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 쌓인 코로나 시대의 풍경
오랜 부재의 시간만큼 우편함은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다이얼식 손잡이를 좌우로 돌려 비밀번호를 맞췄다.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 왼쪽으로 두 번이었나? 4가 먼저였나?" 우편함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누가 봤다면 의심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줘 앞으로 당기자 '딸깍' 소리가 났다. 문을 위로 들어 올리니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그동안 이 작은 공간에 박혀 있던 우편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 정도로 많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일단 들고 있던 에코백 하나를 꺼내 주워 담았다. 다 담고 보니 제법 묵직했다. 저 작은 공간에 쑤셔 넣느라 배달하시는 분도 어지간히 진땀을 뺐겠다 싶었다.
집으로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다. 세 계절 동안 갇혀있던 공기가 풍선 터지듯 밀려 나왔다. 오죽 답답했을까!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못 느낀 건지, 다행히 상태가 괜찮았던 건지 가장 염려했던 '쾌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우선 집에 있는 창문을 모두 열었다. '끼익' 창틀에 쌓인 먼지 때문인지 안쪽 유리문과 달리 바깥쪽의 문은 괴상한 소리를 냈다. 다음으로 화장실과 욕실, 세탁실을 살폈다. 감사하게도 곰팡이는 없었다. 수개월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물건을 돌아보았다. 그리웠던 이 공간.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애를 썼었던가!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물티슈를 집어 들었다. '뚜벅뚜벅' 베란다로 이어지는 거실 유리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우선 닦아야 했다. 티슈 한 장, 두 장. 물티슈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양의 먼지였다. 다시 일어나 청소할 때 쓰려고 따로 빼 두었던 수건 하나를 꺼내왔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도 - 집에 들어온 지 10분도 안되었지만 - 이상하게 여기에 '쭉' 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세제와 수건, 물티슈와 돌돌이(먼지 제거 테이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 쓰는 노끈까지 자연스럽게 하나씩 꺼내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 '자전거 타는 법'처럼 자연스럽게 내 몸이 반응했다.
두 시간 정도 청소를 한 후 겨우 소파에 앉았다. 그제야 아까 마구잡이로 챙겨 온 우편물이 생각났다. 앉아있을 때가 아니지. '끄응' 다시 일어나 거실에 있는 테이블 위에 우편물을 쏟았다. 50장이 뭐야 100장은 훌쩍 넘는 양이었다. 우편물뿐 아니라, 종종 아무 집 우편함에나 쑤셔 넣는 전단지(치라시, チラシ)가 유난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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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투명한 비닐에 든 손바닥만 한 전단지였다. 상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新しい生活様式の実践例」
"새로운 생활양식의 실천 예"
아아! 이거였구나. 마침내, 한동안 우리나라 뉴스에도 떠들썩했던 문제(?)의 마스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일명 '아베노마스크(アベノマスク)! 일본의 아베 전 수상의 실패한 코로나 방역 대책의 하나로 회자되며 일본 국민마저 당황스러워했던 마스크였다. 비닐 포장 안에는 코로나 방역 지침을 안내한 광고지 하나와 도톰한 마스크 두 장이 들어있었다.
조심히 비닐을 뜯었다. 사이즈는 말도 안 되게 작았다. 웬만큼 얼굴이 작은 사람이 아니고는 제대로 얼굴을 가리기 어려운 크기였다. 코와 입을 겨우 가리는 작고 아담한 사각형의 천이었다. 아베 전 수상이 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국회에 앉아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건 마스크가 아니라 '안대' 아니냐며 비아냥 거렸던 인터넷의 한 댓글이 생각나 '풉' 웃었다.
우편물을 하나씩 꺼내 확인했다. 시기가 훌쩍 지나 지금은 해당사항이 없는 지원금에 대한 안내도 있었고, 매달 빠져나간 공과금 영수증이 꼬박꼬박 들어 있었다. 주변 상점의 오픈과 세일 소식, 면역력 증진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전단지가 꽤 많았다.
우리가 돌아오지 못했던 시간. 지나간 계절이 고스란히 이곳에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없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버릴 것과 보관해야 할 우편물을 구분하고 나니 벌써 30분이 지났다. 슬슬 배가 고팠다.
당연히 집엔 먹을 게 없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엌의 선반장을 열었다. 라면 몇 봉지와 김, 참치와 옥수수캔, 파스타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물론 먹기에는 곤란한 상태였다. 냉장고 안은 지난 1월 한국으로 가기 전 대충 정리를 했던 터라, 다행히 상한 음식은 없었다. 마시다 만 생수 한 병이 있었지만 그대로 개수대에 흘려보냈다. '간단히 뭐라도 먹어야겠다'. 지갑을 챙겼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의 유리문까지 달음질하는 바람이 얼굴을 스쳐갔다. 서울의 겨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화한 이곳의 바람은 상쾌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맞다! 공기가 유난히 상쾌하다 느껴질 땐, 마스크를 안 썼다는 신호라 했지. 벗어둔 마스크를 찾았다. 일본에 돌아올 때 야무지게 챙겨 온 귀한 KF 인증 마스크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 나갈 때 소지할 수 있는 마스크 수량에는 제한이 있었다. 다행히 11월은 마스크 수출 규제도 풀린 때였던 터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많은 양의 마스크를 챙겨 왔었다. 아껴 쓰고 있는 귀한 마스크를 귀에 걸었다.
쓸쓸하게 남겨진 '유명한 마스크'가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폭신폭신해 보이는 저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 일은 없을 듯하다.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새로운 생활양식의 실천은 아무래도 한국산 마스크와 함께 시작될 것 같다.
※ [참고] 글을 작성한 시기는 2020년 11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