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의 한마디로 수술은 미뤄지다

by JMK


아버지는 타 지역 대학병원에서 션트 수술을 받기로 했다.

뇌척수액을 뇌실에서 복강 등 다른 곳으로 빼내는, 비교적 간단한 뇌수술이라고 했다.

의사는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급하게 수술을 준비하며, 나는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 다인간병의 기억이 좋지 않아 1인 간병을 선택했다.



솔직히, 아버지의 기저귀를

내가 직접 감당하는 것이 아직은 두려웠다.


수술은 아버지가 복용 중이던 아스피린을 끊고 며칠 뒤 진행하기로 했다.

간병사님이 새로 오셨고, 나는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남기고 본가로 돌아왔다.

수술 날 다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진덕조 환자분, 혹시 요양병원에서 오셨나요?”

“네, 말씀드렸는데 왜 그러시죠?”



“환자 몸에서 수상한 피부 흔적이 보여서 검사했는데, 옴으로 추정됩니다.

격리 조치가 필요해 1인실로 옮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엉덩이와 오른쪽 발 봉숭아뼈 부위에 욕창이 심하게 있습니다.”


머리가 하얘졌다.

뒤이어 간병사님의 전화가 또 울렸다.

“보호자님, 들으셨죠? 옴이면 전 그만둬야 해요.

이건 전염병이에요. 옴 환자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안 봐요.”


한순간에 폭풍이 몰아쳤다.


나는 대충 짐을 싸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코로나로 영화 일도 끊기고 수입도 막힌 상태이니

이젠 간병을 직접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가 설명했다.

“아버님이 몸을 긁으셔서 피부과에 의뢰했는데, 옴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체질이 비슷하다.

둘 다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이 많으며, 겨울이면 피부가 건조해 가려움을 자주 느낀다.

무엇보다, 내가 최근까지 밀접하게 돌봤는데도 아무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전 요양병원에도 전화를 걸었다.

“거기 계신 다른 환자분들 중 옴 증상이 있는 분 계세요?”

“아니요, 없습니다. 진덕조 어르신도 옴은 아니었어요.”


그 대답을 듣고 병원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원래 건조한 피부세요. 환절기마다 긁으세요. 옴 아닙니다.”


그러나 병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옴이 맞을 가능성도 있으니, 1인실에 격리하고 수술은 2주 정도 미뤄야 합니다.”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수술은 멈췄

나는 피부과 선생님 면담을 부탁했다.

“선생님, 확실히 옴 맞나요? 제발 다시 확인해 주세요.

아버지는 수술이 급해요. 이러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요.”


피부과 의사는 단호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를 위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너무나 냉정하게 들렸다.

“어쩔 수 없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멈춰버렸다.


확실하지 않은 말 한마디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 이해하지만 이해 안 되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넘겨야 할지 막막했다.



병실로 돌아가니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계셨다.

간병사님은 위생장갑과 일회용 앞치마를 두르고

멀찍이 떨어진 채 손끝으로만 아버지를 만졌다.


그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제가 아버지를 돌볼게요. 오늘까지 정산하겠습니다.”


간병사는 당황했다.

“아니 따님, 이러시면 저도 뭐 먹고살아요. 다음 일 잡힐 때까진 해야죠.”

옴환자는 억만금을 줘도 안 본다는 말은 본인이 했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언쟁할 기운조차 없었다.

“3일 더 할게요.”

그렇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나는 병원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서 선잠을 자며

간병사 일을 지켜봤다.

그리고 3일 동안, 기저귀 가는 법과 씻기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내가 직접 돌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3일 후, 아버지 옆 간병침대에 누웠다.

비로소 진짜 간병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행히 검진 결과, 아버지는 옴이 아니었다.

격리가 해제되고, 드디어 션트 수술이 진행됐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수술 후에도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그 실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 달간의 병원 생활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만약 2019년에 증상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만약 수두증이란 병을 일찍 알았다면?’

‘만약 코로나로 면회가 막히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만약’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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