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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Nov 19. 2019

슬픔을 먹는 개와 고양이 (5)

엄마가 쓰는 동화 5

(4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jinmin111/54



“근데 아이들은 어쩌다 거기 들어간 거래? 왜 어른들은 없고 애들만 있는 거야?”

야나가 묻자 눌이 수염을 찡긋거리며 대답했어요.

“그게 말이지, 여기가 원래 식당이 있던 자리래. 식당 주인은 일찌감치 친척집으로 떠나고 빈 식당만 남았는데, 아이들이 가끔 들어와서 놀았다고 하네. 키키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라 원래 이 식당에서 가끔 밥도 얻어먹고 그랬던 모양이야. 그래서 식당 주인이 떠난 뒤에도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서, 식당 구석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자주 구경하곤 했다지. 애들은 그 버려진 식당에서 식당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놀았대. 근데 숨바꼭질이 한창이던 어느 날, 숨을 곳을 찾던 한 아이가 바닥에 있는 카펫을 들췄는데, 짠!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는 걸 발견한 거지!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선반에 있던 손전등을 가져와서 비추어 보니 재미난 것들이 제법 많았대. 식당 주인이 거기에다 전부 쓸어 넣고 갔는지 옷가지도 많고, 밀가루 포대며, 음료수, 뜯지 않은 크래커 상자... 아이들이 다들 그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가 신나게 파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지. 그때 동생을 찾으러 여기저기 다니던 어느 형 목소리를 듣고 시간이 너무 지났구나 싶어 다들 밖으로 나가려고 보니, 들어올 땐 쉬웠는데 나가려고 보니 도저히 키가 닿지 않았대.”

“그래서 거기 갇힌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밖에 있던 형이 아이들이 나올 수 있게 식당 의자를 하나 그 안에 넣어주었는데, 그 순간 비행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거야. 형도 놀라서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지.”

 

“비행기가 왜?”

“그게... 비행기에서 무시무시한 불을 뿜는 폭탄이 떨어진대.”

“뭐라고?”

“여기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불을 뿜는대. 번쩍이는 공 같은 게 떨어지는데, 그걸 맞으면 집도 나무도 사람들도 산산조각 난대. 야나 너는 알고 있었어?”

“아니. 나는 비행기 좋아하는데... 하늘에 비행기 소리 나면 일부러 밖에 나가서  비행기가 안 보일 때까지 쳐다보는데. 비행기에서는 아무것도 안 떨어지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게 이상한데... 암튼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총이랑 비행기를 제일 무서워 한대. 암튼 겁에 질린 아이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키키는 그 순간에 걱정되는 친구가 하나 떠올라서 재빨리 밖으로 나갔대."

"친구?"

"응. 일주일쯤 전에 혼자가 된 아이인데,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밖에 일하러 나갔던 엄마 아빠랑 학교에 갔던 언니가 다 잘못되었나 봐. 가엾게도... 그 집 고양이도 하나 있었는데 그 뒤로 걔도 도통 보이지 않고. 아이는 이웃 사람들이 돌봐주는 것도 마다하고 매일 밖에 나와 울고 있었는데, 분명히 아까 식당 앞에 그 아이가 앉아 있는 걸 봤다는 거야.”

“아. 어쩌면 좋아. 그래서? 그 아이를 찾았대?”

“응. 키키가 의자를 딛고 훅 뛰어올라 나가 보니, 역시 식당 앞에 그 아이가 울부짖으며 앉아 있더래. 키키가 아이 품에 뛰어들어가서 큰 소리로 울며 아이 얼굴을 핥으니 아이가 알아보고 정신을 차리더라는 거야. 그래서 얼른 옷을 물고 잡아끌어서 식당 안 그 지하 창고 쪽으로 데려갔대. 아이도 문을 보고는 바로 열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갔던 거지. 그러고 나서 문을 닫고 모두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땅이 울리고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그 뒤로는 도저히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이 꼼짝하지 않더래.”

