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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Nov 04. 2019

슬픔을 먹는 개와 고양이 (3)

엄마가 쓰는 동화 5

(2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jinmin111/52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달빛 폭포 역은 사막 위에 만들어져 있어요. 엄마 아빠는 기차역에서 몬 할머니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사막에서 잠깐 놀아도 좋다는 아빠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두 꼬마는 소리를 지르며 맹렬하게 사막 위로 내달렸어요. 이렇게 폭신하고 차가운, 끝도 없는 거대한 모래 놀이터라니!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모래뿐이에요! 야나와 눌은 모래 위에서 깔깔깔 웃으며 뒹굴다가 이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또 지우고, 이렇게 근사한 스케치북이 또 있을까요.


두 꼬마가 앞 뒷발로 모래를 파내어 근사한 구덩이를 만들어서 그 안에 사이좋게 눕자,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는 별들이 두 꼬맹이의 탄성을 자아냈어요.

“우와아아아아아아. 눌, 별 좀 봐. 나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진짜 예쁘다. 별로 만든 커튼을 덮은 것 같아.”

“응. 엄마한테 맞아 죽더라도 나 여기 온 건 정말 잘한 것 같아. 아아, 살아있길 잘했어.”

“저기 보이는 별 하나하나에도 다 사람이 있고 달빛개랑 구름고양이들이 있을까?”

“글쎄...”

“넌 있으면 좋겠어?”

“음, 뭐. 그럼 더 재미있지 않겠어?”

“응. 그만큼 온 하늘에 슬픔이 반짝이는 거겠지만, 그래도 있었으면 좋겠어. 나도.”

 

그때였어요.

“야나! 눌! 어디 있니? 몬 할머니 오셨다. 돌아오렴!”

야나와 눌을 찾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두 꼬마가 구덩이에서 얼굴을 쏙 내밀자 아빠가 다행이라는 듯 반가운 얼굴로 웃었어요.

“아이고, 거기 있었구나. 난 또 이 놈들이 모래 속으로 꺼졌나 했네.”

“아빠, 이거 우리가 만들었어요. 근사하죠? 아빠도 잠깐 들어와 보세요.”

“그럴까?”

“여기서 보는 밤하늘이 정말 끝내줘요. 별님들이 꼭 생일 케이크 위에 뿌려놓은 은가루 같아요.”

 

야나는 따끈하게 데워놓은 자리를 아빠에게 양보하고, 비좁지만 아빠 옆에 꼭 붙어 누웠어요. 아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없이 포근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어요.

“야아, 정말 아름답구나. 너희들 아주 근사한 걸 만들었는데?”

“아저씨, 저 별에도 다 달빛개랑 구름고양이들이 있어요?”

“글쎄... 우리 나중에는 저기에도 한 번 가 볼까?”

“진짜요? 우리 저기도 갈 수 있어요?”

“그럼. 당장은 못 가더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갈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야.”

“우와. 정말 멋지겠다. 우리 꼭 같이 가자, 야나.”

“그래. 그때는 몰래 가방에 숨지 말고.”

“흐흐흐.”

그렇게 야나와 눌은 별처럼 빛나는 새로운 꿈을 가슴에 반짝반짝 박은 채 구덩이를 떴습니다.  

 

“할머니!”

작은 발로 모래를 튀겨가며 반갑게 뛰어오는 야나를 몬 할머니가 흐뭇한 얼굴로 맞았어요. 몬 할머니는 날렵한 몸매에 튼튼한 다리를 가진 달빛 개로, 나이가 들어 약간 투명하게 변한 털빛이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현명한 얼굴을 가졌습니다.

“아이고 요게 누구야. 잘 지냈니? 아유, 우리 야나가 정말 많이 컸구나! 우리 강아지, 예쁘기도 해라.”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이.”

야나는 안겨서 어리광을 부렸어요.

“할머니 요즘 많이 바빠요? 할머니 이제 아파서 멀리 오기 힘들어요?”

“아니야. 할머니는 아직 바람처럼 달릴 수 있어. 근데 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네. 요즘 이 곳에 큰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래도 여기는 할머니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다행히 짬을 내서 올 수 있었지.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나도 우리 야나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단다.”

