 시골 인대로 그때그때 소중했던 추억들을 일으켜주었다. 그래서! 미래의 나의 집은 어디에? 음... 어디에 있든 그곳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