 

그 순간이었어요. 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같이 마음을 졸이던 야나의 눈에, 멀리서 뭔가 반짝거리는 불빛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캄캄해서 거기에 뭐가 있는 건지 도통 알기가 어려웠어요.

“눌, 저기 뭐 있어? 뭐가 반짝거리는 것 같은데.”

“어디?”

“저 쪽.”  

야나가 가리키는 쪽을 한참 바라보던 눌이 벌떡 일어났어요.

“고양이? 고양이 같은데?”

“고양이라고? 구름고양이?”

“아니, 그냥 고양이. 잠깐만 여기에 있어 봐. 네가 같이 가면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눌은 아주 천천히, 살금살금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잠시 뒤에, 눌이 털이 많이 빠지고 지쳐 보이는 갈색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 왔어요.

 

“내 친구 야나야. 달빛개. 야나, 얘는 이름이 코코래. 키키를 알고 있대.”

“안녕? 너 키키랑 친구야? 키키가 저 밑에 갇힌 거 알고 있어?”  

“아니, 몰랐어. 키키뿐 아니라 친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다들 어디에 갔는지 찾고 있었어. 우린 저기 벽 한쪽이 무너진 식당 건물에 모여 있어. 우리는 다들 주인을 잃었는데, 거기에 한 친절한 아줌마가 우리에게 먹이를 주시거든. 내가 오늘 정찰 당번인데, 아까부터 여기에서 환한 빛이 나고 분주하게 뭐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보고 있었어. ”

“내가 키키에게 네 소식을 전해 줄게.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 엄청 기뻐할 거야. 기다려 봐. 금방 갔다 올게.”

눌은 신이 나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어요.

 

코코와 야나는 함께 눌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코코는 야나에게 전쟁이 지속되는 땅에서 약한 동물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어요. 행복했던 하루하루가 무너져버린 것도 너무 슬프지만, 그중 가장 큰 슬픔은 아끼는 주인을 잃거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슬픔이라고 했어요. 늙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울다 지쳐 잠들었던 꼬마 친구의 슬픔 맛이 생각나서 야나는 혀 끝이 아려왔어요.

“그럼 지금 거기에 주인이 있는 고양이는 아무도 없어?”

“응. 아무도. 하지만 아이샤 아줌마가 우리와 함께 있어줘서 괜찮아.”

“아, 그래! 저 밑에 갇힌 아이들 중에 너희들 주인이 있을지도 몰라!”

“그럴까? 나도 바나가 너무 보고 싶어. 내가...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면서... 아저씨, 아줌마, 리마... 다 죽은 걸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며칠 전에 비행기가 오고 나서는 바나도 안 보여. 우리 바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코코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어요.

야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어요.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던 야나의 머릿속에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빠, 엄마, 할머니! 좋은 방법이 있어요! 이리 좀 와 보세요!”

서로 기대어 얼굴을 파묻고 쉬고 있던 엄마 아빠가 고개를 들어 야나를 보았어요. 할머니가 투명한 털을 날리며 날쌔게 뛰어 오셨습니다.    

“놀라지 말거라. 넌 이 동네의 고양이인가 보구나. 안녕? 나는 몬이라고  한단다. 달빛개들을 거느리고 있지.”

“네. 안녕하세요. 저는 코코라고 해요. 아까 이 동네 아이들의 슬픔을 먹어주는 걸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할머니,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코코는 지금 친구들과 함께 모여있는데 거기에 길 잃은 고양이들을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있대요. 코코가 친구들을 전부 동원해서 어떻게든 아주머니를 이리로 데려 오고, 키키가 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게 하면 아주머니가 눈치를 채지 않을까요?”

“옳거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야나, 대단하구나. 눌은 어디 갔니?”

