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Mar 22. 2020

[장난감+놀이]집콕의 시대, 느그 집에선 뭐하고 노노?

김광규 배우님 목소리로 읽어 주세요

제가 살고 있는 독일 바이에른 주에 외출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병원(반려동물도 없으면서 '동물병원 포함'이라는 점에 설레는 나...)이나 약국을 갈 수 있고, 식품을 구입하러 나갈 수도 있고, 어르신이나 환자분이 계신 집을 방문하거나 혼자 산책('반려견 산책도 포함'이라고 해서 또 한 번 설렘...)이나 조깅도 할 수 있어서 당장 발에 족쇄가 채워진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놀이터를 간다든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건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철학적 성찰도 필요하고, 슬픔에 대한 위로도, 불안에 대한 다독임도 필요한 시기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지치지 않는 엔터테이닝도 필요한 이 시기. 특히 집구석을 놀이공원으로 개장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장난감 공장에 글을 쓸 차례가 되어 이번엔 어떤 아이템을 올려볼까 생각했는데, 그냥 휴교령이 내려진 이후 며칠간 저희 집 풍경을 소개하기로 했어요. 별 건 아니지만, 내적 비명을 지르고 계신 부모님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어느 때보다 엄마 아빠들의 장난감 공장이 힘차게 돌아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이들은 만 5살, 3살입니다. 연령대를 참고하셔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시면 저도 글을 올리는 보람이 있을 것 같네요.)


1.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하지만 사러 나가긴 어려운 시기. 이럴 때일수록 쓰레기를 가지고 놀아봅시다.


1) 주스 상자로 만드는 퍼즐과 마블런(marble run)

둘째가 볼을 붉히며 좋아하는 체리 주스. 열 개가 든 상자째로 사들고 왔는데 나흘 만에 두 놈이 콸콸 마셔버리고 빈 상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양 손으로 딱 잡고 놀기 좋은 아담한 사이즈인 데다, 무엇보다 옆에 손가락 들어가는 구멍들이 뽕뽕뽕 뚫려 있는 이 은혜로운 디자인.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장난감을 두 개 만들어서 잘 놀고 있습니다.

일단 한 면을 뜯어 낸 뒤 가위로 슥슥슥 잘라서 퍼즐 완성.  

28초 만에 퍼즐이 생성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과자 봉지로 아이들에게 퍼즐을 만들어 주신 걸 보고 이 분 천재다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만들려고 보니 과자 봉지는 흐물거려서 뒤에 빳빳한 종이를 대 줘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마블런을 만들려고 박스의 한 면을 뜯는 순간 느낌이 뙇, 이거다.
박스는 그 자체로 빳빳해서 딱 좋습니다. 대충 썽둥썽둥 오려 주니 아이들이 오가며 한 번씩 만들고 노네요. 싫증 나면 바로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오늘도 밥 먹기 전에 경건하게

마블런도 대충대충 만들었습니다. 다 쓴 색연필 자루를 글루건으로 붙이고, 구슬이 떨어질 수 있는 함정 구멍도 두어 개 뚫어주고요.

대애충 만든 오늘의 후진 마블런

장난감의 경우에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게 제일 좋지만 (그럴 경우, 그 자체가 너무나 신나는 놀이겠지요!)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해서 제가 뭔가 만들어 줘야 할 때,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고려합니다.


1) 엄마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면 만들다 지친다 (=그리고 쉽게 못 버린다 = 집안이 쓰레기장이 된다 = 어후)
2) 대충 만들어 놀다가 깔끔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3) 애들이 스스로 오랜 시간 갖고 놀 수 있는 게 좋다


이번 마블런은 어쩌다 위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아이템.
글루건은 테이프보다 떼어내기가 간편해서 의외로 분리수거가 편하답니다.

내 자식이 갖고 놀기 딱 좋은 아담한 사이즈

아이는 함정 구멍을 통해 구슬을 굴려 넣은 뒤, 지정한 숫자 구멍에 넣는 놀이를 더 좋아합니다.  

어려움. 나도 못 함.


2) 광고지로 엄마 심부름 하기


두 번째 쓰레기 이용 놀이는 광고지를 이용한 엄마 심부름 놀이입니다.


초등학교 중고학년 아이들: 신문 자로 문장 만들기 놀이
그보다 어린 아이들: 광고지로 장바구니 채우기 놀이


이렇게 나누어 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폐품 내는 날에는 (아 이 옛날 사람) 반 아이들이 각자 신문지 한 장씩을 펼쳐 놓고 선생님께서 칠판에 써 주시는 문장 하나를 종이에 먼저 오려 붙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하곤 했어요. 엄청 재미있었거든요. 이걸 우리 집 꼬맹이들이랑 하려니 어려울 것 같아서, 그림 버전으로 바꿨습니다.


일단 광고지를 훑어보고 심부름 목록을 적습니다. 그리고 장바구니 하나 대충 오려서 벽에 붙여주면 됩니다.

어이쿠 술 심부름을 시키고 말았군요;;;;;;
한글을 읽을 줄 아는 형아가 불러주고, 함께 찾아서 갯수 세어가며 오려 붙이고, 산 물건은 가위표도 치고

듣도 보도 못한 신묘한 원근법을 선보이는 장바구니 안에 든 물품들. 엄마 심부름에 성공한 아이들은 젤리 하나씩을 받았답니다.

