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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구슬 길 만들기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보는 휴지심 구슬 길(marble run)

by 이진민

저에게는 부엌 구석에 잘 숨겨 둔 비밀의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땐 그냥 쓰레기 모아놓은 상자.

이들 장난감 만들 때 필요할 것 같은 잡동사니들을 버리지 않고 넣어 두는 상자인데요.

버리기 전에 끝에 뭔가 촉이 온다 싶은 쓰레기들은 여기다 잘 모아 둡니다.

남편이 호시탐탐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은밀히 숨겨 두어야 합니다

이 상자를 자주 채우는 주인공은 바로 휴지심.

좋은 놀이 재료이자 장난감 재료입니다.


간단하게는 이렇게 쌍안경을 만들어서 계절이 변하는 세상을 보러 밖으로 나갈 수 있고요.

하도 갖고 놀아서 납작해졌는데 못 버리게 합니다. 오늘 버려 버릴까. 후후.

그동안 만들어 놀다 버린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사진을 남겨 두지 않은 것이 좀 아쉽네요.

하지만 당장 paper roll crafts로 검색만 해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집니다.
(참고로 저 주차타워는 보통 휴지심으로는 어렵습니다. 아이들 미니카가 대체로 저 지름 안에 안 들어가거든요.)

사진 출처: Pinterest

어쨌든 저의 보물 상자가 휴지심으로 흘러넘쳐 이제 이놈의 것들을 한 번 대량 소비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뭘 만들까요.

신에게는 스물다섯 개의 휴지심(및 키친타월 심)이 있사옵니다

이런 거 어떠세요.

위 영상은 예전에 만들었던, 너덜너덜해져서 가차 없이 떼어 버렸던 구슬 길 제1호.


영상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이거 다시 하고 싶다고 꼬리를 흔듭니다.

좋아. 너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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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는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줬지만 아이들이 그새 제법 컸으니 이제 2호는 다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준비물은 휴지심과 박스테이프, 구슬.
원하시면 중간에 생수병 같은 걸로 터널 구간을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색종이나 물감으로 알록달록 예쁘게 색을 입혀도 좋겠지만 다 귀찮으니 그냥 휴지심을 길이대로 반으로 슥슥 잘라서 만듭시다. 그래야 버릴 때도 미련 없이 재활용 쓰레기통에 후딱 넣을 수가 있으니까요.

꼭 직접 구슬을 굴려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를 권합니다.
구슬이 굴러가는 속도가 빨라지면 튀어나가기도 하고, 생각과는 달리 끝까지 구슬을 잘 도착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경사의 완급조절도 필요하고, 구슬이 반작용을 받는 구간도 신경 써야 합니다.


다양한 경사를 시도해 보면서, 구간 구간 구슬도 직접 굴려 보면서 그 다양한 움직임을 시험해 보는 게 아이들에게도 참 재밌을 거예요.

만드는 자체가 하나의 과학 실험 같은.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위치에너지, 중력가속도 계산 문제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싫어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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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더 싫어했던 건 소금물 문제. 아니 왜 자꾸 물에 소금을 섞고 난리들이야!)


하나 붙이고 굴려 보고, 또 하나 붙이고 또 굴려 보고

중간 영상 하나.

만드는 내내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 했습니다.

엉뚱한 곳에 길을 내기도 하지만, 내버려 두세요.

그렇게 휴지심을 붙이면 구슬이 못 간다는 걸 알면 또다시 꼼지락꼼지락 서툴러도 제 길을 찾습니다.

영상에도 어처구니없이 아무 데나 붙어있는 길이 하나 있는데, 둘째의 작품입니다 :-)


아이가 너무 어려 스스로 만드는 게 무리라면, 한 칸씩 만들어나갈 때마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양한 각도를 서너 가지 정도 예시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붙일까, 아님 요렇게 붙일까 물어봐 주면 되겠죠.


팁을 좀 드리자면

1. 무거운 쇠구슬이나 유리구슬보다 가벼운 구슬들(나무나 플라스틱)이 좋아요. 가속이 덜 붙어 끝까지 데굴데굴 잘 굴러갑니다. 너무 무거운 데다 가속까지 붙은 구슬은 휴지심이 그 하중을 못 견디기도 하거든요.

2. 휴지심 끝을 조금씩 겹쳐서 길을 이어야 단단한 길이 만들어집니다.


생각처럼 길이 단숨에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길을 내는 모든 일이 만만치 않듯이.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듯.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구슬 길 제2호.

구슬이 튀어나가서 자꾸 떨어지는 곳은 엄마가 보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영상 찍을 때 계속 초점을 못 맞추는 엄마. 허허허.)


요즘 저희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와서 포옥 안긴 뒤, 집 안의 모든 구슬을 여기에 올려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2호가 아름답게 생명을 다한 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고, 차츰 더 멋지고 근사한 3호 4호가 등장하기를 바라봅니다.


난이도 ★
(만드는 것 자체엔 별 기술이 필요 없으나 끝까지 잘 굴러갈 수 있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필요.)

재료 준비에 드는 시간과 인내심 ★★★★★
(쾌변 하시는 집안이기를 기원합니다... 흠흠)

내구성 ★★★
(의외로 단단하게 오래갑니다. 원래부터 오래 두고 쓸 목적은 없으니 사실 내구성이 중요한 건 아니죠. 다음에 또 다른 모양으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호응도 ★★★★★
(끼야앙)

가능 연령대 : 더 이상 구슬을 입에 넣지 않는 만 2세 이상이면 무난할 듯



필이 꽂히는 분들은 오늘부터 휴지심을 모읍시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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