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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무 Mar 27. 2024

[프롤로그] 내가 이혼한 것도 아닌데

1999년생

스물여섯

그리고 이혼


이혼은 자라지 않는 손톱처럼

내 몸 곳곳에 박혀있다.

물론 내가 이혼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혼 가정 자녀로서 겪을 수 있는 전형적인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 인터넷의 수많은 사연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이혼한 부모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사연,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정한 정서, 이혼 자녀로서 겪는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시선.


이런 예측 가능한 사연들 말이다.



하지만, 이혼 가정 자녀가 실제로 겪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것들이 지배적이다.


예컨대,


울고자 할 때 본능처럼 나오는 말 "엄마" 조차

"아빠"하고 울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


"혼자서도 잘하네"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라 일단 그저 웃어 보이는 것 뒤의 복잡 미묘한 마음.


그 외 무수히 존재하는 아주 사소하지만, 마음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혼란을 일으키는 순간들.

너무나 미묘해서 내가 슬퍼해도 되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순간들이 모여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그러다 문득, 나만 이런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번뜩였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이혼율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엔 이혼한 부모를 둔 자녀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대체 왜 내 주변에 보이지 않을까? 의문을 갖던 찰나 결국 나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속엔 내가 아무리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들, 인생을 흔들 만큼 힘들다고 생각한 일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갑자기 별일이 아니게 되는 이상한 마음이 있다. 그런 이상한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심과 위로의 역할을 한다. 이는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의 평범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가 어떤 이의 고민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상이 놀랄만한 대사건 말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소한 마음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어


이혼 가정의 자녀

이혼을 고민 중인 아무개

이혼을 한 아무개2

등등


누군가가 치열하게 겪고 있을 혼란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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