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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Sep 23. 2019

[놀이] 구슬 길 만들기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보는 휴지심 구슬 길(marble run)

저에게는 엌 구석에  잘 숨겨 둔 비밀의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땐 그냥 쓰레기 모아놓은 상자.

이들 장난감 만들 때 필요할 것 같은 잡동사니들을 버리지 않고 넣어 두는 상자인데요.  

버리기 전에  끝에 뭔가 촉이 온다 싶은 쓰레기들은 여기다 잘 모아 둡니다.

남편이 호시탐탐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은밀히 숨겨 두어야 합니다

이 상자를 자주 채우는 주인공은 바로 휴지심. 

좋은 놀이 재료이자 장난감 재료입니다.


간단하게는 이렇게 쌍안경을 만들어서 계절이 변하는 세상을 보러 으로 나갈 수 있고요.

하도 갖고 놀아서 납작해졌는데 못 버리게 합니다. 오늘 버려 버릴까. 후후.

그동안 만들어 놀다 버린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사진을 남겨 두지 않은 것이 좀 아쉽네요.

하지만 당장 paper roll crafts로 검색만 해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집니다.
(참고로 저 주차타워는 보통 휴지심으로는 어렵습니다. 아이들 미니카가 대체로 저 지름 안에 안 들어가거든요.) 

사진 출처: Pinterest

어쨌든 저의 보물 상자가 휴지심으로 흘러넘쳐 이제 이놈의 것들을 한 번 대량 소비해야 할 시기가 습니다.

뭘 만들까요.

신에게는 스물다섯 개의 휴지심(및 키친타월 심)이 있사옵니다

이런 거 어떠세요.

위 영상은 예전에 만들었던, 너덜너덜해져서 가차 없이 떼어 버렸던 구슬 길 제1호.


영상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이거 다시 하고 싶다고 꼬리를 흔듭니다. 

좋아. 너로 결정했다.

1호는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줬지만 아이들이 그새 제법 컸으니 이제 2호는 다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준비물은 휴지심과 박스테이프, 구슬.
원하시면 중간에 생수병 같은 걸로 터널 구간을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색종이나 물감으로 알록달록 예쁘게 색을 입혀도 좋겠지만 다 귀찮으니 그냥 휴지심을 길이대로 반으로 슥슥 잘라서 만듭시다. 그래야 버릴 때도 미련 없이 재활용 쓰레기통에 후딱 넣을 수가 있으니까요.

직접 구슬을 굴려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를 권합니다.
구슬이 굴러가는 속도가 빨라지면 튀어나가기도 하고, 생각과는 달리 끝까지 구슬을 잘 도착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거든요. 경사의 완급조절도 필요하고, 구슬이 반작용을 받는 구간도 신경 써야 합니다.


다양한 경사를 시도해 보면서, 구간 구간 구슬도 직접 굴려 보면서 그 다양한 움직임을 시험해 보는 게 아이들에게도 참 재밌을 거예요.

만드는 자체가 하나의 과학 실험 같은.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위치에너지, 중력가속도 계산 문제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싫어했지만 말입니다.

(그보다 더 싫어했던 건 소금물 문제. 아니 왜 자꾸 물에 소금을 섞고 난리들이야!)


하나 붙이고 굴려 보고, 또 하나 붙이고 또 굴려 보고

중간 영상 하나.

만드는 내내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 했습니다.

엉뚱한 곳에 길을 내기도 하지만, 내버려 두세요.

그렇게 휴지심을 붙이면 구슬이 못 간다는 걸 알면 또다시 꼼지락꼼지락 서툴러도 제 길을 찾습니다.

영상에도 어처구니없이 아무 데나 붙어있는 길이 하나 있는데, 둘째의 작품입니다 :-)


아이가 너무 어려 스스로 만드는 게 무리라면, 한 칸씩 만들어나갈 때마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양한 각도를 서너 가지 정도 예시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붙일까, 아님 요렇게 붙일까 물어봐 주면 되겠죠.


을 좀 드리자면

1. 무거운 쇠구슬이나 유리구슬보다 가벼운 구슬들(나무나 플라스틱)이 좋아요. 가속이 덜 붙어 끝까지 데굴데굴 잘 굴러갑니다. 너무 무거운 데다 가속까지 붙은 구슬은 휴지심이 그 하중을 못 견디기도 하거든요.

2. 휴지심 끝을 조금씩 겹쳐서 길을 이어야 단단한 길이 만들어집니다.


생각처럼 길이 단숨에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길을 내는 모든 일이 만만치 않듯이.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듯.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구슬 길 제2호.

구슬이 튀어나가서 자꾸 떨어지는 곳은 엄마가 보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영상 찍을 때 계속 초점을 못 맞추는 엄마. 허허허.)


요즘 저희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와서 포옥 안긴 뒤, 집 안의 모든 구슬을 여기에 올려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2호가 아름답게 명을 다한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고, 차츰 더 멋지고 근사한 3호 4호가 등장하기를 바라봅니다.


난이도 ★
(만드는 것 자체엔 별 기술이 필요 없으나 끝까지 잘 굴러갈 수 있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필요.)

재료 준비에 드는 시간과 인내심 ★★★★★
(쾌변 하시는 집안이기를 기원합니다... 흠흠)

내구성 ★★★
(의외로 단단하게 오래갑니다. 원래부터 오래 두고 쓸 목적은 없으니 사실 내구성이 중요한 건 아니죠. 다음에 또 다른 모양으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호응도 ★★★★★
(끼야앙)

가능 연령대 : 더 이상 구슬을 입에 넣지 않는 만 2세 이상이면 무난할 듯



필이 꽂히는 분들은 오늘부터 휴지심을 모읍시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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