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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첫 단어>

by 땅꼼땅꼼


대략 25년 만의 재회다. 안경 말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렇듯, 초등학생 시절 나는 안경이 너무도 쓰고 싶었다. 시력 검사를 하니 당연히(!) 양쪽 다 정상.

잠시 실망으로 번져갈 즈음, 안경점의 아저씨가 한 마디 건네셨다.


"성장기엔 시력이 안 좋아지기 십상이에요.

보안경을 쓰면 그나마 좀 보호할 수 있죠."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렇게 내 안경 인생은 시작되었다.

30명 남짓 한 반이 한 학년의 전부인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 졸업사진에서 유일하게 안경을 낀(두껍고 찐한! 검은 뿔테) 학생으로 남았다.


보안경으로 시작했지만, 중고등학생으로 자라면서는 급속도로 시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안경집 사장님의 말처럼 성장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경을 깨끗하지 닦지 않은 버릇 때문에, 지문 가득한 안경을 써서 시력이 더 나빠진 게 아닌지 의심한다.


그렇게 나빠진 시력에 난시까지 겹치고, 좌우 시력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는 안경 렌즈의 두께가 너무도 달라 눈의 크기까지 달라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하드렌즈를 산 날,

홀로 거울 보며 작은 눈을 손가락으로 부여잡고 렌즈를 끼워 넣던 나는 그만 하드렌즈 끝면에 내 각막을 찢어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찢어진 각막은 며칠 후 치료가 되었지만 다시 하드렌즈를 넣을 자신이 없었다.


수술을 하기로 맘먹었다.

라식을 할 것이냐, 라섹을 할 것이냐... 심각한 고민 끝에 라섹 수술을 마친 나는 5월 연휴 5일 동안 병원에 가는 것 외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심지어 방의 형광등과 텔레비전도 켜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 누운 자세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천정을 바라보는 똑바른 자세로!

수술한 눈알이 좌우로 쏠리거나 굴리지 않도록 사물을 보는 것을 자제하라는 '수술 후 해야 할 일'에 정말 성실히 임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 덕분인지 수술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력이 꽤 좋았다. 검사할 때마다 1.5 혹은 1.2 정도?


"수술을 정말 깔끔하게 잘해주셨었네요.

25년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관리가 잘된 거면!"


작은 글씨도 잘 본다고 자부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 가까운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노안이다.

돋보기를 맞추러 간 집 앞 안경점 아저씨는 연신 내 눈 상태에 감탄했지만, 밀려오는 씁쓸함을 어쩔 수 없었다.


순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뭔가 생기거나 잃어버리거나, 안 하던 것을 해야 하거나, 하던 것을 안 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래, 순리다. 받아들이자.



#안경 #시력 #노안 #난시 #순리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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