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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ul 03. 2019

달의 여왕님은 부끄럼쟁이

엄마가 쓰는 동화 2

* 이 동화에 사용된 그림들은 홍콩에 거주하는 아티스트 Joahn 양(10세...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감각!)이 그려주었습니다. 귀한 그림들을 그려주어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


달님 안에는 반짝이는 은빛 피부를 지니고 풍성한 검은 머리를 아름답게 틀어 올린 달의 여왕님이 살고 있어요. 여왕님은 밤마다 달빛으로 영롱한 실을 자아 투명하게 빛나는 망토를 짜지요. 새벽이 되어 해님이 떠오를 시간이 되면 여왕님은 밤새 짠 망토를 은으로 만든 커다란 보석함에 넣어둡니다. 그 보석함 안에는 일곱빛깔 향기가 나는 무지개 구슬이 들어 있어요.

빛나는 달빛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실 잣는 모습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 Joahn 2019

다음 날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여왕님은 무지개 향이 밴 달빛 망토를 꺼내어 길이는 충분한지, 혹시나 구멍이 난 곳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구멍이 있으면 금 바늘에 달빛 실을 걸어 뚝딱, 솜씨 좋게 고쳐 내지요.


세상의 빛이 잦아들고 어둠이 깔려가는 아홉 시. 달의 여왕님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 망토로 온 세상을 폭신하게 덮어 주면, 아기 새도 아기 너구리도 아기 사슴도 그 속에서 색색깔로 빛나는 곱고 행복한 꿈을 꾼답니다. 아침이 되어 망토가 햇빛에 녹아 이슬 속으로 반짝하고 사라지면 모두들 포근한 꿈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지요. 그렇게 여왕님은 밤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매일매일 온 세상이 덮을 망토를 하나씩 짠답니다.

 

여왕님이 사는 달의 궁전에는 씩씩한 바닷게 짤깍이와 호기심 많은 아기 토끼 토달이가 살고 있어요. 튼튼한 갑옷을 입은 짤깍이는 커다란 집게발을 높이 치켜들고 달의 여왕님을 보호하지요. 짤깍이는 매일 밤 게걸음으로 아기작 아기작 달의 궁전과 그 주변을 순찰해요.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짤깍이 덕분에 여왕님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푹 놓고 달빛 망토를 짤 수 있답니다.


구슬 같은 빨간 눈에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옥토끼 토달이는 여왕님의 재롱둥이예요. 토달이는 달의 정원을 깡총깡총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고운 옥색 절구에 별빛을 콩콩 찧어 여왕님이 드실 음식을 마련한답니다. 여왕님은 별빛을 꼭꼭 눌러 담아 빚은 고소한 별빛 만두와 영롱한 면발이 감칠맛 나는 달국수를 가장 좋아해요.


매달 그믐날에 여왕님이 드실 환약을 만드는 것도 토달이의 일입니다. 별가루 한 줌을 옥 절구에 넣고 콩콩 빻은 뒤 달빛 한 숟가락, 새벽빛 머금은 이슬 다섯 방울, 황금숲에서 난 꿀 세 방울을 섞어 조물조물. 이 반죽을 조금씩 동그랗게 빚어 무지개 위에 널어 사흘 동안 말리면 여왕님이 드시는 말랑말랑한 구슬 약이 되지요. 이 약을 먹으면 늙지도 아프지도 않아요. 여왕님이 늘 세상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시는 것은 모두 토달이가 열심히 일한 덕분입니다.


달의 여왕님은 부끄럼이 많아요. 세상 사람들이 달님을 올려다보고 여왕님의 아름다운 미소를 칭찬하기 시작하면, 여왕님은 부끄러워 볼이 빨갛게 되느라 망토를 빨리 짜지 못해요.

볼 빨간 여왕님 (feat. 입이 떡 벌어지는 사람들의 실루엣) ⓒ Joahn 2019

그런 날에는 세상을 모두 덮을 만큼 크고 긴 망토가 다음 날 아홉 시까지 준비되지 못해, 결국 망토 안에 싸이지 못하는 몇몇 아기 동물들은 컴컴하고 무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엄마, 꿈속에서 길을 잃었어요. 캄캄한 산속에서 혼자 너무 무서웠어요.”

“으앙,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나무에서 뚝 떨어져 다치는 꿈을 꿨어요.”

토달이가 새벽에 차가운 샘물을 마시러 무지개를 타고 세상에 내려왔다가, 울며 잠에서 깨어난 아기 사슴과 아기 원숭이의 이야기를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었습니다.

“여왕님께 소식을 전하면 이번에는 또 슬퍼하시느라 망토를 짜지 못할 게 분명해. 그래. 현명하신 달님께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

左) 울며 깨어난 아기동물들 / 右) 샘물 마시며 귀 쫑긋 세운 토달이 ⓒ Joahn 2019

토달이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달님은 여왕님의 수줍음 때문에 가끔 달의 망토를 덮지 못하는 아기 동물들이 불쌍했어요. 무지개 향이 밴 달빛 망토는 아기 동물들이 색색의 곱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거든요. 무지개 향기가 충분히 배지 못하면 칙칙한 색깔의 어두운 꿈을 꾸게 되고, 망토가 너무 짧아 덮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어린 동물들이 무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이를 어쩌면 좋지?


