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관 <구부러진 길>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늙었냐며, 두 손을 잡고 엄마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은 늘 야위고 주름진 모습이다.
어느 여름이었다. 전날부터 잠을 설쳤던 엄마는 날이 밝자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 준비를 했다. 마치 미팅을 나가는 열여덟 살 소녀처럼. 그날 엄마는 어렸을 때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를 30여 년 만에 만나러 나가는 길이었다. 엄마 말로는 둘이서 모든 비밀은 다 공유하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늘 붙어 다녀서 동네 아줌마들이 ‘쌍둥이’ 같다고 놀릴 정도였단다.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와 30년이란 세월을 연락도 못 하고 떨어져 지내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몇 벌 되지도 않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더니 결국 제일 편한 바지와 재킷을 하나 걸쳤다. 평소보다 화장도 꼼꼼하게 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만남. 저녁 무렵에야 돌아온 엄마의 얼굴은 웬일인지 어두웠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좋았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참 곱더라.”
엄마가 보여주는 휴대폰 속의 사진을 보았다. 정말 큰 주름 없이 팽팽하고 하얀 얼굴의 할머니가 엄마 옆에서 웃고 있었다.
“엄마 그렇게 늙어 보여?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상했다 그러네. 관리 좀 하래.”
한두 번 들었을 때는 그냥 웃고 넘길만했는데, 자꾸 들으니 신경이 쓰이신 눈치였다.
그들은 엄마의 세월을 모른다. 시부모님과 남편, 자식 다섯과 함께 살아내야 하는 삶이 어땠는지. 얼굴에 바르는 크림 하나도 아까웠고, 자식들이 입다 버린 다 늘어난 티셔츠도 아까웠다. 그렇게 엄마가 쏟은 땀과 눈물 덕분에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있을 수 있었다.
엄마의 주름이 늘수록 우리의 행복이 늘었다.
이따금 형제들이 모여서 옛일을 회상하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엄마 덕분에 부족함 없이 즐거운 기억뿐이었다. 우리가 웃으며 자라는 동안, 엄마의 얼굴은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한 번도 모지 못한 주름 없이 고왔던 오래된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종종 엄마를 꼭 닮은 이모들의 고운 얼굴을 보며 씁쓸한 상상을 한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저렇게 나이들 수 있지 않았을까!’
70이 넘은 나이에도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지금도 주름진 길을 걷고 있는 엄마. 본인이 부양을 받아야 할 할머니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방금 무친 나물이며, 겉절이를 그릇마다 담아서 한 바퀴 빙 돌고 오시는 엄마.
엄마는 지금도 주름진 길, 구부러진 길 위에 서 있다.
“어르신이 입맛이 없었는데 나물이 맛있어서 밥 한 그릇 다 잡수셨대.”
나는 엄마의 얼굴이 좋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눈물이 자꾸 차올라서 힘이 들지만, 엄마의 얼굴을 보면 세상을 살아가며 쌓인 서러움도 불만도 다 녹아내린다.
이 주름 앞에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수많은 주름 사이로 들어앉은 엄마의 한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엄마는 늘 웃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가 웃으면 주름은 더욱 선명해지고 춤을 춘다.
한 많은 세월을 저렇게 웃어버릴 수 있는 엄마가 난 참 좋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힘을 낼 수밖에 없다.
<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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