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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02. 2024

내 생애 첫 기억, 포슬포슬 카스텔라

내 인생 메뉴 <주전부리>편


아직 찬 기운이 맴도는 봄날.
아이의 가방에는 유치원에서 받은 간식이 담겼다. 보물이라도 담긴 양 집으로 오며 자주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 가방을 확인했지.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진 철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 아이는, 단숨에 토방을 지나 마루에 섰다. 토방 저 멀리 짝 잃은 신발은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온전히 봄볕을 받아내고 있는 마루 끝에 서서 안방 문을 그러쥐었다. 이 문을 열면 아이의 동생이 있을 테다. 방 한가운데 깔린 두툼한 포대기 위에 홀로 자고 있겠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아마도 내일도 그럴 거다.

아이는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까치발로 다가가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인형처럼 작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왕방울처럼 큰 눈이 눈꺼풀로 덮였고, 이불을 꼭 쥔 작은 손은 야무지다. 이불을 덮은 가슴께가 그렁그렁 숨소리에 따라 오르내린다. 가방만 살포시 내려놓은 아이는 동생 옆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는다. 얼굴을 맞댄 얼굴에 동생의 날숨이 와닿는다. 규칙적이고 나지막한 숨소리는 이내 아이도 단잠에 빠져들게 한다. 스르르.

얼마나 잤을까. 먼저 잠에서 깬 동생이 엄마를 찾으며 운다.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동생의 어깨를 안으며 달랬다.
""언니가 간식 가져왔지!""
""오늘은 뭐야?""
동생의 눈이 반짝였다. 그럴 때 아이는 누구보다 위풍당당한 언니가 되어있다.


동그란 모양에 노란색의 카스텔라 빵, 그리고 요구르트 한 병. 아이의 손에서는 대문 문고리를 잡을 때 옮겨온 쇠 냄새가 나지만 달큼한 빵 냄새에 모른 척하고 만다.
반으로 잘라 동생과 나눠 먹는다. 폭신한 빵을 한 입 베어 문 아이와 동생은 얼굴을 마주하며 웃는다. 빵이 맛있어서인지, 그 순간이 좋은 건지 그냥 웃는다.

좀 퍽퍽해질 때면 요구르트 뚜껑을 연 후 동생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요구르트를 조르르 따라 넘겨준다. 남은 건 아이의 목구멍으로. 한 방울이라도 흘릴 새라 세상 조심스럽고 신중한 일곱 살과 다섯 살의 아이들이다.

군데군데 찢기고 벌어진 창호지 사이로 봄볕이 모였다.
온기를 품은 그 볕은 두 아이가 앉은 안방에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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