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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Oct 19. 2021

시장놀이 + 강연소식

뮌헨 한글학교에서 열린 시장놀이 구경하시렵니까 + 제 강연 들어보시렵니까

지음이는 뮌헨 한글학교 딸기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거리라서, 사실 한글학교 통학은 토요일 한나절을 모두 쏟아부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다녀오면 저도 지쳐 쓰러지기 일쑤라 지음이도 한 번쯤 가기 싫다고 할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아주 좋아라 다니고 있는 것이 토요 미스테리. 대중교통을 향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다양한 루트로 한글학교에 가는 걸 즐기는 듯합니다. 물론 재미있게 수업해 주시는 선생님과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 또 우리말과 글을 배워서 읽고 쓰는 뿌듯함도 굉장히 크겠죠. 덕분에 내년에 앵두반에 들어갈 이음이도 덩달아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교지에 실을 글을 두 편 부탁하셔서 학교 행사 취재를 조금 했었는데요. 뮌헨 한글학교 소개도 할 겸 시장놀이 취재 글 한 편을 여기 올려둡니다.

반별로 사진이 들어있어서 전교생 확인하느라 지음이와 이음이가 아주 즐겨보는 한글학교 교지 :-)


<시장놀이>
 

시장.

어른들에게는 수요와 공급, 가격 변동, 자본과 노동, 경쟁과 삶의 고단함, 반짝 세일에 카드값까지, 몸도 마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공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내가 원하는 물건은 뭐든지 있는 알록달록한 마법의 공간입니다. 더구나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면요? 그야말로 축제죠.


지난 7월 24일 뮌헨 한글학교에서는 시장놀이라는 이름의, 아이들을 위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매년 봄에 열렸던 운동회도 취소된 마당에 시장놀이가 열린다니 이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있을까요.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시장놀이를 한글학교 행사로 만드신 지는 5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물건을 사고팔 때 쓰는 한국어를 익히고, 평소에 볼 기회가 별로 없는 한국 돈들을 사용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간(人間), 즉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즐거움도 배우게 될 테죠.


오늘 시장이 열리는 곳은 학교 건물 안쪽의 공터. 일찍 오셔서 가게 간판을 붙이고 풍선으로 장식하시는 선생님과 부모님들 머리 위로 “여기요, 이게 뭐예요?” “이건 얼마예요?” “여기 천 원이요.” 교실에서 오늘 시장에서 필요한 표현을 배우는 앳된 소리가 열린 창문을 통해 꽃가루처럼 뿌려졌습니다.


다양한 좌판이 차려졌습니다. 과자 가게, 슈퍼마켓, 학용품 가게, 문구점, 잡화점, 구멍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이렇게 일곱 가지 가게가 뚝딱 세워졌고 투호, 제기차기, 깡통 쓰러뜨리기, 콩알 옮기기,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등 다채로운 게임 코너도 마련되었을 뿐 아니라 뽑기 기계와 페이스 페인팅 코너도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입장 시간. 들어오자마자 와아-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는 아이들의 모습에, 다소 흐렸던 날이 활짝 개는 느낌입니다. 각자 종이를 접어 만든 지갑 안에 19000원씩을 두둑이 넣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입장했네요. 예전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해의 선물>이라는 폴 빌라드의 단편이 있습니다. 돈이 뭔지 잘 몰랐던 주인공 꼬마는 사탕을 잔뜩 고르고는 돈 대신 은박지에 싼 버찌 씨를 내밀고, 그 순수한 동심을 헤아린 가게 주인 위그든 씨는 돈이 남는다며 2센트를 거슬러 주죠. 오늘 아이들은 버찌 씨 대신 한글학교에서 발행한 지폐와 동전을 사용합니다. 가짜 돈이지만 좋은 물건들을 고를 수 있고 거스름돈까지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놀이가 열리는 학교 안뜰은 버찌 씨가 통용되는 소설 속 세상 같기도 합니다.   


“이건 오백 원이에요. 새 날아가는 돈 어딨어요?”

가게며 코너를 맡으신 어른들께서 아이들이 필요한 말을 하고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십니다. 아이들의 속도로 천천히 설명하고 도와주시는 덕분에, 아이들은 사고 싶은 물건을 하나씩 바구니에 골라 담고 의젓하게 값을 치릅니다. 특히 청소년반 친구들이 어린 앵두반, 포도반 친구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물건을 모두 쓸어 담지 않도록 아이들은 한 가게에서 물건을 하나씩 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스스로 거스름돈을 계산해 보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이 골고루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들르면서 바구니들은 점차 불룩해졌고, 아이들의 뺨도 행복감으로 볼록해졌습니다.  


