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철학자의 말들을 70개 모아 짧은 개인적 이야기를 덧붙이는 형식의 책을 준비 중입니다. 브런치가 자꾸 글을 발행하라고 말을 걸어서, 브런치 금지(?) 기간이지만 사전 홍보인 셈 치고 하나 올려놓고 갈게요. :)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욕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선악의 저편>
너무나 갖고 싶었던 물건인데 소유하면 이내 시들해지곤 한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쌓으면 삼층 석탑만 한 탑이 될 텐데, 사고 싶은 책 리스트는 계속 늘어나서 십 층 석탑을 넘길 기세다. 너무 읽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휙 물어온 책이었는데, 막상 사놓으면 왠지 느긋해지면서 안 읽어도 배부른 느낌. 그럴 때 궁금해진다. 내가 욕망했던 대상이 정말 저 책이었을까? 니체도 책을 많이 사놓고 안 읽었나?
사랑이 왔다 갈 때 우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한 게 정말 저 사람이었나?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폭 빠졌던 때를 떠올려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이 생각났고, 함민복 시인의 한 줄짜리 시처럼 자기 전에도 그 사람 생각을 켜 놨다가 끄지도 않고 잠들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는 시 속 말처럼(이문재 <농담>에서), 별이 쏟아지는 황홀한 밤하늘을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아름답다’가 아니라 그의 이름이었다. 한 번은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아.” 아낌없이 마음을 쏟을 대상이 있어서 그렇게 매일매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좋았다. 그렇게 사랑의 감정을 즐겼던 건 사실이다. 니체의 말을 빌면 그와 감정을 나눴던 시간은 사랑하고 싶은 내 욕망을 채우는 기간이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말 그대로 이타적 감정 같지만, 그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 자신의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사람을 좋아하는 자기만족적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니체 옆에서 라캉도 거들듯이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국 너의 실체가 아니라 내 욕망이 만든 네 모습이라 해도, 우리는 아무나 욕망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오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듯이, 결국 내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욕망에 잠겨 죽어도 좋을 그런 욕망의 대상을 찾는다. 엉망진창이 되어도 좋으니 기꺼이 휘말리고 싶은 그런 사람을. 그런 사람을 발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고, 상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우주적인 이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말이 맞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당신이 아니라 나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몰입해서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휘두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거기서 멈추길. 사랑은 원래 오해로 가꾸는 꽃밭 같은 것이지만,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나 욕망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에 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아닐까. 감정도 욕망도 그저 사랑의 한 모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