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길 위에서

그대도 단단한 꽃길이길

by 무명이

행복에 대하여 — 비교하지 않는 삶 속에서

어제 문득 잠자리에 누웠는데,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행복은 너무나도 주관적이기에, 그것을 향한 절대적인 법칙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그 무형의 감정을 위해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냈다고 느끼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무언가를 만나는 순간이 행복일까?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결국 평온하고 걱정 없는 상태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나는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고양이가 고요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 가족 모두가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밤, 직장이 있어 생계 걱정 없이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지금 사실 내 주변은 행복의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평온함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내 신경이 무뎌서,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일할 때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을 만큼 나 자신의 삶에 몰두했었다. 타인과 비교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기에 오히려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게 곧 행복으로 이어졌다.

비교가 만들어내는 불행

요즘은 물질이 넘치는 시대다. 하루만 지나도 유행이 바뀌고, 새로운 제품이 쏟아진다. 선택지가 넘쳐날수록 오히려 내 삶을 차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작고 귀여운 경차를 타는데, 나에게는 그 어떤 고급차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1년 전, 외국 임원과 함께 한국을 돌며 호텔 오너들을 만났을 때였다. 키 큰 호주 임원을 내 작은 차에 모시고 다니는 모습이 낯설었는지, 한 오너가 “차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괜찮았고, 내 상사도 “신경 쓰지 말라”며 쿨하게 넘어갔지만, 괜히 상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를 했었다. 그때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저 사람들의 시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마. 너 자신의 삶을 살면 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사회적 격식과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것, 그리고 남들과 삶을 비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격식은 배워가면 되는 것이지만, 비교는 나를 갉아먹는 독이다.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그 욕심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결국 나만 변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이었다.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가치와 비교의 시선

라오스로 혼자 생일 여행을 갔을 때, 게스트하우스 호스트의 낡은 봉고차가 유난히 멋져 보였다. 곧 고장날 것처럼 삐걱거리는 차였지만, 그가 애정을 담아 손수 고치고 꾸민 모습에서 진짜 품격이 느껴졌다. 그때 생각했다.

“남들과 비슷하게 맞춰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살자.”

남들과 비교하는 삶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점점 멀어진다. 각자의 삶에는 고유한 방식이 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타인과의 기준에 나를 맞추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꼴이 된다.

체제와 행복에 대한 질문

미국에서 함께 일했던 슬로바키아 출신의 ‘마리아’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가 너무 그리워.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선 다들 똑같이 힘들었고, 그렇기에 이웃과 가족이 모두 함께 행복했고 힘들었고, 모두가 힘드니 힘들다고 생각도 안했던거 같아 모두가 힘드니깐 그게 평범함과 일상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너무 빨리 변했고, 빈부격차라는것이 생겨났고, 격차가 있음에 비교하게 되니깐 그래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아.”

그 말은 내게 꽤 충격이었다. 자본주의가 당연히 더 나은 체제라고 의심 없이 믿어왔던 나에게 처음으로 물음표가 생겼다. 자본주의는 분명 성취와 보상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끝없는 비교와 욕망을 부추기는 체제이기도 하다. ‘Life vs Capitalism’이라는 질문이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니게 된 시대다.

오늘 신문에서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조차 갚지 못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금 부를 누리는 이들이 정말 ‘열심히 일한 결과’로만 축적했을까? 체제의 문제와 인간의 욕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하다.

행복은 결국 나로부터

결국 각자의 삶에는 제각기 방식이 있고, 사정 없는 사람은 없다. 나의 삶을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남들과 비교할 시간 없이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그 순간순간이 어쩌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오늘 대학원 졸업시험이 있었다. 해야 할 일들 중 하나가 처리되니, 볼링핀 하나를 쓰러뜨린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 큰 숙제가 남아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편안하다.

행복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비교를 거부하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나만의 삶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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