“안에 잠깐 들어갔어요. 금방 나올 거예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눌도 제 말을 하니 금방 뽀글뽀글 연기가 되어 나타났어요. 눌은 고양이의 모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마음이 급해 입부터 만들어 소리를 지르면서 등장했어요.  

 

“야! 야! 야! 코코! 너 바나 알아? 바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코코가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어요.

“뭐, 뭐라고? 우리 바나? 혹시 저 안에 있어?”

“응. 바나가 맨날 키키를 안고 울면서 네 얘기를 했대. 저 안에 있어. 잘 있어. 아, 어서 데리고 나오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아! 아! 아!”

신나서 떠들다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눌을 뒤로 하고, 코코는 무너진 건물 더미로 다가가서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어요.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안타까운지 달빛개들이 하나둘씩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눌, 야나, 코코, 다 괜찮을 거다. 이제 금방 만날 수 있어.”

몬 할머니가 모두를 불러 모아 작전을 설명했어요. 달빛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기뻐했어요. 눌도 신나서 야나의 손을 맞잡고 껑충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코코는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타까운 얼굴로 바나가 갇혀 있다는 잔해 더미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보리 아저씨네가 데려온 동네 개들도 그 위에서 구슬프게 짖었습니다.

 

작전 개시!

몬 할머니의 커다란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어요.

“눌, 너는 다시 한번 들어가서 키키에게 소식을 전해라. 코코와 친구들이 몰려와서 우는 소리가 나거든 그 안에서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전해.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나 함께 인기척을 낼 만큼 크면 더 좋다. 코코, 너는 돌아가서 친구들을 모두 동원해서 너희를 돌봐주시는 분을 이리로 끌고 오렴. 어떤 방법으로든 해내야 해. 한 시가 급해. 할 수 있겠니? 시요, 리노, 너희들은 코코의 무리들이 멀리서도 금세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게 이 근처에 모두 모여 환하게 달빛을 모아 어둠을 밝혀 주렴.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도 아주머니가 근처에 오거든 같이 짖기 시작해 주세요. ”

 

코코가 잽싸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눌도 결의에 찬 얼굴로 들어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달빛개들은 기대로 가득 찬 얼굴로 한 자리에 모여 달빛을 가득 품고 주위를 환하게 밝혔어요.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저 멀리서 작은 손전등 불빛과 함께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니 너희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응? 조용히 해라. 아직 해도 제대로 안 뜬 이 새벽에…”

“야옹, 야옹, 야아아아아아아옹!”

“컹컹컹컹컹!!!!! 우우우우우우우우!!!”

고양이 소리가 들려오자, 잔해 더미 부근에 자리하고 있던 동네 개들도 덩달아 짖기 시작했어요.

 

불쌍한 아이샤 아줌마!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잠옷 바람에 대충 담요를 두르고 짝짝이 양말을 신은 아줌마 머리 위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아줌마 머리카락과 스카프를 잔뜩 움켜쥐고 있네요!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아줌마 오른쪽 눈이 우스꽝스럽게 올라가 있어요. 아줌마 치마를 잡아 끄는 고양이, 뒤에서 얼굴로 미는 고양이, 아줌마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하악거리면서 발톱으로 구두를 할퀴는 고양이, 앞서 길을 안내하며 큰 소리로 우는 고양이! 달빛 개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자, 고양이들이 그 위에 일제히 앉아 큰 소리로 시끄럽게 울기 시작합니다. 개들도 고양이들을 도와 정신이 빠질 만큼 큰 소리로 짖어댔어요. 키키가 충분히 들었을까요? 1분쯤 뒤에 몬 할머니가 신호를 주자 고양이와 개들은 일제히 침묵하기 시작했어요. 일순간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아주 멀리서, 아주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이샤 아줌마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계속 고양이들을 지켜보고 서 있습니다.

 

“... 키키, 너무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 너 때문에 애들 다 깼잖아.”