 

눈치를 보고 있던 눌이 할머니께 쭈볏쭈볏 인사를 드렸어요.

“안녕하세요오오...”

“아, 그럼 요 녀석이 리카의 증손녀구먼. 반갑다 아가. 아주 똘똘하게 생겼구나. 우리 야나랑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다.”

“리카 할머니를 아세요?”

“그럼. 리카뿐이냐. 너희 엄마도 내가 꼬꼬마 고양이 때부터 봤지. 자, 얘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폭포로 가서 몸 좀 담글까.”

“그러시죠. 너희들 좀 걸어가야 하니 어른들 잘 따라와야 한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쿵!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멀리서부터 조금씩 들려오던 소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천둥소리처럼 커졌어요. 사막 위에 갑자기 마술처럼 나타난 폭포가 은빛 물보라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어요! 주변에는 아름다운 물안개가 가득하고, 폭포 주변에는 달빛을 받은 영롱한 무지개가 만들어져 이 세상 풍경 같지 않게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물줄기 아래에는 물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달빛개들이 서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네요.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큰 폭포 소리와 엄청난 물줄기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두 꼬마는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털이 젖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눌은, 폭포에서 튄 물방울이 자기 몸을 온통 적시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휘둥그런 눈으로 폭포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일행은 몬 할머니가 이끄시는 대로 폭포를 지나 조금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 이제야 말소리가 좀 들리네. 하하, 어떠냐. 대단하지?”

“네 할머니. 귀가 먹먹해요. 여기 엄청나게 멋진 곳 같아요!”

“여긴 진짜 올 때마다 감탄하게 되네요. 정말 최고의 휴양지예요. 어디, 온천 쪽으로 가시려고요?”

“응, 먼 길 왔으니 일단은 도란도란 얘기도 좀 나눌 겸 그쪽에 있는 게 낫겠다 싶은데, 너희 생각은 어떠니?”

“좋은 생각이에요.”

“사막 한가운데에 그런 엄청난 폭포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정말 놀랐어요 할머니.”

“그렇지? 신기하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눈에도 가끔 보일 때가 있어. 사람들은 그걸 일러 신기루라고 한단다.”

 

조금 더 걸어가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나타났어요. 달빛 개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물에 몸을 담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모두들 몬 할머니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어요. 야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눌, 봤지? 우리 몬 할머니는 달빛개들에게는 대스타라구.”

야나가 눌의 귀에 속삭이자 눌이 살짝 야나를 흘겨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물이 좀 뜨거울 수도 있겠지만 밤공기가 차서 괜찮을 거다. 들어와 보렴.”

야나는 뜨거운 물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발끝부터 살짝 넣어 보았어요. 생각보다 물은 뜨겁지 않았어요. 스르륵 몸을 담그고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앉으니, 몸은 따뜻하고 얼굴은 시원한 게 기분이 제법 좋았습니다. 코 끝으로 시원한 바람이 살랑 스쳐 지나갔어요.

“아아아,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야. 아이구 좋다. 나이가 드니 그저 따뜻한 목욕이 제일이야.”

“눌, 너도 들어와 봐. 반은 따뜻하고 반은 차가워서 되게 재밌어.”

“아니야. 나는 그냥 여기 앉아 있을게.”

“야, 너 이미 다 젖었어.”

“그러니까... 이제 말려야 돼.”

눌은 앉아서 털을 할짝할짝 혀로 빗기 시작했어요.

“털이 젖어서 추울 텐데 담요라도 덮고 있는 게 좋겠다.”

