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시
2021. 11. 23.
김용택, ‘한줄로 살아보라'
김용택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 2016)> 중에서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른 땅을 밟고 있었다.
내가 낯설었다.
낯선 내 얼굴이
나는 좋았다.
그가 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살아보라.
처음에는 '글 한 편도 아니고 한 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아 맞아, 한 줄이었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딱 한 줄로 다른 땅을 밟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마음에 뭔가가 차고 넘쳐 어쩔 줄 모르겠을 때 메모장을 열어 그냥 딱 한 줄 적으면 마음이 바로 가라앉을 때가 있거든요. 말을 고르고 배열해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으면 희한하게 안에서 보글보글 끓던 것들이 물 한 컵 부은 듯 가라앉습니다. 내 안의 어떤 것을 언어화하는 순간에 내 감정과의 거리를 확보하기 때문에, 그렇게 내 감정을 강아지처럼 앞에 두고 살살 쓰다듬을 수 있게 되죠. 그 강아지와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괜찮아, 또 살아보자-'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 한 줄의 글입니다.
이 시를 다른 문장들로 조금씩 풀어놓은 작가님들의 말을 모아봤습니다.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 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중에서
시를 매일 쓰면, 내면의 코어가 강해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그것을 시의 세계로 데려와 해부하고 언어와 상상을 버무려 문자로 바꿔놓으면, 잠시 동안 세상이 종이 한 장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비틀린 사건들, 불행들, 아픔들. 그것들이 내 두 팔 아래에서 사그라들고, 다른 모양으로 숨을 쉬지요. - 박연준, <쓰는 기분> 중에서
쓰는 일은 실재계의 경계에 서려는 의지이다. 니체의 초인 정신과 닮았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경계를 발견하고 또 넘어서고자 한다. 거기엔 매번 손해와 무익이 따른다. 그 무익의 반복, 그 절망. 진정한 무위이다. - 김수우, <어리석은 여행자> 중에서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중에서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그걸 흙처럼 깔아 두고 그 위에 둥둥 떠서 상상을 펼칠 수도 있고요. 브런치가 반복해서 보여주던 C.S. Lewis의 문장이 있었지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그렇게 관찰한 것을, 혹은 상상한 것을 쓰다 보면 뭔가가 기분 좋게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느낌. 글쓰기 전의 나와 글을 쓰고 난 뒤의 내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내가 계속 낯설어지는 건 계속 내가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내가 낯설었다. 낯선 내 얼굴이 나는 좋았다."
꾸준히 나를 낯설게 만드는 건 사실 철학에서도 인생에서도 지극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낯설어야 달라지니까요. 다른 땅을 밟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다른 땅을 밟아야 우리는 전진할 수 있으니까요. 김수우 시인의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경계를 발견하고 또 넘어서고자 한다"라는 문장이 이 시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늘 전진할 필요는 없지요. 항상 달라지거나 새로워질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스스로 달라지거나 전진하고 싶다면, 그 첫걸음은 바로 나라는 인간이 담긴 그 모든 익숙한 것에서 빠져나와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굳이 색다른 경험을 하지 않아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장 빠르게 낯선 나를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글쓰기이고요.
'한줄로 살아보라'는 제목을 보면서 '나의 삶이 한 줄로 요약된다면'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늘이지 않고 핵심을 찌른다면 그 말은 무엇이 될까. 무의미한 말들을 내뱉고 부연설명을 늘이는 일상에서 핵심을 찌르는 한 줄을 찾는 것, 그것이 삶의 자세가 되어도 멋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박사 논문 쓰면서 늘 들었던 말이 "그래서 네 논문을 한 줄로 얘기하면 뭐야?"였거든요. 만만치는 않지만 내가 쓴 이상 대답할 수 있어야 했던 질문.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만만치는 않지만 내가 살아온 이상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그 한 줄.
중요한 문장을 쓰기 위해 이 문장 저 문장 써보는 것처럼, 한 줄씩 쌓으며 다른 땅을 밟다 보면 결국 나를 설명하는 바로 그 한 줄을 향하게 되지 않을까요. 두 권의 책을 쓰고 또 한 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저는 사실 고민을 많이 합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내 문장을 내놓는 일이 과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일까 하고요. 하지만 실수도 섞이고 무의미한 말들도 난무하고, 그렇더라도 그 무수한 한 줄들이 모여서 내 삶을 그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냥 계속 가고 있습니다.
'슬픔이나 후회나 고통이나 욕망에 지지 않으려고 쓰는 글'에 대한 경험으로 글을 시작했지요. 내 안의 감정을 외장하드에 담듯 문장에 담아 밖으로 내놓음으로써 그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하면 우리는 또 살아가게 된다는. 감정뿐 아니라 다짐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짐하고 약속하는 문장을 하나 쓰고 나면, 안에서 은근히 알 수 없는 힘 같은 게 솟아나죠. 말에 힘이 있듯, 글에도 힘이 있으니까요. 인간이 만들어 낸 글자로 상처받고 넘어지지만, 우리는 또 그 글자들을 엮어 가면서 다시 일어나 걸어갑니다.
새해가 갓 시작된 지금은 다짐을 해보기에도, 글을 쓰기 시작하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오늘도 기분 좋게 다른 땅들 밟으시기를.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처럼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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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 줄로 살아보라는데 오늘도 정말 더럽게 길게 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