아주 희미하고 들릴락 말락 작은 소리지만 적막감이 감도는 새벽이라 분명히 아이샤 아줌마의 귀에 꽂혔습니다. 어린아이의 말소리!

“아아아아아아아, 여기 누가 있는 게로구나. 그렇지 얘들아?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여보세요!!!!!”

아줌마의 목소리가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나서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어요. 하지만 곧바로 어딘가에서 아이들의 작디작은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살려 주세요! 저희 여기 있어요!”

“여기에요 여기!”

“여기 땅 속에 있어요!”

“그래그래! 여기 다 들린다! 걱정 말거라! 금방 꺼내 주마!”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우렁찬 아이샤 아줌마 목소리에, 사람이 전혀 살 것 같지 않았던 폐허에서 불쑥불쑥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났어요.

“개랑 고양이 소리에 이게 뭔가 하고 나와봤는데..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이에요?”

“여기, 여기에 아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분명히 목소리를 들었어요. 어서 사람들을 모아요!”

“뭐라고? 그게 정말이에요?”

“아아, 애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여기는 그 카르빈씨네 식당이 있던 자리 아닌가?”

“맞아. 그런 것 같아요. 아니 여기에 애들이 어떻게…”

“어서 연락해! 도구들도 챙겨 오고! 빨리빨리!”

“담요와 먹을 것도 좀 준비해요. 약이랑 따뜻한 물도 마련하고!”

 

어슴푸레한 새벽, 아이샤 아줌마와 먼저 모인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맨 손으로 땅을 고르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손에 상처가 나고 손톱에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달빛개들과 고양이들, 개들은 조용히 그들을 둘러싸고 마음을 보탰어요. 도구들이 속속 도착하고,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조심스럽게 돌과 쇳조각과 유리 파편과 나무토막들을 들어내고 흙을 파 날랐어요. 밑에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자 사람들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흘러넘쳤습니다.

 

“거기에 누가 있니? 다들 잘 있니? 배고프진 않고?”

밑에서 아이들이 또박또박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주저앉아 오열하는 아주머니,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면서도 손으로 계속 미친 듯이 흙을 파내는 아저씨,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손자의 이름을 쉴 새 없이 되풀이하면서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할아버지, 먼지가 가득 묻은 얼굴에 눈물을 주룩주룩 쉴 새 없이 흘리는 할머니.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달달 떨면서 꼬마 주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고양이들. 폐허 위를 겹겹이 채우고 있던 슬픔 위에 기쁨과 흥분이 발갛게 덮여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아이들이 갇혀 있는 지하 창고의 천장에 붙은 나무 문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얘들아, 이제 곧 문을 열 거다. 먼지와 돌멩이들이 떨어질 테니 문에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서 얼굴을 가리고 다들 숨어 있거라. 천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뒤집어 쓰고 있으렴.”

삐거덕, 우수수수수수.

“열렸다, 열렸어!”

아저씨 한 명이 대표로 내려가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하나씩 들어 올려 바깥의 사람들에게 건네주었어요. 바깥으로 나온 아이들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눈을 잘 뜨지 못하고 얼떨떨한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아는 얼굴을 찾습니다.

“얘야! 아이고 내 새끼!”

“엄마!”

“삼촌!”

“아이고, 무사했구나! 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냐오냐 내 새끼. 어디 얼굴 좀 보자.”

“형!”

 

모두 여덟 명의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왔어요. 가족과 친지들이 저마다 아이들을 품에 소중히 얼싸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눈이 커다랗고 예쁜 한 소년이 밖으로 나오자, 고양이들 무리에서 고양이 하나가 쏜살같이 뛰어나가 소년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어요. 소년의 얼굴에도 놀라운 기쁨이 번집니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꼭 안으며 서로에게 얼굴을 비볐어요. 그 소년은 곧 자신을 찾아 준 친척뻘인 어른에게 고양이를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깥으로 나온 키키도 기쁜 얼굴로 곧장 친구들을 향해 뛰어갑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울음이 터져버린 한 꼬마가 있네요. 꼬마는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모두 세상에서 없어져 버린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물 젖은 얼굴로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이때, 먼발치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코코가 소녀의 품에 맹렬히 달려가 안깁니다.

