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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무 Apr 03. 2024

10살이 이혼을 받아들이는 법

초등학교 3학년 10살

만화 채널만큼이나 좋아하는 연속극을 보며 대충 이혼이라는 것이 부부가 이제 더 이상 부부가 아니게 되는 것, 결혼했던 남녀가 헤어지는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거니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혼은 비현실적이고 극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어느 날 밤,

나의 부모는 다퉜고 엄마는 떠났고 이혼을 선언했다.


부모의 이혼 선언은

"엄마아빠 이혼할 거야."

아홉 글자로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특별할 것 없이 학교에 갔고 친구들에게 평소처럼 일상을 말했다.



“우리 엄마아빠 이혼한대. 드라마에 나오는 그 이혼 말이야. 완전 드라마 같지? 신기하지? 우리 가족이 드라마 주인공 된 것 같아.”


10세에게 이혼은 TV 너머 일어나는 비현실의 무엇이었으며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은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마치 대단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이혼에 관해 늘어놓는 나를 담임 선생님께서 가만히 둘리 없었다.



"그런 건 친구들에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건 그렇게 크게 떠들 일이 아니야."


아쉽게도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학생에게 네가 겪고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은 어떤 것들인지 설명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우선순위는 이혼을 “그런 것”이라고 칭하며 숨기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10살의 아이는 이혼이라는 것은 숨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로 그 누구도 나에게 이혼이 어떤 것인지, 부모는 왜 이혼했는지, 부모의 이혼으로 내가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이혼 가정 자녀가 되었다.

이혼을 받아들이는 법 따윈 없었다.

그저 “통보” 당한 것일 뿐.




"어린아이니까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이런 어두운 이야기는 아이에게 해서 좋을 거 없어."


그들도 인생에 이혼은 처음이라 아이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했던 서툰 생각과 판단으로 인해 10세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참 많이 방황했다.



부모의 이혼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했으며 결핍의 순간들을 온전히 감내해 왔다.

때로는 자기 연민에 한없이 빠져들기도 하고, 남들에게 나를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하고, 그러다 부모의 이혼이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고 정의하기도 하는 등 치열한 정신의 방황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해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동시에 어릴 적 나에게 이런 것들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마음의 평안이 조금 더 빨리 찾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아이에게 이혼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이혼이 어떤 것인지부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반드시 설명해 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계획을 말해주고 이를 지키는 것은 아이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와 만났지만, 7일 24시간 함께하던 엄마의 존재가 인생에서 1주일에 하루로 줄어든 것은 큰 변화였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만난다는 확실성은 불안감을 줄이는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게 "지속"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1주일에 하루가 2주에 하루로 바뀌고 한 달에 하루, 두 달에 하루로 점차 줄어들었고, 그것은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러니, 이혼이 어린아이에겐 판타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고 이를 지키는 것만으로 아이의 혼란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혼과 별개로 부모는 아이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할 것이라는 것을 백번 천 번이고 말해주는 것이다.




혹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가 이 글을 본다면

첫째,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당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둘째, 부모의 이혼이 생각보다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혹은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태어나 처음 겪는 이러한 변화를 혼자서만 예측하고 힘들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의문이 생기면, 답답함이 생기면, 마음이 힘들면 부모에게 혹은 믿을 만한 어른에게 즉시 물어보고 대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이혼을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그런 것”이라 칭하며 쉬쉬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틀렸다.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힘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부모도 이혼이 처음이라 너무나 소중한 자식인 당신에게 자신들의 헤어짐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당신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혼 자녀가 이혼을 “잘 받아들이는” 법, 공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혼란은 당연한 것이다.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핵심은 그런 혼란을 사전에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겪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10세의 나는 예고편 없이, 불친절한 설명서와 함께 이혼 가정 자녀가 되었고 그로 인해 이혼을 깨닫고 부모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이혼을 아이에게 말할 때 자세한 예고편을 보여주는 것은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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