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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Dec 27. 2020

그들의 점심 장소

미술관의 카페들-3  |  Malmo kunsthall

  안은 낮인데도 어둑했다. 테이블 위마다 놓인 촛불로 마주 앉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둑한 조도 속에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들이 일렁이고, 식기에 포크 등이 조심스레 닿는 소리, 사람들이 나지막하게 주고받는 대화들로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안으로 펼쳐진 광경이 마치 영화 같아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서점과 카페의 경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다들 식사를 하는 분위기라서 여기서 커피만 마셔도 되려나 하면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관의 카페들은 파인 다이닝과 브런치 카페의 중간 정도의 지점에 있는 곳이 많았다. 제철의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고 아름답게 플레이팅 된 근사한 식사를 내어놓는 곳들이었다. 가격대가 약간 있지만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공간이 주는 근사한 분위기와 미술관이 주는 풍요로움을 생각한다면 어떤 날의 점심 약속을 위해 충분히 지불할 수 있을 만한 식사였다. 그래서인지 근처 직장인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와인 한잔을 곁들인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은발의 노부부들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와서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점심 모임을 가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들 일상의 점심 장면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말뫼의 현대미술관 안에 있는 이곳은 점심시간 동안 샐러드바가 제공되는 메뉴를 운영하는 듯 보였다. 메인이 되는 메뉴가 테이블로 서빙되고, 홀의 중앙에는 샐러드 몇 가지를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이 정도의 규모의 다이닝 카페를 가진 미술관들에서 비슷하게 운영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단품 메뉴 한 가지와 샐러드바 사이에서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근사해 보이는 단품 메뉴 한 가지를 선택하고서 샐러드바를 여유롭게 즐기는 건 다음 기회로 미뤄둔 채 부러운 시선으로 보곤했다.


  테이블 위에서 깜빡거리는 촛불의 행렬들을 지나서 어둑한 다이닝 공간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오른편으로는 붉은색 벽돌로 된 벽이 안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어디론가 통하는 무수한 문들을 갖고 있었다. 그 문들은 비둘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벽과 다이닝 공간의 천정이 만나는 곳에는 살짝 경사진 지붕이 있었다. 거기에는 하늘로 천창이 나있어서 밝은 빛이 들어와 벽돌벽을 타고 흘렀고, 안으로 스며든 빛은 비스듬하게 퍼져나갔다. 이 공간이 너무 격식을 차린 듯 보이지 않은 이유는, 벽돌벽이 가진 따뜻함의 색깔과 천장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다정한 빛줄기 덕분인 것 같았다.


미술관 카페의 기록, malmo kunsthall


  그 벽의 끝에는 다정한 모습의 팬트리가 있었다. 카페 메뉴의 주문을 받는 곳이면서 안쪽으로는 식사를 만드는 분주한 부엌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문을 열고 한번 더 들어간 안쪽에 위치해있어 또 다른 작은 가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꼭 여행지의 숙소 근처에서 볼법한 소박한 동네 카페를 닮아있었다. 하얀 손글씨가 적힌 까만 칠판이 그날의 메뉴판이 되고, 3단 트레이 위에 페이스트리를 소복이 쌓아놓은 단정한 카운터가 있는 곳이었다.


  가장 깊숙한 곳에는 창 너머로 미술관의 안뜰이 보였다. 비밀의 화원같이 소박하고 헝클어진 모습이다. 나무가 기울어져 아늑한 그늘을 만들고, 바닥에는 노란 낙엽들이 무수히 떨어진 그 정원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무심하게 놓여있었다. 애써 가꾸거나 단장하지 않아서 어딘가 비밀스럽기도 한 정원의 모습이다. 그리고 스웨덴의 가정집의 소박한 담장을 떠올리게끔 하는 아이보리색 낮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시 다이닝 공간으로 들어와 본다. 이 공간에 몽환적인 공기를 불어넣는 것은 아마도 근사한 천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한 조도 속에서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들을 반사시키면서 일렁이는 천정의 모습은, 밤의 호수 아래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천정은 공간에 맞추어 정교하게 짜여진 메탈패널의 모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사물들을 일렁이듯 반사시켰다.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 신기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다.


  우리를 제외한 모두 대부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창가 쪽의 한 테이블이 유독 눈에 띄었다. 멋지게 차려입은 은발의 노부부 두 커플이 점심 모임을 갖고 있는 듯했는데, 그 모습이 우아하고 근사해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우연히 미술관에 왔다가 이곳 사람들의 멋진 점심 장소를 발견한 것 같아 근사한 기분이 들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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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점심 장소,

Malmo Konsthall, Sweden,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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