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무 Apr 27. 2024

이혼 가정 티 안 내는 법

이혼 가정 자녀로서 가지기 쉬운 콤플렉스가 있다.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 콤플렉스.



15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할머니께서 나에게 집안일은 어찌하는지, 공부는 어떤지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엄마도 없이 혼자서도 잘하네."


하고 당신 나름의 칭찬을 해주셨더랬다.

당시엔 감사한 마음으로 칭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내가 늘 속으로만 느끼고 있던 

결핍을 티 내지 않고 혼자 잘 해내야만 한다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들을

누군가 알아준 기분에서 오는 찝찝함이었을까.



누구나 남들에게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결핍이 있다. 이는 가정환경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숨기고 싶은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도 그런 숨기고 싶은 결핍의 일환으로, 이혼 가정 자녀라는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터득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 편견이 덕지덕지 붙은 이혼이라는 주제를 나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쉽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혼 가정 티 내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거창하고 대단하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나 사소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씁쓸한 것들이다.




학교에 다니면 자연스레 친구들과 나의 다른 점을 비교하게 된다. 어느 날은 문득 내 앞에 앉은 반장에게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향수나 화장품 종류는 아니고 빨래 세제 향기였다. 그에 반해 내 옷에서는 아빠가 향이 어떻든 상관없이 마트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산 가루세제 냄새가 났다.


반장은 매일 데리러 오고 반에 간식을 사 와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엄마가 있다. 이에 짐작하기로 엄마가 빨래를 정성스레 해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친구의 향기로운 빨래에서 엄마의 보살핌을 느낀 것이다. 그 뒤로 엄마가 해주는 뽀송뽀송하고 향기로운 옷을 따라 하기 위해 일찌감치 세탁 세제와 냄새 좋은 섬유유연제에 집착스러운 관심을 가졌더랬다. 습한 여름 빨래에서 꿉꿉한 냄새가 날 때면 가차 없이 전부 다 다시 빨았다. 향기뿐만 아니라 구겨진 교복이 왠지 나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 같아 다림질도 유별나게 신경 썼다.


아무도 내 옷을 보고 이혼 가정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그러한 보살핌의 흔적을 따라 해 숨기고 싶은 결핍을 감추고 싶었던 것 같다.



그다음은 죄책감을 덜어가며 습득한 거짓말이다. 남들에게 관심 없는 요즘이라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가족을 언급할 상황이 많다. 예건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어제 엄마한테 혼났잖아. 너희 엄마들도 다 그래? “ 와 같은 상황이 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짓말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인간이라면, 특히 미성숙한 청소년기라면 거짓말은 더욱 어렵다. 처음에는 거짓말 자체에 죄책감이 생겨 괴로웠다. 그리고 거짓말 대신 “부모님이 이혼해서 지금은 엄마랑 따로 살아.”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보는 시도를 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혼 가정 자녀라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멈칫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을 많이 마주했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얕은 관계에서는 가벼운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화 도중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는 편이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작은 거짓말 하는 것이 익숙해졌고 누군가 엄마에 대해 물으면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대며 살아왔다.




그 외에 여러 고민들과 시행착오를 통해 이혼 가정 자녀가 아닌 척 세상을 지내왔다. 굳이 나의 결핍을 티 내지 않으며, 이혼한 부모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실 이 글의 본질은 이혼 가정 티 안 내는 법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출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염원의 글에 가깝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을 때, 같이 일하던 호주 출신 직원과 대화하던 중


“부모님 이혼하셔서 나 엄마랑만 살거든. 그래서 엄마랑 주말에 시간 보내고•••”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으로서, 함께 일한 지 얼마 안 된 동료에게서 불쑥 튀어나온 부모의 이혼 이야기는 아주 많이 놀라웠다.


이후 새로 들어온 다른 직원도 자신의 부모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고 아무렇지 않게 들려주었다. 순간 내가 그동안 남모르게 해온 노력들이 허무해지기도, 동시에 그런 것들에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드러내지 않는 법을 습득하며 살아왔던 내가, 만약 한국이 아닌 곳에 있었더라면 이혼 가정 숨기는 법 같은 고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이혼을 쉬쉬하고 낙인찍기보다 당당히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 있을 땐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오니 한국에서의 내가 이상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자 나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부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이혼은 극적인 무언가도 아니며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숨길 이유도 어색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세상이 이혼한 사람과 그 자녀를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이혼 가정 자녀들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해왔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며 10대를 보내고 나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음을 깨달았다. 티 내지 않기 위해 혼자 힘든 싸움을 하던 시절에 이혼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어른 한 명만 만났다면, 첫 만남에 당당하게 부모의 이혼을 알려주었던 호주의 동료들을 일찍 만났더라면 나의 어린 시절이 조금은 편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이혼 가정임을 학교에서,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표현하거나 숨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담아내기를 권하고 싶다.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몫,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몫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나의 몫으로 끌어와 힘들어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혼 가정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져서, 이혼 가정 티 내지 않는 법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시기가 오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하고 울어도 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