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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6. 2021

일본에는 추석이 없다고요?

크라스마스도 공휴일이 아니라는 사실!

일본도 추석 연휴 보내죠?


안부 인사를 나누던 지인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곧 추석이다.


"아뇨. 일본에는 추석이 없어요."


나의 대답에 그녀는 놀란 기색이다. 음력도 사용하지 않는다 말을 이으니 정말 몰랐다며 신기해한다.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이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더 충격을 받일까. 흥미로워하는 그녀를 보니 문득, 내가 처음 일본의 달력을 보고 놀랐던 때가 생각난다.


오래전 도쿄에 여행을 왔을 때다. 더위를 피해 잠시 구경하러 들어간 작은 가게에서 눈에 띈 달력을 발견했다. 아기 고양이가 빨간 털실뭉치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이 열두 장에 빼곡하게 채워진 탁상용 달력이었다. 1월, 2월, 3월...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우리나라의 공휴일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보였다.


“이것 좀 봐봐! 달력 재밌어.”

에어컨 바람 앞에서 뻘겋게 익은 얼굴을 식히는 동생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같은 동아시아 국가여서, 일본의 풍습이 우리와 많이 비슷할 거라 흔히들 생각한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지만, 의외로 다른 점이 많다. 오늘 그녀와 나의 화두인 ‘공휴일’만 보아도 그렇다.


간단히 일본의 공휴일을 소개할까 한다.




● 1월 1일 신정(元日)
음력으로 설을 보내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새해 첫날을 기념한다. 많은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그 해의 첫 번째 해돋이를 보러 가거나, 하츠모데(한 해 첫 신사 참배, 初詣)를 한다. 공식적인 공휴일은 1월 1일 하루뿐이지만, 주위에는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약 1주일 정도 연휴를 갖는 이들이 많다.


● 1월 11일 성년의 날(成人の日)

신정 다음으로 찾아오는 1월의 두 번째 공식 휴일은 성인의 날이다. 오래전 일본의 성년의 날은 1월 15일 이이었는데, 2000년부터 매해 1월 두 번째 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성년의 날이 가까워지면 곳곳에서 한껏 멋을 낸 스무 살 내기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살고 있는 지자체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는데, 올해 역시 코로나 여파로 성인식은 취소되거나 간소화되었다.


● 2월 11일 건국기념일(建国記念の日)

우리나라의 개천절(10월 3일)과 비슷한 일본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 2월 23일 일왕 탄생일(天皇誕生日)
일본은 재위 중인 일왕의 탄생을 기념한다. 2018년까지는 12월 23일이었지만, 2019년 5월 나루히토 현 일왕이 재위한 이후로 그의 생일인 2월 23일로 변경되었다.


● 3월 20일 춘분의 날 (春分の日)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춘분을 공휴일로 지정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24절기 중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로 농경사회였던 선조들에게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날이었다. 일본 정부는 ‘계절 변화를 앞두고 자연을 기리며 생명을 소중히 하자’는 의미로, 1948년부터 ‘국민의 휴일에 관한 법’에 따라 춘분과 9월 하순의 추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쇼와 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로, 일본의 최대 명절(연휴) 중 하나인 골든위크*가 시작되는 날이다.

* 골든위크(Golden Week)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이어지는 긴 연휴를 말한다. 해에 따라 기간은 조금씩 다른데 좋은 계절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전국은 어디나 북적인다.


● 5월 3일 헌법기념일(憲法記念日)
일본의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날로 우리의 제헌절(7월 17일)과 같은 맥락이다. 정확히는 일본 헌법이 제정(1946.11.3)되고 시행된 반년 후의 날(1947.5.3)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 5월 4일 녹색의 날(みどりの日)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의미로 지정된 공휴일인데, 한국의 식목일과 비슷하다. 다만, 한국의 식목일은 휴일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 5월 5일 어린이날(こどもの日)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날은 5월 5일이다.


● 7월 23일 바다의 날(海の日)

섬나라에서 '바다' 존재는 무시할  없을 .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자는 의미로 지정된 바다의 날은 매해 7월의  번째  월요일이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7 23)으로 2021년의 바다의 날은 특별히 7 22일로 변경되었다참고로 우리나라의 바다의 날은 5 31일이다.


● 8월 11일 산의 날(山の日)
산의 은혜에 감사하자는 의미의 '산의 날'은 원래 매해 8월 11일이다. 2021년은 올림픽 폐막일인 8월 8일로 변경*되었다.

* 2020년에 열리지 못한 도쿄 올림픽(2021.7.23~8.8.)을 어렵게 개최하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대회 기간 중의 선수와 관객 등을 원활하게 수송하고, 일본의 경제 활성화와 시민들의 안정된 생활이 공존할 수 있도록 7, 8월의 공휴일을 조정했다.


● 8월 15일 전후 오봉(お盆)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많은 일본인이 기념하는 명절이 '오봉(お盆)'이다. 돌아가신 선조를 기리는 점은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추수 감사의 의미는 없다.


* 우리나라처럼 추석을 명절로 기념하지 않는 일본에도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일본에서는 음력 8월 15일에 뜨는 보름달을 특별히 '중추의 명월(中秋の名月)'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보름달은 농사와 관련되어 '고구마 명월(芋名月)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가위 보름달(음력 8월 15일)과 '삼십야(十三夜)'라고 부르는 음력 9월 13일에 뜨는 보름달을 감상하는 '달맞이(月見)'를 즐긴다. 

