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을 키우는 나를 키우기
한참 학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국화꽃 화분을 샀다.
처음 여기 와서는 꽃을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인생 통틀어서 꽃을 내 돈 주고 사본 기억도 별로 없다. 꽃도 나름 생명인데 말라비틀어져 버리면 괜히 기분이 찜찜해서 그랬다. (한 오분인 게 문제지만) 꽃의 매력을 알기 시작한 건 대학교 때 꽃 선물을 좋아하던 친구한테 아무 이유 없이 받은 예쁜 꽃송이 덕분에 하루 종일 애지중지 들고 다니다 집에 가져갔던 일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좋은 친구들이 줬던 예쁜 꽃들이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강렬히 기억에 남아 꽃이란 건, 오래가지 않지만 받으면 행복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이곳에 와서는 슈퍼에서 파는 한 다발의 꽃도 6000원부터 시작이라 처음엔 사지 않았었다. 학기가 계속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가다가 어느 날 문득 꽃 한 다발도 사지 못하는 내가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해가 짧던 겨울을 지나 밖은 밝고 화창해져 가는데 일주일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지내다 터진 생각이었지 싶다. 그렇게 방 안에 있다가 충동적으로 나가서 세일하는 하얀 장미 꽃다발을 사 왔다. 그다음엔, 노란색과 다홍색이 섞인 예쁜 튤립 꽃다발. 가까운 가족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볼 때마다 예쁘다 하며 약 이주일을 애지중지 다뤘다. 뿌리가 없는 꽃다발이라 그런지 매번 1 주일하고 반을 보내고 나니 보내줘야 할 시기가 왔다. 그리고 다음엔 뿌리가 있는, 화분에 담긴 꽃을 사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왠지 버려지는 꽃들이 안타까웠다.
그다음에 산 꽃이 이 국화꽃 화분이다. 꽃은 한참 전에 다 져버렸고, 지금은 이파리들만 남아있는 초록 초록한 친구. 3월에 사서 지금까지 어찌어찌 같이 살고 있다. 처음에 샀을 땐, 꽃망울들이 많이 달려있는 개화한 하얀 국화꽃이었는데 지금은 (양분만 충분하다면 다시 꽃이 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 초록 이파리 상태. 이 5개월 동안 국화는 열심히 만개하고, 새로운 꽃봉오리에서 꽃도 다시 피어나고 지고, 나는 시험도 끝내고, 졸업도 하고, 취준 생활을 시작했다. 상태는 변했지만, 국화꽃을 살 때의 불안했던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다. 변한 것들 사이에 그대로인 것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우울해야 하는 것인지. 꽃을 방에 들이고 우중충한 색의 방안에 자연의 색으로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은 불안이 조금 더 우세한 이 상황.
꽃이 있으면 좀 낫다는 말은 꽃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있겠지만, 꽃을 돌보는 행위를 통해 아마 나 자신도 돌볼 수 있어서 낫다는 뜻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을 때는 국화꽃이 참 도움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내서 돌봐주면 나의 효능감을 찾을 수 있었거든. 그런데 시간이 많은 지금 이 시기에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을 처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 버려서 꽃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중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물 주는 것밖에 없으면서 말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물을 흠뻑 주고는 있지만, 저 화분에 다시 꽃을 피울 양분이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을 줄 때마다 흙이 빠져나가는 걸 보면 말이다. 계속 물을 주는 이유는 한국 집 베란다에 늘어가는 화분을 가지신 부모님이 다시 꽃이 필 거라고 장담하시길래, 또 이파리가 튼튼하길래 희망을 걸어보고 있다. 괜히 화분에 꽃 피면 내 구직도, 이 불안한 생활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허튼 과몰입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 화분은 물이 충분한지 한번 더 확인해봐야지. 내일도 국화 덕분에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일 테니 초록 친구를 들인 건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대학원생분들 꽃 키우시는 건 어때요? 대학원생들이 아니어도 인생의 어느 스테이지에 있던지 내 공간 안에 초록을 들여보는 건 어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