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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an 18. 2020

[장난감] 투호 만들기

설도 다가오는데 전통놀이 하나쯤 만들어 봅시다

작년 봄의 일입니다. 반에다 애를 놓고 잽싸게 튀려는 저를 붙잡고 유치원 선생님께서 부탁을 하나 하시더군요. 유치원에 하루 와서 한국에 대한 소개를 30분 정도 해 줄 수 있겠냐고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매년 테마를 하나씩 잡아서 1년 내내 관련된 행사들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갑니다.

작년의 테마는 '우리가 사는 세계'.

그래서 다달이 새로운 나라에 대해 배우고, 교실로 쓰지 않는 방에다 그 나라의 테마로 꾸민 플레이룸을 만들기도 하더군요. (저도 몹시 들어가 놀고 싶었습니다. 한데 나이 제한에 걸려서 그만. -_-)

여름 축제인 Sommerfest 때는 여건이 되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음식을 조금씩 제공하는데, 신청자 리스트에 어느 나라 음식인지 쓰는 칸을 두어 다양한 나라 음식이 모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9번에 불고기 보이시나요. 불고기 보고 제임스 엄마가 저한테 사랑한다고 고백. 크핫.

참고로 그 이전 해의 테마는 '소리와 음악'이었습니다. 계절별로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공간(ex. 공사장, 농장)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꼽아보고, 가을 숲으로 소리 채집 소풍을 떠나기도 하더군요. 또 일 년 내내 이런저런 악기를 경험해 보고, 각국의 음악을 들어보고, 축제 기간에는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디스코 룸을 만들기도 하고, 악기 연주자인 부모님들이 줄줄이 초대되어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설명해주고 질문을 받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생일에는 유치원에서 손으로 핸들을 돌려 작동시키는 작은 오르골을 선물받아 왔어요.

올해의 테마는 글쎄, '마법같은 동화 속 세계'랍니다. 꺄. 


다시 작년으로 돌아와서. 흠흠.
아이의
반에는 미국에서 온 제임스, 터키에서 온 베어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니클라스와 한국에서 온 제 새끼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원하는 부모에게만 부탁할 예정이고, 꼭 와서 소개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물건들이나 사진만 주어도 좋다고 하더군요. 직접 소개가 가능하다면 아무 때나 괜찮은 날을 하루 잡으면 된다고요.

ⓒ MBC 무한도전

독일어도 잘 못하면서 일단 호기롭게 콜을 외치고, 그 호기로움이 사라지기 전에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구상을 해 보았어요. 예전 교환학생 때 (대체 언제 적이냐)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부스를 만들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외국 아이들이 좋아하던 포인트들을 잡아서, 유치원 버전으로 만들면 되겠죠.

(그까이거.. 드루와)


일단 먹이자. 먹이면 아이들이 온화해지겠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 저는 배고프면 난폭해지고 배부르면 인자해집니다.) 음... 알러지 반응이 없고 무난한 쌀과자가 좋겠고. (쌀로별 당첨!)

한복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서 종이 한복을 아이들에게 순서대로 입혀보게 할까.

아, 지리와 역사 이야기에는 독일도 경험했던 분단국가와 통일 이야기를 넣어주면 좋겠다.

그렇지, 예쁜 종이에다 한글로 이름을 써 주고 각자 원하는 귀여운 스탬프를 찍게 하면 좋아하겠네.

대충 가닥이 잡혀갔는데, 한 군데에서 막히고 말았습니다.

놀이.
아무래도 아이들이니까 놀이를 하나쯤 시켜주면 좋겠는데, 윷놀이? 재미있긴 한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룰도 복잡해서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공기놀이도 대체로 무리일 것 같고...

딱지는 어떨까. 오,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접어봤습니다만...

나름 보자기처럼 색상도 은은하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와! 잘 안 넘어가서 망했어요!

딱지를 만드는 기술은 있으나 치는 기술이 없어(feat. 해파리 같은 오른팔) 시범을 보일 수가 없는... 크흑.


그래서 지인들의 집단지성을 소환했습니다. 유치원 꼬맹이들이 할만한 쉬운 전통 놀이가 있을까요?

그랬더니 과 선배 H님께서 귀중한 제보를.
공작부인이 되어 신문지로 투호를 만들어 보거라.
이렇게 눈이 번쩍 뜨이는 말씀을 주시었던 것입니다.  