“코코! 세상에! 너 여기서 나 기다리고 있었어?”

“바나, 우리 바나, 너무너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살아 있었구나.”

코코야! 보고 싶었어.”

“힘들었지? 울지 마. 슬퍼하지 마. 이제 내가 지켜줄 거야.”

코코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고양이들과 달빛개들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고 둘만 남은 바나와 코코가 가여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안녕, 네가 이 고양이의 주인이구나. 나는 아이샤라고 한단다. 네가 없는 동안에 이 고양이와 함께 지냈지. 그런데 저기... 너는 여기에 가족이 없니?”

바나가 코코를 꼭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런,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구나. 가족들이 전부 세상을 떠났니?”

바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어요. 아줌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그래. 나와 똑같은 신세구나. 나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지금은 주인 잃은 고양이들을 가족 삼아 지내고 있지.”

아줌마는 바나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할 때까지 옆에서 말없이 기다려 주었어요.

 

“예쁜 꼬마야. 이름이 뭐니?”

“바나예요.”

“바나. 그래 반갑다. 몇 살이니?”

“여섯 살이요.”

“그래. 고생이 참 많았구나. 혹시 너만 괜찮다면 아줌마네 집으로 갈래? 거기에 고양이들도 아주 많단다. 휴... 이 끔찍한 시간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총소리가 멈추는 대로 아줌마가 네 친척들도 찾아줄게. 아마 어딘가 꼭 살아있는 분들이 계실 거야. 그동안은 이 고양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볼래? 가만있자, 네 고양이는 이름이 뭐니?”

“코코예요.”

“코코. 참 좋은 이름이구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게 꼭 맞는 이름이야. 네가 지었니?”

“아뇨. 우리 언니가...”

바나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하지만 바나는 곧 눈물을 훔치고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저기에 제가 이름을 지은 고양이가 있어요. 키키! 이리 와. 우리 코코랑 친구처럼 지내서 제가 키키라고 지었어요.”

키키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우아하게 바나 곁으로 다가왔어요.  

“예전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던 길고양이예요.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는데. 같이 저 땅 밑에 갇혀 있었어요. 무서워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얘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피했던 것 같아요. 아줌마, 얘도 데려가도 좋아요?”

“그럼. 되고 말고.”

“아줌마, 고마워요.”

“별말씀을.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험한 세상에 서로 위로가 되는 이들을 찾았구나. 다행한 일이다.”

그들을 바라보던 몬 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말씀하셨어요.

지켜보던 달빛개들도 저마다 안도하는 얼굴로 몬 할머니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이 곳은 여기를 지키는 달빛개들에게 맡기고 돌아가서 느긋하게 온천을 좀 더 즐겨 볼까. 꼬맹이들이 힘써 준 덕분에 이 할머니 휴가가 온전히 하루는 남았단 말이지!”

 

야나 일행은 코코, 키키, 그리고 도움을 준 고양이들과 이곳의 개들과 인사를 나누고 폭포에서부터 따라온 개들과 함께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하룻밤이었는데, 왠지 일 년이 지난 느낌이에요. 야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몽글몽글 벅차오르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아서 하늘을 쳐다보다, 땅을 쳐다보다, 눌을 쳐다보았습니다. 눌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그 표정이 우스워서 야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눌, 우리 뭔가 대단한 밤을 보낸 것 같지?”

“응. 몬 할머니 말이 맞았어. 이런 경험을 해 보다니. 가방 안에 숨길 잘했어. 내가 정말 평생 기억할 거야. 비록 앞으로 당분간 간식 구경은 못 하겠지만.”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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