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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21. 2023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마흔두 번째 시

2022. 7. 1.

이창숙,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시집 <전봇대는 혼자다(사계절)> 중에서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고만례 할머니는

어느 여름 저녁

모깃불 피운 멍석에 앉아

밤하늘에 솜솜 박힌 별을 세며

옥수수를 먹고 있었대

그때,

머리에 커다란 짐을 인 아줌마가

사립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더래

저녁도 못 먹었다는 아줌마에게

있는 반찬에 남은 밥을 차려 준 뒤

짐을 풀어 하나하나 살펴보던 할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놋양푼이

그렇게나 좋아 보였다지 뭐야

며칠 뒤 있을 할아버지 제사 때

떡과 나물과 전을 담으면 좋을 것 같았지

한 개에 삼백 원이라는 놋양푼을

두드려 보고 만져 보고 문질러 보다

할머니는 은근하게 흥정을 했대

“세 개 살 테니 천 원에 주슈.”

열무 비빔밥을 한입 가득 떠 넣던

놋양푼 아줌마는 눈을 깜빡이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거절했대

하지만 할머니는 조르고 또 졸랐지

결국 아줌마는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날

천 원에 놋양푼 세 개를 주고 갔대

할머니는 그걸 들고 산길을 내려가

동네방네 자랑을 했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깔깔 웃었지만

이유를 모르는 할머니는

그냥 같이 웃어버렸대

그 뒤로 할머니는 아줌마가 오면

있는 반찬에 함께 저녁을 먹고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얘기를 했지

친자매처럼 가까워져서야

수줍게 고백을 했는데

고만례 할머니도 놋양푼 아줌마도

전혀 셈을 할 줄 몰랐다지 뭐야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헐 수 읎이 장사를 시작했슈.”

“셈을 모르고서 어찌 장사를 하누.”

할머니가 혀를 차며 걱정을 하자

아줌마는 환하게 웃었대

“괜찮어유. 사는 사람이 하잖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아줌마는

깊은 산속 고만례 할머니 집을

성님 집처럼 자주 찾아왔대

어느 날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고만례 할머니를 안고

눈물 흘리던 그날까지



오늘은 필사한 글씨 대신 그림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밥을 내주고 잠자리를 준 것에서부터 이미 뭐가 남는 장사인지 셈법이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 그렇게 순박하게 아웅다웅하다가 자매처럼 연을 맺은 두 분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셈도 잘 모르면서 물건 사는 사람들을 믿고 무작정 장사에 뛰어든 아줌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밥도 주고 잠자리도 내주는 할머니, 웃기는 하지만 그걸 알고도 속여먹거나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마을 사람들.


애초에 의지할 곳 없는 두 여인에게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부터 감사한 일이죠. 팍팍하고 가진 게 없어도 그저 사람 사는 이치와 온기로 돌아갔던 시대인 것 같아요. 더 풍요로워졌지만 비정과 혐오가 팽배해져 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자의 눈으로 읽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만큼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심장이 물컹해져서 눈물 참느라 혼났네요.


돌아가신 저희 엄마는 열 살 때 전쟁을 겪으셨는데요. 부엌에 먹거리를 그냥 두면 군인들이 다 가져갈 테니까 외할아버지께서 꾀를 내셨다고 합니다. 마당에 땅을 깊이 파고 독을 묻어 쌀과 김치를 넣어두신 거죠. 결국 피난을 가기는 했어도 그래도 전쟁 초기에 배곯지 않고 탈 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제게 종종 그때 마을에서 밥 굶는 사람들에게 새벽에 몰래 밥 갖다 주던 얘기를 하셨어요. 아무도 모르게 한밤중에 밥을 짓고 새벽에 날랐다고요. 엄마가 큰딸이었기 때문에 같이 그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전쟁통에 모두 피난을 갔는지 아니면 끌려간 건지, 아무튼 혼자서 아이를 낳은 산모 이야기였어요. 미역국이랑 쌀밥이랑 김치를 가져다주니 다 죽어가던 사람이 눈물만 흘리면서 입에 넣더라고요.


“그래서 살았지, 그땐 그랬어. 우리 엄마도 울고 그 아줌마도 울고, 성님 성님 하면서 잘 지냈던 아줌마인데. 피난 가기 전에도 그 아줌마 걱정 돼서 우리가 밥이랑 김치를 많이 넣어 주고 왔는데, 헤어지면서 두 분이 엄청 우셨지. 우리 엄마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직 그렇게 걸을 수가 없다고, 곧 추르스는 대로 가겠다고...... 혼자 낳느라 어디가 좀 잘못된 건지 회복이 더뎠거든. 피난 갔다 와보니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아기 데리고 어디 다른 데로 간 건지 다시 오질 않더라고.”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한테도 언니보단 성님, 형님, 하고 부르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시를 읽으니 엄마랑 외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일 걸, 앞서 길을 걸었던 엄마와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귀하게 여길걸, 뒤늦게 후회합니다. 모깃불 냄새가 나고 찰옥수수의 쫀득하고 소박한 맛이 느껴지는 시가 여러분께도 따뜻하고 맛있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두 분의 모습이 아래의 작은 들꽃 같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제목 배경으로 넣을 사진을 골랐어요.

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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