 

야나와 눌은 각각 온천 안과 밖에 앉아, 코 끝에 훈훈한 김을 느끼며 쏟아지는 별 아래 몬 할머니의 얘기를 재미나게 들었어요. 엄마 시요와 아빠 리노가 잠시 폭포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띠며 슬그머니 이야기보따리를 열었어요. 엄마가 꼬마였을 때 이야기,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이야기며, 눌 엄마가 꼬맹이 때 사고 친 이야기들이 송이송이 포도가 달린 포도넝쿨처럼 줄줄이 엮여 나왔어요. 세상에, 알고 보니 눌의 엄마도 눌이랑 똑같이 여행 가방 안에 들어가 몬 할머니네 여름휴가에 몰래 따라왔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말이다, 칸이 혼자 은빛 바닷가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우리들은 바닷물에 첨벙첨벙 들어가 노느라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자긴 물에 들어가기 싫고, 이 꼬맹이가 얼마나 심심했겠어. 그래서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단다. 만족할 만하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누웠는데, 긴장도 풀리고 기온도 딱 적당하니 슬슬 졸음이 왔겠지. 근데 말이다, 바다를 보겠다고 처음 따라온 꼬맹이가 밀물과 썰물을 알기나 해? 바다란 건 말이다, 물이 아주 천천히 앞으로 점점 밀려왔다가 또 뒤로 쑤우욱 빠지기를 반복하거든.”

“물이 앞뒤로 움직인다고요?”

아직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눌이 놀라서 물었어요.

“응. 바다란 그런 거란다. 한 자리에 있으면 바닷물이 슬금슬금 나를 향해 오는 법이야. 강이나 호수와는 다르지. 어쨌든 구덩이 안에 있으니 바닷물이 가까이 오는 것도 모르고 콜콜 자다가, 밀물이 화악! 들이쳤겠지! 구덩이 안으로 물이 와르르 밀려드니 칸이 아주 온 바다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데, 아이고, 그 앙칼진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지 뭐냐.”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요?”

“칸은 그때 집에 돌아가서 엄마한테 아주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지. 눌, 너도 아마 엄마한테 꾸중을 많이 들었겠지?”

“네...... 한 달 동안 외출 금지에다 간식도 못 먹어요. 그렇게 약속하면 따라갔다 와도 좋다고......”

“하하하, 그랬구나. 아가, 그래도 잘못을 하긴 했으니 집에 가서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벌은 받거라. 엄마도 너랑 똑같은 일을 했었다고 해서 네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아마 너희 엄마도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같은 일을 되풀이한 걸 보고 아마 화가 난 거겠지. 약속은 중요한 거란다.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하셔. 그래서 네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런 규칙을 만드시는 거야. 알지?”

“네.”

 

“그래, 내가 너희 엄마에 대해 알려준 건 너희들이랑 나만 아는 비밀로 하자꾸나. 그 편이 훨씬 재미있을 걸? 어때? 엄마가 너만 했을 때 똑같은 개구쟁이였다고 생각하면 외출도 못하고 집에 처박혀 있는 내내 혼자서 큭큭 웃음이 나지 않겠어?”

“으하하하하. 좋아요!”  

“그래. 어른들은 모두 어렸을 때 너희처럼 장난도 꿈도 호기심도 많은 꼬마들이었지. 그런데 그 사실을 참 금방 잊게 된단다. 그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야. 그때의 기분, 그때 가졌던 생각들... 왜 그렇게 금방 잊게 될까. 세상의 많은 슬픔은 사실 거기서 비롯되기도 하지.”

“저희는 안 잊을 거예요!”

“맞아요! 절대 안 잊어버려요!”


“하하하. 씩씩해서 좋구나.”

할머니가 소리를 낮추어 은근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근데 말이다. 너희가 그에 걸맞은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말이야, 이렇게 가끔 모험을 하는 것도 사실 나쁘지 않아. 할미가 오래 살아보니 말이다, 어른들이 정해 놓은 규칙대로만 살면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놓치고 살기 쉽거든. 살짝 발을 다른 곳으로 내밀면 아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도 하니까. 흠흠,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도 너희들과 나 사이의 비밀이다?”

“할머니는 비밀이 참 많네요? 가끔 말 안 들어도 좋다고 말한 거 우리 엄마 아빠한테 들킬까 봐 그런 거죠? 그래도 난 할머니가 엄청 좋으니까, 비밀 지켜 줄게요.”

“하하하. 그래. 고맙다. 할미가 그런 말을 한 걸 알면 칸이 또 발톱을 잔뜩 세우고 새파란 눈으로 나를 노려 볼 걸? 그래도 내가 너희 엄마에게 잘 일러둘게. 어렸을 적 생각하면서 우리 눌 마음도 좀 이해해 달라고. 오랜만에 칸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겠구나. 하하하.”

