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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0. 2021

#11.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송수권   <산문(山門)에 기대어>

“우리 할머니 아들 둘, 딸 둘 키우느라 힘들었죠!”     

“오~냐. 쌔 빠지게 힘들었다. 고생 징하게 했다. 아들 둘, 딸 둘.”     


사는 게 바빠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 힘든 고모들이 오면 할머니와 아빠는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이제는 손주도 있는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이지만, 특히 아빠의 눈에는 고모들이 여전히 사춘기 소녀들로 보이는 것 같았다. 고모들이 친정에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늘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빠는 웃었다.

     

“우리 ○○,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니?”     

“아유, 오빠! 그런 말씀 마세요. 저도 이제 쭈글이 할머니예요. 어딜 가도 저 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어요.”

"내 눈에는 이렇게 이쁘기만 한데?"     




꽤 오랫동안 나는 아빠의 형제가 '아들 둘, 딸 둘'의 오붓한 사 남매인 줄 알았다. 그 여름날, 할머니의 오래된 이야기를 처음 듣기 전까지는.  

     

가까이 지냈던 동네 친구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거나, 한동안 소식이 없던 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을 때면, 할머니는 오래된 가슴속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껌껌한 밤 중에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난 이야기, 일본에서 온 (할머니의) 아버지의 편지를 받으러 여섯 살 소녀가 혼자서 면 소재지까지 혼자서 심부름을 다녀왔다는 이야기, 먹을 것이 없어 재를 몇 개나 넘고 넘어 친정에 옥수수와 보리쌀을 받으러 갔던 이야기, 6‧25 난리통에 만난 콧대 높고 눈 퍼렇던 미군의 이야기 등등. 그중 아주 이따금, 어렵게 꺼냈던 건 바로 먼저 보낸 ‘딸’의 이야기였다.   

   

두 고모 외에 다른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나는 매우 놀랐다.     




여름 내 마당에 펴놓았던 대나무 평상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난 어느 저녁이었다.  샛별이 서둘러 ‘반짝’ 떠올라 있었고, 아직 푸르스름한 빛이 남아 있는 마당은 제법 선선했다.


“얼매나 이뺐는지 몰라. 얼굴은 목화같이 흭하고, 자르르 윤기 나는 꺼먼 머리카락을 따서 묶으면 얼매나 이삐든지. 하루는 내가 조각 비단을 요라고 붙이고 붙여서 색동저고리를 만들어 입했는디 말이다. 가시네가 빵긋빵긋 웃으면서 얼매나 좋아하든지. 이라고 이삔 애기는 첨 본다고 보는 사람들마다 만져본다고 너도나도 난리였단마다. 그라고 이뺐는디. 참말로 이뺐는디…….”     


지금도 색동저고리를 입고 엄마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던 어린 딸래미가 생각나는지, 할머니는 한동안 멍하니 말을 잃었다.  그리고 괜히 코를 ‘팽’ 푸시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셨다.     


“아빠, 아빠도 기억나요? 돌아가신 고모?”     


할머니가 피곤하시다며 방으로 들어가시자, 나는 옆에 있던 아빠에게 물었다.     


“기억이 나다마다. 생생하지. 진짜 예뻤지. 니 돌아가신 첫째 고모는.”     


아빠의 그런 얼굴을 본 것은 네 살 때 할아버지 장례식 이후 처음인 듯했다. 나를 등에 업고 문상객들 몰래

숨죽여 울던 거울 속 아빠의 얼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날의 아빠의 얼굴을 나는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어.  얄궂은…….”


아빠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차갑게 식어간 누이의 모습 대신, 온 가족의 기쁨이었던 햇살처럼 밝고 고왔던 누이의 얼굴만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었다.     


오랜 세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를 그리워했을 엄마와 딸은 저 천국에서 감격의 재회를 했을까. 여름과 가을이 힘 겨루기 하는 시절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올리며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를 읊어본다.

    

피붙이를 그리워하고 누이와의 재회를 갈망하는 애타는 오라비의 마음은 종교의 다름을 떠나 인간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 같은 애달픔이고 같은 그리움인 것을.      

▲ 할머니와 고모는 뜨거운 가슴을 끌어안고 재회했을까!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송수권 시인의  육필 원고 [출처 : 울산매일UTV]



[참고]

✽ 그리메: ‘그림자’의 옛말

✽ 즈믄: ‘천(千)’의 옛말, 많은


송수권 시인의 ‘山門에 기대어’에 등장하는 ‘누이’는 엿장수를 하며 송 시인의 대학 등록금을 대어준 착한 남동생이었다. 이 작품은 굴곡 많은 세상을 비관해 일찍 생을 마감한 그 착한 아우를 부르짖는 형의 노래이다. 시인은 ‘아우야…’가 아닌 ‘누이야’로 시를 썼다.


▲ 송수권 시인  [출처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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