그냥 던지면 되는 놀이이니, 딱 좋을 것 같았어요.

"너희들은 축구 잘하지? 한국 사람들이 진짜 잘하는 스포츠는 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자랑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헿.

레골라스만 활 잘 쏘는 거 아이다, 늬들 카메라 렌즈 뚫어 봤니

그럼 만들어 볼까요.


준비물: 신문지, 테이프, 휴지통, 다 쓴 AAA 배터리들 (추가 옵션: 폼폼과 색지, 글루건)


1. 먼저 적당한 크기의 통을 하나 마련한 뒤(저는 유로 샵에서 휴지통 같은 것을 들고 왔어요. 우리로 치면 천 원 샵.) 신문지를 어느 방향으로 돌돌 말 지 길이를 가늠해 보세요. 너무 길면 던졌을 때 튕겨 나오거나 통이 쓰러지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2. 신문지는 처음엔 돌돌 만다기보다는 접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아주 단단하고 날씬하게 말 수 있습니다.


3. 앞 대가리가 무거워야 능을 잘한다는 H 선배님의 제보에 따라 시냇가에서 돌을 주워 왔으나...

한국 식재료를 배달시키면 가끔 딸려 오는 한글신문. 일부러 한글신문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와! 붙이기도 어렵고, 붙여 놓으니 뭔가 거지 같아서 2차로 망했어요!!!


그때 집에 굴러다니는 과학자 하나가 시크하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던지고 가더군요.

배터리가 좋겠네.

배터리? 오.

와후. 지름이 딱 맞네.

투호의 신이 보우하사 마침 다 쓴 배터리를 모으는 통 안에 정확히 배터리 열 개가 있어서 바로 이용.

(집에 과학자가 하나쯤 있으면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배터리는 테이프로 한 번 말아서 붙이면 됩니다.


4. 이렇게만 하셔도 좋지만, 색지나 한지로 배터리 붙인 부분을 가리고 뒤쪽을 좀 더 화살촉 모양으로 하면 어떨까요. 머리통 부분에 폼폼을 글루건으로 붙여주면 소음 방지 및 팀컬러 표시 가능.

완성. 늘 천사 같은 이웃님께서 하사하신 태극기도 달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반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한 소개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쌀로별 선풍적 인기 끌어 대 품절 사태)

선생님이 귀여운 그림과 함께 초콜릿을 붙여 (당장 입에 털어 넣었다) 선물해 주신 그 날의 사진

한글 이름 네임카드는 선생님들도 아주 좋아하셨고요. 투호도 뜨거운 반응. 한국 동요나 한국적 가락의 CD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선생님 말씀에, 뚱땅땅 뚱땅 황병기 선생님 가야금 CD를 틀어주고 아이들을 놀게 했어요. 서로 집어넣겠다고 투닥투닥.

성 니콜라스 어린이집 파랑반에 선물로 주고 왔는데,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들여다보면 그거 하고 놀고 있는 애들이 있어 뿌듯합니다. 어제는 베네딕트, 오늘은 세바스티안.


별 거 아닌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이번 설에 아이들과 만들어 보셔도 좋겠고, 외국에 계신 분들이 저처럼 한국을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이번 설에는 가족끼리 팀을 나눠서 대왕 약과를 걸고 내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난이도 ★
(테이프만 붙일 줄 알면 됨)

재료 준비에 드는 시간과 인내심 ★★
(다 쓴 배터리가 중요한데 말입니다. 없으시면 새 배터리를 사용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경우에는 무리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게 통 안에 옷 같은 것을 푹신하게 깔고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호응도 ★★★★★
(꺄호)

그러나 지속적인 호응도 ★
(집에 하나 두었더니 한 1-2주일 놀면 시들해집디다. (저의 리뷰는 솔직함을 모토로 합니다.) 명절 특선 반짝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학습효과 ★★★
(전통 놀이를 배워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들해지면 재빨리 분해해서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여된 포인트. 배터리는 배터리 통에, 신문지는 종이 통에.)

가능 연령대 : 조준해서 던지는 힘이 조금 생기는 만 세 살 정도부터면 무난할 듯해요.


그럼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시기를.

우리 아이들 책거리 그려줄 때 한 귀퉁이에 그려 넣었던 복주머니. 모두 복을 듬뿍 섭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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