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독일의 생일 문화)
오늘은 오랜만에 <장난감 공장> 매거진에 글을 올립니다. 계란판으로 해적선 만드는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독일의 생일 문화도 살짝 소개해 드리려고요.
첫째가 네 살이었을 때, 독일에서 처음으로 친구에게 생일 파티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유치원에서 항상 지음이를 잘 챙겨주던 같은 반 친구 펠릭스가 여섯 살이 된다고요. (독일 유치원은 연령을 섞어서 반을 구성합니다.) 우주선과 외계인 테마로 파티를 한다고 귀여운 우주선 모양의 초대장이 왔습니다.
바로 자투리 종이 같은 것을 모아두는 상자(..라고 쓰고 쓰레기 상자라고 읽는다)를 뒤져서 작은 우주선을 만들고 자두맛 사탕을 하나 붙여서 답장 카드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보시겠지만 독일에서는 아이들 선물 포장에 작은 사탕이나 젤리 봉지를 붙이고 여러 색깔의 끈을 나풀나풀 묶는 희한한 비주얼이 굉장히 일반적이거든요.
처음 받아본 생일 파티 초대장이 너무 소중했던 아이는 며칠간 초대장을 손에 꼭 쥐고 다녔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물.
독일에서 생일 파티 초대는 처음이라서 선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원래 독일에는 Wunschkorb(영어로 직역하면 wish basket)라는 게 있어서, "어느 가게 어느 지점에 우리 아이의 Wunschkorb를 등록해 두었어요."라는 문장이 초대장에 들어있기도 합니다. 아이들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사러 가는 뮐러나 로스만 같은 곳에, 이렇게 아래 사진처럼 원하는 물건들을 담아두고 그중에서 골라서 선물로 사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에요.
최근에 둘째가 초대를 받았던 프란츠의 생일 때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뮐러에 Wunschkorb가 있었어요. 안젤리나와 프란츠, 두 명 밖에 없어서 찾기도 쉬웠다는.
열어보니 프란츠가 원하는 선물들이 들어있고, 가격이 적힌 리스트가 함께 있었어요. 독일에서는 애고 어른이고 비싼 선물에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문화가 있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어른들도 주로 직접 만든 것들을 소중해하고 아주 작은 것에 기뻐하거든요.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선물이 주로 10유로대, 비싸 봤자 20유로 선인 것 같습니다.
초대받은 친구들이 이미 많이들 사갔는지 남은 게 별로 없더라고요. 아이가 주저앉아서 "엄마, 프란츠는 이걸 좋아할 것 같아."하고 아주 세심하게 고른 것을 사 와서 포장하고, 한국 과자 한 봉지를 더 넣어서 보냈습니다.
어쨌든 펠릭스 때는 Wunschkorb 따위 몰랐고, 생일인 아이가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어 하는지 물어본다는 옵션도 머리에 들어있지 않았던 때라 (독일에서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신다면, 그냥 담백하게 물어보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냥 제가 선물을 기획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좋아할 만한 것, 직접 만든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것.
아이의 Freundbuch(친구들이 한 장씩 꾸며주는 우정 책 같은 것이 독일 유치원에서는 몇 년째 변함없이 유행입니다)를 뒤져보니 펠릭스가 해적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계란판으로 해적선을 만들어서 오목한 부분에 작은 선물을 넣어주기로 했습니다.
집에 있던 사탕과 초콜릿, 지우개 같은 것을 넣고 문구점에서 나무 스탬프도 하나 사서 넣고 이름을 쓴 예쁜 돌도 하나 넣고요.
그래도 선물인데 뭔가 번듯한 것도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지음이랑 상의한 결과 얼마 전 크리스마스 때 뉴욕에 갔다가 사온 작은 엠엔엠 손풍기(안에 초콜릿도 들어있어요)를 넣기로 결정.
돛대는 보시다시피 동물 머리 장식이 달린 연필 두 자루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왜 이렇게 똑똑한가, 하면서 니체처럼 계속 셀프 감탄한 것은 안 비밀) 그리고는 빳빳한 색지로 생일 카드이자 돛이 될 부분을 만들었어요. 당시 아이가 아직 글씨를 잘 못 쓰던 때라서 카드는 제가 대신 써 주고, 펠릭스의 여섯 살 생일을 축하하는 부분만 아이가 직접 썼어요. 지금 보니 엑스가 약간 옆구르기를 해서 펠릭스가 펠리트가 되어 있군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봐도 해적선 느낌이 안 날 것을 미리 알고 문구점에서 스탬프 살 때 같이 사 온 해적 스티커를 붙여서 꾸미게 했습니다.