 

“저, 할머니, 이 쪽으로 좀 와 보셔야겠는데요.”

폭포 쪽으로 갔던 아빠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어요.

“왜, 무슨 일 있니?”

“그게... 저, 핏빛 슬픔을 하도 먹어서 빨갛게 된 개들 무리가 나타났는데요. 얘기를 들어 보니 좀 심각한 상황이라...”

“너희들은 여기에 나랑 같이 있자. 당신이 할머니 모시고 갔다 와요.”

“아니다, 이 녀석들도 데려 가자. 내가 얘기를 나눠보니 아주 똘똘하고 씩씩한 녀석들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세상을 좀 더 아는 데 도움이 될 게다.”

“괜찮을까요?”

“응. 걱정 마라.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단다. 믿어도 좋아.”

 

엄마 아빠를 따라 할머니와 함께 폭포 쪽으로 갔더니, 털이 빨갛게 된 개들이 몇 마리 폭포수를 맞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도 가끔 슬픔이 털 깊숙이 묻어버려 잘 털어지지 않을 때는 달빛 연못에 가서 목욕을 합니다. 이 개들도 그런가 봐요. 잘 빠지지 않지만 물에 조금씩 조금씩 빨간 빛깔이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폭포 밖에는 여러 달빛개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다가, 몬 할머니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공손히 인사를 드리며 길을 내주었습니다. 폭포 안에 들어있던 개들은 할머니를 알아보고 목례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어요. 그들이 부르르 몸을 털자 털끝에서 빨간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할머니는 폭포 옆에 마련된 작은 오두막으로 모두를 안내했어요.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여기에서 뵙습니다. 저는 보리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의 동생들인 유리와 아리입니다.”

“그래요. 고생이 많군요. 몸은 좀 어때요?”

“괜찮습니다. 나중에 조금 더 몸을 담그면 나아질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디에 있다가 왔나요?”

“저희는 공습이 한창인 검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아시겠지만 상황은 늘 그렇듯 좋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이틀째 공습이 멈춘 상태예요. 그래서 조금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는데요. 도시 한쪽에 아이들의 슬픔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그걸 먹으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냄새는 계속 진해지고,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달빛이 비치는 곳은 샅샅이 다 뒤져 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땅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있는 달빛개들은 계속된 작업으로 이미 많이 지쳤습니다. 몸을 회복하려고 이렇게 조를 짜서 폭포에 다녀오기로 한 거죠.”

“아 그래요? 아이들이 며칠째 빛도 들지 않는 곳에 갇혀서 울고 있나 보네요. 아이고 어쩌면 좋을까. 현장을 직접 봐야겠네요. 혹시 괜찮으면 저를 안내해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바로 안내해 드릴 수 있어요. 폭포는 나중에 언제라도 다시 오면 되니까요.”

 

"얘들아, 미안하지만 내가 급하게 좀 다녀와야겠구나. 모처럼 놀러 온 건데,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할머니,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저도 돕고 싶어요. 제 코, 아시잖아요.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엄마 시요가 냉큼 할머니의 다리를 붙들었어요.

“맞아요 할머니, 저희도 데려가세요.”

아빠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괜찮겠니? 너희들, 어른이지만 전쟁 지역은 처음일 텐데.”

“몰랐으면 모를까, 듣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마침 출출했는데, 가서 가능하면 저도 슬픔을 잔뜩 먹어주죠. 제가 먹는 데는 또 일가견이 있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제가 가서 할머니 짐도 가져오고, 준비를 좀 해서 오겠습니다.”

아빠는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털을 다시 한번 부르르 털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제는 꼬마들인데... 어떻게 할까.”

“아이들만 여기에 둘 수도 없고, 가서 얼마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 보리씨, 공습은 지금 멈춘 상태라고요?”

“네. 비행기들이 점차 북쪽으로 가는 걸 보면 검은 도시에 대한 폭격은 이제 지난 것이 아닐까, 저희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시요 너도 알지? 달빛개들은 수명이 자연스럽게 다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는단다. 슬픔에게 먹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지.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예외인데, 아이들이 너무 강한 충격을 받아서 슬픔에 먹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먹히진 않더라도 크게 병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건데...”