[참고] https://www.nao.ac.jp/astro/sky/2021/09-topics03.htm

▲ 2021.9.20.(월) 커다란 한가위 보름달이 떠올랐다. 산책을 하던 사람들 모두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멈췄다.


● 9월 20일 경로의 날(敬老の日)
어른을 공경하자는 의미로 지정된 날로, 매해 9월 셋째 주 월요일이다.


● 9월 23일 추분의 날(秋分の日)
춘분의 날에 이어 추분의 날 역시 24절기 중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해에 따라 <경로의 날>과 <추분의 날>이 하루를 건너뛰는 징검다리로 생기기도 하는데, 사이에 낀 평일이 국민의 휴일(国民の祝日)에 의해 대체 휴일이 되어 3일의 연휴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실버 위크(Silver Week)'라고 부른다.


● 10월 둘째 주 월요일(スポーツの日)

원래의 이름은 '체육의 날'로,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기념한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10월 10일을 1966년부터 '체육의 날'로 기념하였다. 하지만, 2000년부터 도입된 해피 먼데이 제도(ハッピーマンデー制度)에 따라 매해 둘째 주 월요일로 옮겨졌다. 특히, 일본 정부는 2021년에 한해 올림픽 개회식 날짜인 7월 23일로 변경했다.


● 11월 3일 문화의 날(文化の日)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국민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11 3일은 1946(쇼와 21) 일본 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2 전쟁(세계 2차 대전)  1948(쇼와 23) 공포 시행된 법률인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약칭 축일법)」에 근거하여 문화의 날로 정해졌다. 문화의 날에는 일부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이용할  있다.

 한편, 전쟁 전 <문화의 날>은 메이지 일왕(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이지절」이라고 불린 축일(기념일)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전의 기념일은 일왕이나 왕실의 행사에 관련되는 것이 많았는데, 종전 후, 새롭게 축일을 결정하던 때 대부분이 폐지되었다. 당초에는 11월 3일을 <헌법기념일>로 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메이지 천황의 생일이었던 날을 전쟁 후에 새로 제정된 헌법을 축하하는 날로 정하는 것을 두고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GHQ(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왕(천황)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헌법이 평화와 문화를 중시하여 문화의 날을 새로운 이름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참고] https://precious.jp/articles/-/22882


● 11월 23일 근로 감사의 날(勤労感謝の日)

근로를 존중하고 생산을 축하하며 국민이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의미로 제정된 이 날은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날(5월 1일)과 비슷하다.


● 연말연시(年末年始休み)의 연휴

일본에는 종교를 떠나 세계인의 명절이 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성탄절)나 사월 초파일인 석가탄신일은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이 '특정의 종교에 특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2019년 유례없이 생존하고 있는 일왕이 즉위에서 물러나고 아들이 즉위함에 따라 수년 동안 12월의 유일한 공휴일이었던 12월 23일(일왕의 생일)이 사라졌다. 덕분에 현재 일본의 12월에는 공휴일이 없다.

하지만, 아쉬워할 것만은 아닌 것이, 대부분의 기관단체는 연말연시(年末年始休み)의 연휴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 골든위크, 오봉에 이어 연말연시 연휴는 일본의 3대 명절(연휴)로 여겨진다. 연휴는 보통 12월 29일 전후로 시작해 1월 3일 전후까지 약 1주일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어디를 가나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파티 분위기에 취해 있는 소위 '대목'이라는 우리나라와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일본의 많은 가게와 상점, 관광지 등은 이때 문을 닫기도 한다. 대신 연휴기간 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교통기관은 붐비고 복잡하며 숙박시설도 평소 때보다 눈에 띄게 비싸다.




나열해 보니 생각보다 공휴일이 많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9월의 실버 위크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나야 물론 해당사항이 없는 유학생이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연휴 때마다 공항으로 향하던 인파는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산으로 바다로 캠핑 장비를 들고 떠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캠핑이라곤 중학교 때 다녀온 야영캠프 이후로 상상 조차 못했던 내가 벌써 몇 번을 다녀왔으니.


“이게 무슨 연휴야.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속상해하는 넋두리를 종종 듣게 된다. 답답한 그 마음 누가 모를까. 

부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올해의 '명절'을 의미 있게 보내기를 바란다.


이곳 달력에는 없지만, 내 마음속의 빨간 날.

추석에는 한국 마트에서 송편 한 팩을 사야겠다.

▲ 올림픽으로 공휴일 날짜가 조정되기 이전에 제작된 달력. 여전히 스포츠의 날이 10월 둘째 주 월요일에 빨갛게 표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모두 일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
▲ 문화의 날과 근로 감사의 날이 예쁘게 “위~아래~위위~아래에”
▲ 이런 12월의 달력이라니! 크리스마스가 빨간색이 아니다.
▲ 여태까지 몰랐는데 다이어리의 달력에는 공휴일 표시가 하나도 없다. 누가 보면 회사에서 열심히 일만 하라고(?) 나눠준 업무노트인 줄 알겠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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