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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Bilhete de trem

<첫 단어>

by 땅꼼땅꼼


"큰일이다, 기차표가 없다!"


20년 전 나는,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대여섯 정거장쯤 떨어진 거리를 걸어 다녔다. 운동을 따로 하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유산소 운동을 해볼 심산이었다.


그렇게 걸어서 출근버스 정거장에 가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뒤에서 오토바이 모터 소리가 조금 가깝게 들린다고 느껴지는 순간, 퍽! 오토바이 퍽치기를 당했다. 오토바이에는 운전하는 사람 하나, 그 뒤에 탄 다른 이까지 둘이 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내 어깨에 걸렸던 가방은 정말 순식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손아귀에 옮겨갔다. 그 순간에도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움켜잡았는데 쇠로 된 체인이 손가락 끝에 걸리면서 오히려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톱이 멍이 드는 부상을 당했다.

도둑들은 돈냄새를 맡는다던데, 정말 그런 걸까.


그날 가방 속에는 백화점 인근에 있는 구두방에서 바꿀 백화점 상품권 150만 어치가 있었다. 당시 선물이나 성과급을 상품권으로 받았던 동생은 몇 개월씩 모았다가 한꺼번에 현금으로 바꿔서 나에게도 나눠주곤 했다.

또한 백화점에 가서 A/S 받을 시계 3점까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매일 아침 걸으면서 본, 편의점 앞 파라솔에 모여 앉아서 낄낄거리는 그 무리가 의심스러웠다. 뭐 하는 사람들인지 매일 6시도 안 된 시간에 거기에 모여 웃고 떠들곤 했던 그 무리 옆에는 여러 대의 오토바이도 있었다.


내가 며칠 동안 그들을 보았듯, 어쩌면 그들도 매일 아침 출근 차림으로 걸어가는 나를 눈여겨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냥 의심만 할 뿐.


"오토바이 날치기는 못 잡아요!"


사고 접수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도착하자마자 절망 섞인 결론부터 내놓았다. 이후로 경찰서에 서너 번 다니고, 깁스를 한 손가락이 나아가고 멍든 손톱이 빠질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다.


추석이 다가와 미리 예매해 둔 기차표를 찾다가, 비로소 잃어버린 가방 속에 기차표가 든 것이 떠오른 거다!


결혼 전, 모두 서울에 살았던 우리 형제는 명절을 앞두고는 코레일에서 정해놓은 날에 판매하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략으로 예매하곤 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인터넷 예약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서울역에 뛰어가서 몇 시간을 대기한 끝에 현장예매에 성공했었다. 그렇게 얻은 기차표가 가방, 가방 속 지갑에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예정대로 예매한 기차에 타기로 했다. 다행히 기차표 예매에 성공했을 때 사진 찍어서 서로에게 공유했던 게 남아있었다. 다만 그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있거나, 자기 자리라고 비키라고 하면 어쩌지?


1. 범인일 것이다

2. 범인이 판 기차표를 산 사람일 거다

3. 길바닥에 버랴진 기차표를 주워다 판 걸 산 사람일 거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며 우리는 기차에 올랐고, '우리가 예매했던' 그 자리에 앉았다. 집까지 가는 2시간 반 가량 기차역에 머무를 때마다, 사람들이 기차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긴장하며 불안에 떨었다.


다헹히(?) 아무도 리에게 자리에 대해 말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으면서도, 두려움에 떨었던 고향행 기차가 도착하면서 우리는 큰 숨을 몰아쉬었다.




#기차표 #날치기 #오토바이 #손가락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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