골똘히 생각하던 달님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달님은 밤의 요정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달빛 망토를 덮지 못해 무서운 꿈을 꾸는 아기 동물들을 본 적이 있니?”

“네, 달님. 요즘처럼 구름이 없고 달빛이 환한 날이 이어지면 특히 그런 아기 동물들이 많이 생겨요.”

“맞아요 달님. 사람들이 여왕님의 예쁜 미소를 칭찬하면 부끄러워서 망토를 빨리 짜지 못하신다고 들었어요. 나쁜 꿈을 꾸는 아기 동물들이 불쌍해요.”

“그럼 너희들,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단다.”

“정말이에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달님. 저희가 도와 드릴게요.”

“네. 기꺼이 도와 드리고 싶어요 달님.”

“고맙구나. 너희들이 모두 힘을 합하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란다. 까만 밤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달의 궁전을 덮을 만큼 아주 커다란 커튼을 만들어 줄 수 있겠니?”

“물론이에요 달님! 저희들은 바느질을 아주 잘해요. 금방 만들 수 있어요!”

신이 나서 돌아간 밤의 요정들은 사흘 뒤에 아주 까맣고 커다란 커튼을 가져와 달님께 드렸어요.


달님이 여왕님에게 말했습니다.

“여왕님, 이제 부끄러울 때는 이 커튼 뒤에 숨어서 망토를 짜 주세요.”

부끄럼쟁이 여왕님은 아주 기뻤답니다.


그런데 아차, 더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어요. 수줍음 많은 여왕님이 자꾸 커튼을 치는 바람에 달빛이 모두 가려져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지는 게 아니겠어요! 아기 동물들은 모두 행복한 꿈을 꾸게 되었지만 밤에 숲 속으로 먹이를 구하러 나온 아빠 다람쥐가 나무에 쿵, 엄마 여우가 바위에 쿠당탕, 여기저기 부딪혀 큰 상처를 입게 되었어요. 맛난 가을 밤을 주우러 세상에 내려온 토달이도 앞을 보지 못하고 아이쿠, 그만 냇물에 빠져 쫄딱 젖고 말았답니다.

으하하. 저 이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요. ⓒ Joahn 2019

이 소식을 들은 달님이 달의 궁전에 사는 짤깍이에게 명령했어요.

“짤깍아, 너는 오늘부터 여왕님의 커튼을 조금씩 집게발로 잘라내렴.”

“예 달님!”


짤깍짤깍. 짤깍짤깍.

짤깍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커튼을 조금씩 잘라내자 세상에 비친 달님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갓난아기의 조그만 새끼손톱처럼 보였다가, 며칠 뒤에는 할아버지의 하얗고 도톰한 눈썹처럼 보였다가, 또 며칠 뒤에는 고운 아가씨가 긴 머리를 빗는 참빗처럼 보였다가, 그다음에는 조그맣게 한 입 베어 먹은 둥근 팥빵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어떤 모양의 아주 작은 달빛 조각이라도 세상을 비추는 데에는 충분했답니다.


“어머나, 이를 어째!”

짤깍이가 커튼을 다 잘라내어 크고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세상에 드러난 날, 여왕님은 더 이상 숨을 커튼이 없자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여왕님은 달리기가 빠른 토달이를 내려 보내 세상에 떨어진 커튼 조각을 주워오도록 했어요. 여왕님이 망토를 짜기 전에 잘린 커튼 조각을 하루에 한 개씩 투명한 달빛 실로 이어 걸면, 달님은 또다시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감춘답니다.  


오늘 밤 달님이 뜨면 달의 궁전에 사는 아름다운 여왕님과 고마운 짤깍이, 그리고 콩콩 절구에 별빛을 빻아 송편을 만드는 토달이의 모습을 한 번 찾아보세요. 너무 오래 쳐다보면 여왕님이 수줍어하시니까, 조금만 보고 얼른 잠자리에 들어 모두 함께 달빛 망토를 덮기로 해요.

토달이와 여왕님, 짤깍이 ⓒ Joahn 2019




*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달에 콩콩 절구질을 하는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지만, 다른 나라 친구들은 달에 바닷게가 있다고도 하고 미소 짓는 여인의 옆모습이 보인다고도 하는 것을 보고 이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밤공기를 맡으며 달님 안에 살고 있는 여왕님, 짤깍이, 토달이의 모습도 찾아보고 또 우리 아이들 눈에는 어떤 다른 주인공이 보이는지, 달님 안에는 또 누가 살고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주면 어떨까요.

차례로 여왕님, 짤깍이, 토달이


+
1년 전에 이 동화를 처음 썼을 때 Joahn 양이 이야기를 듣고 그렸던 그림들입니다. 이것도 너무나 근사해서 가져다 놓습니다. 달의 여왕님과 토달이. 딱 눈만 봐도 일반 토끼같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이 느낌.

ⓒ Joah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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