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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21. 2021

늦깎이 올림픽


2021년에 열리는데 왜
'2020 도쿄올림픽'이라고 하는지
참 모르겠단 말이에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저씨는 가게 안의 상품을 상품을 둘러보며 언짢은 듯 말한다. 이곳은 기후현(岐阜県) 다카야마시(高山市)에 위치한 한 기념품 가게. 옛 전통의 모습을 간직한 운치 있는 거리와 마을, 문화유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중 다카야마 시내에 흐르는 미야가와 강 동쪽에는 오래된 거리가 남아있는데 성곽도시인 다카야마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술 양조장과 격자 집 등 에도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산마치는 사계절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헌데, 여름휴가철인 지금, 거리가 너무 한산하다. 어느 가게를 둘러봐도 서너 명의 손님이 서성일 뿐, 지역의 유명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작은 가게 안에는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생활용품, 그리고 액세서리가 즐비하다. 주인의 눈을 피해 가게 구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둘러보고 싶다. 그런데 이 아저씨, 올림픽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묻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작년에 올림픽을 못한다고 아니 연기한다고 분명히 그랬잖아요. 1년 후에 하겠다고. 그럼 당연히 올해 2021년을 타이틀로 내걸고 올림픽이 열리는 게 맞지 않아요?"


안되겠군! 구경은 내려놓고 아저씨의 이야기나 들어야겠다. 그는 지난 해 올림픽 연기 결정 소식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다. 기존에 제작했던 2020 숫자가 박힌 기념품과 포장용 상자, 지역의 특산물 캐릭터를 응용해 올림픽 로고와 함께 인쇄한 스티커까지. 모두 2021년으로 바꿔 다시 제작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2020년을 그대로 쓴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돼요? 왜 2021년에 열리는 올림픽을 2020년으로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야. 나는... 왜 과거를 붙들고 있느냐고요."


아저씨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이 많은 상품을 미리 제작하고 준비하며 얼마나 설렜을까!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는 일본의 여름휴가철과 맞물려 있으니 평소보다 몇 배의 관광객이 밀려들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 많은 손님을 감당하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행복한 상상도 했겠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싱글벙글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안쓰럽다. 아저씨의 핑크빛 바람과 달리 1년이 지났어도 코로나 감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커녕 인근 지역의 사람들마저 찾지 않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거리는 너무 한산하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를 결정한 2020 도쿄 올림픽. 이곳에 있지만 올림픽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월드컵(WorldCup), 세계박람회(EXPO)와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라 불리는 올림픽(Olympic)이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 치러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TV를 틀어야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거리를 다녀도 올림픽으로 인한 들뜸과 축제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7월 23일에는 축하쇼를 준비하는 전투기들의 요란한 등장으로 잠시 올림픽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메달 획득 속보 뉴스와 함께 "닛뽄(일본)! 닛뽄(일본)!"을 열렬히 외치는 사람들도 금세 차분해져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거리에는 흔한 플래카드 하나 보이지 않고, 겨우 "일본 국가대표 선수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정도의 응원 문구를 마트나 시내 전광판 광고를 통해 몇 번 본 적이 있을 뿐이다. 물론 코로나 감염 속도 추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우려해 외출을 자주 하지 않은 나의 시야가 좁은 탓도 있겠지. 그렇다 해도 확실히 이번 올림픽은 태어나 몇 번 경험한 다른 올림픽의 분위기와는 눈에 띄게 차이가 느껴진다.


지금도 긴급사태 발효가 이어지고 있고, 가게들은 여전히 저녁 8시에 영업을 마친다. 술은 물론 판매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간간히 들리는 소문에는 방역지침을 어기고 술을 판매하는 곳이 제법 있는 듯하다.) 가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니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집 공간이 여의치 않은 젊은 친구들은 공원의 벤치나, 공공시설물 계단에 삼삼오오 모인다. 이 또한 일본 정부의 방역 지침에는 삼가야 할 행동으로 예를 들고 있지만 지키는 이들은 드물다. 그들은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와 몇 가지 안주를 놓고 습한 여름밤의 공기를 음악 삼아 술을 마신다. 간간이 너무 취한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여성의 모습은 눈에 선하다.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는 거 아니야."

"너도 금메달 따 버려! 까짓것! 일등 해버려!"


같은 말을 반복하며 뭐가 그리 억울한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옷매무새는 헝클어졌고 중심을 잃은 몸은 바닥에 누운 듯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곁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남녀 두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만취 상태였다. 사람들은 행여 시비가 붙을 것을 경계하며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지나갔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을 최근에 본 적이 있었던가!




일본의 이번 올림픽 성적은 역대급이라 한다. 올림픽 선수촌 대신 일본 대표선수단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호텔에서 숙식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공평하지 않은 처사라고. 하지만, 금메달의 개수라는 결과와 함께 일부 사람들은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분위기이다. 개최 직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개최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이 "역시 일본이 해낼 줄 알았어"라며 금메달 성적에 도취해 있는 듯하다.


매 올림픽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메달로 매겨지는 성적이 다가 아니다'라며 올림픽의 정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말처럼 올림픽은 '메달 성적'이 다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올림픽 정신에만 집중하고 순간순간을 즐기자라고 마음을 다져도, 눈에 보이는 건 단 세 개의 메달. 오직 1, 2, 3 등에게만 주어지는 메달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경기의 결과에 열광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메달은 질병과 싸우는 방역 당국의 어려움이나 국가의 경제적 손해, 가까이는 당장 처리해야 할 개인사를 모두 잊게 하는 무서운 마약 같다. 오랜 시간 올림픽 하나 만을 보고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 온 선수들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치러져야 할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올림픽에 출전했던 수많은 선수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싸운 경기의 과정을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오직 자신의 나라가 몇 위를 했는지에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올림픽을 평가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릴 뿐이다.


2021년에 치른 2020 도쿄 올림픽.

2021 도쿄 올림픽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축제였다. 왜 과거를 붙들고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던 아저씨의 표정과 길 위에 쓰러져 일등을 그토록 외치던 여성의 목소리가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이곳의 사람들은 훗날 이 올림픽을 어떻게 기억할까.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2020년 도쿄 올림픽'이라며 좋은 기억만 남길까?



- 2021년 8월, 올림픽 폐막식을 하루 앞두고 -


▲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가게 주인아저씨가 북적이는 손님맞이로 즐겁게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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