완성된 모습.
유기농 참깨바와 과일사탕, 젤리빈이 추가되었군요.
여러분, 아래 보이는 이 어지러운 나풀나풀이 독일 선물 포장의 핵심입니다. 무엇이 독일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특히 아이들 선물 포장에는 저 나풀나풀들이 풍성하고 기다랗게 나부끼는 것이 덕국의 국룰입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아이들 생일 파티는 문 앞에서 아이만 던져두고 오는 겁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조선의 에미다!" 몸으로 말하며 현관 안으로 쓱 따라 들어갔지 뭡니까. 그런데 어라? 보니까 다른 부모들은 아무도 없길래 빠른 상황 판단 발동, 먼저 들어간 아이를 불러서 한국말 발사. "어, 엄마가 보고 싶어서 불렀어.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고맙습니다 잘하고. 이따가 엄마가 데리러 올게. 뽀뽀!" 하면서 뭔가 미처 전하지 못한 중요한 지시를 주는 뉘앙스로 위기를 극복한 뒤 나왔다고 합니다.
아이는 생일 파티에 즐겁게 참석했다가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는 아이 생일에 함께 놀 프로그램을 부모들이 준비해야 해요. 조금 큰 아이들은 볼링장에 가거나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고, 놀이공간이나 수영장, 실내 클라이밍 센터 같은 곳에서 같이 놀거나 아트 프로젝트 등을 하기도 하지만 아주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부모님들이 게임도 준비하고 만들기 같은 것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지음이는 작은 유리병으로 예쁜 우주선을 만들어 왔었는데, 제가 사진을 분명 찍었으나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우주선은 1년쯤 뒤에 장렬히 사망했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친구들에게는 작은 선물이 담긴 구디백을 나눠줍니다. 보통 자잘한 군것질거리나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어요. 펠릭스는 특별히 화석 놀이를 할 수 있는 돌덩이 같은 것을 나누어 주었더라고요. 아이는 선물들을 몇 번이고 꺼냈다 담았다 하더니 저렇게 덤프트럭과 불도저 장난감에 실어서 귀엽게 전시해두었습니다. 너무 좋았나 봐요.
해적에 심취한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계란판으로 해적선 장난감을 만들고 레고 인간들을 태우고 놀아도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계란판은 만들기 전에 살균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항균 티슈로 살짝 닦아서 햇볕에 잘 소독해서 쓰시면 좋을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한국과는 다른 독일의 생일 문화 두 가지를 소개할게요.
첫째, 생일을 미리 축하하면 안 돼요!
우리는 생일 축하가 늦는 쪽보다는 오히려 생일을 미리 축하하거나 생일 파티도 당겨서 하는 쪽이지만, 독일에서는 반대입니다. 좋은 일을 미리 이야기해버리면 좋은 기운이 나가버린다나요. 우리는 친구 생일을 기억했다가 "내일 생일이지? 생일 미리 축하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배려와 감동의 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굉장히 떨떠름해할 겁니다. 불행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생일 파티를 늦게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저는 아이의 생일을 한 달이나 넘겨서 하는 집도 몇 번 봤고 아예 계절을 넘겨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둘째, 케이크는 생일인 사람이!
우리에게 생일 케이크는 주로 얻어먹는 음식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자기 생일 케이크를 자기가 준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독일 문화예요. 특히 직장에서는 생일날 주로 집에서 만든 케이크를 가져가서 동료들과 나누는 것이 의례적인 행사라고 하는군요. 저는 반려인의 생일에 한국식 고구마 케이크를 들려 보내어 뭇 독일인들에게 이 케이크의 정체는 무엇이며, 레시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수 받아낸 적이 있습니다. 흐흐.
독일어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이렇게 합니다.
Alles Gute zum Geburtstag! (알레스 굿테 쭘 게부어쯔탁!)
Herzlichen Glückwunsch zum Geburtstag! (헤르쯜리혠 글뤽분쉬 쭘 게부어츠탁!)
한글로 쓰는데도 침이 튀는 느낌이네요.
평범한 오늘도, 생일처럼 기쁜 날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