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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친니 Mar 26. 2021

복직 후, 엄마는

참 많이도 부족했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어려웠단다.

 

 나는 12년도부터 유통회사 점포 영업관리 직원으로 종사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내 정신력은 매우 약하고, 쓸 데 없는 잔 걱정이 많은 편이다.


 첫째 아이를 낳고 복직했을 때, 업무 재교육 기간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일을 쉬고 온 15개월 사이, 업무 내용이 바뀐 부분이 있어 초반에 많이 헤맸다. 게다가 업무 시간 외에도 고객 전화 응대는 당연했다. 퇴근하고 와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도중에 한 팔로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고객과 1시간이나 통화한 적도 있었다. 퇴근 후에도 일과 육아가 전혀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복직이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떠올려보면, 밤낮 주말 없이 업무 전화와 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받았다. 게다가 나는 훌훌 털고 잊는 게 잘 안 되는 성격이라서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업무였다. 실수를 해서 상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에게 클레임을 받았을 경우, 그 상황이나 내 눈 앞에 보였던 장면이 몇 달, 몇 년이 흘러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은 그 고민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복직하고 처음 3일 정도는 아이만 친정에 맡기고 나는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쭉 이렇게 할 계획이었는데, 아이가 보고 싶기도 했고 경기도 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기가 버거웠다. 그래서 나도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머물며 회사를 다녔다. 금요일 밤에는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세 식구가 시간을 보내다가 일요일 밤에 다시 친정으로 왔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 저녁 식사와 목욕,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를 돌보아준 사람은 친정 엄마로 육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복직을 하자마자 인수인계 기간이기도 했고 팀원들이 많이 도와줬기에 업무를 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순조롭게 직장에 적응해가던 때였다. 아이가 퇴근한 나를 향해 현관문으로 달려오면 그걸로 피곤함이 싹 잊혔다. 하지만 점점 업무가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결국 나는 아이에게 짜증을 많이 내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잠들기 전, 내 잠옷의 목 부분을 두 번째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내 목 주변을 만지면서 잠드는 버릇이 있다. 나도 피곤하고 졸린데, 아이가 계속 따갑게 목을 만지니 몇 번이나 화를 냈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자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했고, 나는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없는 워킹맘이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한 숨만 자꾸 나오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갔다.


 복직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에게 둘째가 찾아와서 아마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힘들고, 일도 해야 하는데 첫째 아이도 돌보아야 하고… 그래도 회사에서 임산부 보호 제도가 잘 되어있어서 비교적 편하게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첫째 때엔 최대한 근무 일수를 꾹꾹 채워서 출산예정일 1주일을 앞두고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둘째 때에는 첫째와의 추억을 더 쌓고 싶어서 한 달 이상 이르게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친정에서 회사로 출퇴근 한지 8개월 만에 아이와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가 나오기 전에 첫째와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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