문구점이 제일 먼저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뽑기 기계의 인기가 좋아서 줄이 길었는데요. 뽑고 싶은 걸 못 뽑아서 속상하다고 목 놓아 우는 친구도 있었답니다. 글쎄 물건 파시는 선생님 덥다고, 자기가 가진 돈으로 가게에서 주스를 사드리는 한 친구의 훈훈한 미담도 목격했지 뭡니까. 한편으론 만 원이라는 큰돈이 너무 소중하고 좋은 나머지 만 원을 내기 싫어하는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백 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는 게임 코너들도 북적북적 줄이 길었는데요. 30초에 24개의 콩알을 옮긴 수박반 신이진 양이 젓가락질 왕으로, 제기 5개를 찬 참외반 김시온 군이 제기차기 왕으로 선정되어 각각 커다란 과자 선물세트를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정말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로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뭘 샀는지 궁금해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산 물건을 자랑하고, 친구들 손을 잡고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신나 보이던지요. 한글학교의 시장인만큼 한국 과자며 먹거리, 한국 학용품과 전통 놀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특히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겁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지요. 한글학교의 시장놀이도 보이지 않는 손이 꾸렸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면서 배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행사를 기획하고 수고해 주신 선생님들,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마음으로 봉사해 주신 부모님들, 동생들을 위해 현장 판매와 게임 코너의 한 축을 담당해 준 청소년반 친구들, 무거운 사진기를 메고 촬영 담당으로 수고해 주신 촬영기자님까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 사랑스러운 시장을 움직였습니다. 다음 시장놀이는 더욱더 시장답게 북적북적 모든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마스크 없이 직접 만든 김밥이나 먹거리도 입에 쏙쏙 사 넣으면서 더욱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rice is what you pay. Value is what you get."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말인데요. 아직은 돈의 개념도 야무지게 갖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가격과 가치 사이의 간격을 알게 되는 날, 어린 시절의 이 즐거웠던 하루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담처럼 귀엽게 매겨진 가격을 갖고는 있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주는 선물이었다는, 그 물건들이 담고 있던 사랑의 가치를 알아주는 그날이 온다면요.  




아래는 시장놀이 풍경. 

초상권이 문제 되지 않을 법한 걸로 두 장 골라봤습니다. 

아니 근데 왜 여학생들뿐이죠?

왼쪽은 지음이가 접은 지갑, 오른쪽은 사서 집에 가져온 물건들.

지갑에 적힌 숫자는 아마 만 원짜리 안에 적혀 있던 일련번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_-

커다란 꽃무늬 파일은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래요. 엄마는 왼쪽의 꽃무늬 옷에 오른쪽 꽃무늬 파일까지 들고 다녀야 할 판....

빵이랑 주스, 아이스크림은 그 자리에서 먹었기 때문에 장바구니 안이 다소 단출합니다. :-)




이 타임에서 소환해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 속 구절. 

"마치 꼭 맞춘 것처럼 인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를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무늬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다. 인표는 꽃무늬를 싫어했다. 꽃에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그게 너무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꽃무늬를 고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편이라는 게 인표의 속생각이었다."

이런 인표는 나중에 자발적으로 꽃무늬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 꽃무늬 커튼이 달린 집에서 꽃무늬 이불을 덮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껄껄. 


사진 속의 옷은 작은언니가 입다가 물려준 원피스인데 너무 편해서 교복처럼 입고 있어요. 저는 그냥 아무 무늬 없는 단색 옷이 제일 많지만 꽃무늬를 위시한 식물 패턴 은근히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글 커버 사진도 꽃무늬네요. 흐흐. 여러분의 옷장 속은 어떤가요. :)



한참 전에 써놓은 글인데 강연 포스터가 어제 나와서 그냥 이 글에다 붙입니다. 
지난 번 근황 글에 알려 드렸던 온라인 강의인데요. 학생들 대상이지만 모두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고 하니 관심있으시면 놀러 오세요. 와인 한 잔 들고 오셔도 된다고 합니다. :-)

1. 제목 

    미술로 철학하기: 정의(justice)는 어떻게 그려야 할까

2. 일시

    2021년 10월 27일 (수) 오후 5:00-6:30

3. 강사 

    이진민 (정치철학박사, 작가)

4. 강의 소개

   미술을 통해 생각을 뻗어보고 싶다면, 철학을 무겁지 않게 맛보고 싶다면, 철학과 미술로 놀아보고 싶다면.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의 저자이자 정치철학 전공자와 함께 미술을 통해 철학을 접해보는 시간. 이번 강의에서는 혹평을 받았던 클림트의 빈 대학 천장화 시리즈를 통해 주디스 슈클라(Judith Shklar)라는 멋진 철학자를 만나봅니다. 

5. 줌 링크 

   아이디 432 580 0579

   pw: 57XZ2d

6. 주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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