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어>
아이들이 중학생과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 어릴 적엔 잠들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골라오라고 해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읽어주곤 했었다. 그런데 나의 피곤함과 게으름에 점점 횟수가 줄었고 지금은...
또한 휴대폰이라는 문명을 손에 쥔 뒤로는 확실히 거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안방과 거실, 컴퓨터방을 채우던 아이들의 책에는 먼지가 쌓이고, 다시 읽기엔 어린 책이 되어갔다.
"책장 정리를 좀 하자."
한번 맘먹으니 책장이 너무 어지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 짬 내서 힘을 좀 썼다. 책을 묶고 정리했다.
겨우 책장의 3칸 정도 정리한 듯싶은데 다음 날 근육통이 심하게 왔다.
아이들의 책을 볼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
'왜 이리 두껍고 딴딴한 표지로 되어있는지...'
실로 무게가 장난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리는 하는데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오늘 한 칸 정리하고 나면, 대략 3~4일은 쉬어줘야 하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 여름이 가기 전 정리가 끝날까 싶지만, 느려도 꾸준히 해볼 참이다.
형제가 여럿인데 반해 방은 세 칸이라 '내 방'이라는 게 없이 자랐다. 책을 살 형편은 더더욱 안 됐었고. 그래서 자라는 동안 내내 내 방, 내 책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던 시절, 같이 살던 동생이 먼저 결혼해 떠나고 혼자 살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해보고 싶었던 것에 도전했다.
벽면 한쪽을 모두 책장으로 배치했고, 박스 속에 구겨 넣어졌거나 물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선명한 책들을 차례차례 꽂았다. 읽은 책이 많았지만 읽지 않은 것도 다수. 퇴근 후 집에 가서 문을 열면 맞닥뜨리는 그 모습이 뿌듯했다.
그리고 3년 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삿짐을 싸는데 이 책들이 너무 무거운 짐으로 여겨졌다. 많기는 왜 이리도 많은지...
이사하기 전에 내 손으로 한 권, 한 권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들만 골라 담아 신혼집으로 옮겨왔는데 지금은 다시 먼지받이 신세다.
책장은 나의 로망이자,
한편으로는 허세 가득한 보관함인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책장을 꾸밀 날이 오려나.
그땐 진짜 책장 속 책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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