“아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말씀하신 건 할머니예요. 상황을 보고, 만약의 경우에는 거기에서 아이들을 제가 따로 데리고 있으면 될 거예요.”

“그래, 내 손녀. 좋다. 항상 담대해서 믿음이 가는구나.”

“다 할머니 닮은 거예요.”

몬 할머니와 엄마 시요는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보리 아저씨와 몬 할머니가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빠는 짐을 챙겨 왔고, 엄마와 유리, 아리 누나는 구경하고 있던 달빛 개들 중에서 지원자들을 더 데려 왔어요. 할머니는 아빠에게 일러서 모두들 달빛 폭포의 물을 충분히 챙기도록 했어요.

 

“그럼 지체할 수 없으니 일단 출발하면서 얘기하자.”

모두 가방 끈과 물통을 몸에 단단히 감고, 선두에 선 보리 아저씨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어요. 열심히 어른들을 따라 달리는 눌과 야나의 숨이 점점 차올라 호흡이 가빠졌을 때, 멀리서 커다란 버스가 불을 밝히며 나타났어요. 버스를 본 엄마가 씩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역시 우리 할머니, 능력 좋으신데요.”

“너도 여전히 눈썰미가 좋구나. 그래, 내가 위원회에 급히 연락을 넣었지. 위원회 소속 버스다. 다들 올라타렴.”

 

모두들 서둘러 버스에 올라 문을 닫았어요. 버스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습니다. 가쁜 숨을 고르느라 창문을 활짝 여니,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야나의 코를 간지럽혔습니다. 보리 아저씨 남매가 다른 지원자들에게 그곳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동안, 할머니가 야나와 눌을 다정하게 안고 말씀하셨어요.

“야나, 눌, 시간이 없으니 잘 들어라. 우리가 지금부터 갈 곳은 슬픔이 아주 많은 곳이란다. 너희들, 가족이 죽은 아이의 슬픔을 먹어 본 적 있니?”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퍼하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저도요.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이의 슬픔을 먹은 적이 있어요. 친한 친구를 병으로 잃은 아이도 만난 적 있고요. 둘 다, 아빠가 계시던 병원에서 만났어요.”

“그랬구나. 아끼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세상 슬픔 중에서도 가장 아프고 진한 슬픔이란다. 먹기가 많이 힘들지 않았니?”

“힘들지만 괜찮았어요. 내가 먹어야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니까요. 그리고 연못 물을 많이 마시면 괜찮아요. ”

“저희 구름고양이들은 슬픔이 너무 크거나 정 먹기가 힘들면 슬픔을 앞발로 굴려서 갖고 놀아요.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러면 슬픔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거든요. 그러면 주인공도 우스운 꿈을 꿀 수 있대요. 저는 아이들이 자다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아요.”

 

“그래. 아주 착한 아이들이구나. 고맙다. 그럼 말이다, 전쟁이 뭔지는 혹시 알고 있니?”

“아...... 할아버지가 오래전에 전쟁에서 팔 한쪽을 잃으셔서 자기를 꼭 안아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전쟁이 뭔지 알려 주셨어요.”

“그랬구나. 눌은?”

“저는... 음, 우리 아빠가 그러던데요? 이 놈의 집구석은 매일매일이 전쟁이라고.”

“아하하하하하하, 아이고. 그래, 그럼 눌은 전쟁이 뭔지 잘 모르는구나. 눌, 전쟁은 말이다, 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복잡한 이유로, 때로는 아주 별 것 아닌 이유로,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거란다. 총을 쏘고, 대포를 쏘고, 아주 괴로운 가스를 쏘지. 정작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는데, 그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거나 다친단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엄마한테 들었는데 할머니가 여기에 계신 이유는 이 곳에 전쟁이 많아서 슬픔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그래. 그렇단다. 오늘 너희들은 그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거야. 마음 단단히 먹거라. 전쟁 지역의 아이들은 하루하루 그 작은 몸으로 이루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이고 산단다. 우리가 가서 그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면 참 좋겠구나.”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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