재밌었나 봅니다. 둘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찐빵 같은 얼굴로 또 하고 싶다고 하네요 :)

예쁘게 오린 건 형아 작품, 호방하게 오려낸 건 동생 작품


2. 원래 있던 물건들을 새롭게 활용해야 합니다


모든 장난감들을 다 꺼내서 파이팅 넘치게 갖고 놀아도, 일주일째 같은 장소에 같은 물건이면 아무래도 지루할 수 있죠. 이럴수록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새롭게 활용해야 할 것 같아요.

멍 때리면서 한 물건을 오래 쳐다보고 눈알에 힘을 빼고 있으면, 매직아이처럼 이 물건의 놀이 활용 아이디어가 퐁-하고 떠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뭐래...)


사실 저도 그다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없고, 노닥거리며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 머릿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샘솟는 듯합니다.

1) 저희는 일단 하드커버 동화책 전집(크기가 동일하니까 좋아요)으로 탑과 도미노를 쌓으며 놀았습니다. 쉽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시간도 잘 가는 아이템.

뮌헨사지 3층 석탑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딱 요렇게 다 나가 자빠졌으면

2) 미국 살 때 이웃에게 물려받아 아직도 쓰고 있는 퍼즐 매트에서 알파벳들을 빼서 여기저기 숨기고 노는 것은 늘 즐겁습니다. 자기들이 숨기고 자기들이 찾는데, 가끔 자기들이 숨겨둔 것을 못 찾고 엉엉 웁니다.

어지러운 집구석이라는 핸디캡 속에서도 딱 봐도 눈에 보이는 Q와 R

3) 가구는 과학이 아니라 장난감입니다. 저희 집에는 애들이 어찌나 뭘 쏟았는지 그냥 딱 갖다 버리고 싶은 IKEA 소파 베드가 있는데요. 소파 베드라서 쿠션이 움직이니, 요새처럼 꾸며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놀기가 참 좋네요. 경사를 만들어 미니카도 굴리고, 그 안에 온갖 이불과 쿠션을 다 넣어 놓고 거기서 책도 보고 퍼즐도 하고요. 엄마까지  들어가면 꽉 차는데(흠흠), 그러면 엄청 좋아합니다.   

엄마 괴물이 쳐들어오기 전의 평화로운 시간

이렇게 가구들도 놀이터로, 장난감으로 사용하면 즐거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구멍이 뚫린 의자는 재미있는 오목판이 되지 않을까요. 허허.

집에 보드 게임용으로 각각 스무 개 넘는 색깔의 구슬들이 있어서 여기다 오목을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역시 무리였어요. 아직은 그냥 구멍마다 올려놓거나 뒤집어 놓고 구슬을 굴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

소자는 소자의 길을 가렵니다



3. 간식도 그냥 줄 수 없다


1) 간식 찾기 Egg Hunt

예전에 소개드린 에그 바스켓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코 달걀 안에 든 노란 껍질들로, 그냥 무심한 듯 시크하게 모아 두었더니 어느새 일가를 이루고 말았던 그 놈들.
원래대로라면 가장 즐거웠을 유치원 가든에서의 Egg Hunt가 없어졌으니, 집에서라도 해줘야겠다 싶어서 안에 간식을 숨겨서 보물 찾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가장 커다란 알에는 귤을 넣고, 작은 알에는 젤리와 초코볼, 어린이용 목캔디, 마시멜로우, 방울토마토와 포도알 등을 고루 넣어서 여기저기에 숨겼더니 간식 시간이 쭉쭉 늘어나는 효과가.

좌) 오늘의 간식 거리 우) 어디에 숨겼게요?
저 위에 있다! 뭐가 들었지? (feat. 놀라운 상태의 집구석)


2) 간식 컬링(컬링은 아니지만 컬링이라고 합시다. 영미!)

아이들 놀이 테이블에 종이를 깔고 뚜껑과 색연필 준비
오늘의 달달이들 집합
아이들에게 뚜껑을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게 한 뒤, 안에 까까들 이름을 휘갈겨 쓰고
손가락으로 페트병 뚜껑을 튕겨 그 안에 들어가면 득템!

Tips)
1)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무조건 동그라미도 크게 그리고, 넣으면 바로 주는 시스템을 택했는데요. 조금 큰 아이들의 경우에는 동그라미 면적에도 크고 작게 변화를 주고, 그 안에 숫자를 적어 넣어서 합산 점수별로 간식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여기저기에 꽝도 많이 적어 넣고, -5점, -3점, 이런 함정들도 만들고요.   
2)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끝나면 바로 철거하셔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이 놈들이 시시 때때로 거기에 뚜껑을 넣어 놓고 당당히 까까를 요구하는 몹시 귀여운 사태가 벌어집니다.
 


뭐 이러고 놀고 있습니다.

간혹 쓸데없는 일도 아이들에겐 재미있더군요. 양말을 장롱 위로 던져 올리는 놀이라든가(소리 빽빽 지르며 엄청 신나 함). 퍼즐 매트 사이사이에 통아저씨의 작은 장난감 칼들을 가지런히 꽂는다든가.

그 집에선 뭐하고 노시나요? :)

모두들 평안하고 무탈하게 이 시기를 잘 넘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기에 관해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아래 글에 모두 구겨 넣었으니,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https://brunch.co.kr/@jinmin111/79




매거진의 이전글 [장난감] 쓰레기로 놀아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