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알 Oct 13. 2021

#14. 내 몸 한 편 내어주고

박남준의 <아름다운 관계>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거야.


그녀는 늘 가장 예쁜 것을 나에게 내민다. 주위에 퍼주기만 하는 자신의 엄마가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내 보기엔 그녀는 모친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자신보다 남의 형편을 먼저 헤아리느라 그녀의 마음은 쉴 틈이 없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궂은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애꿎은 소리도 한다.


"그러지 마요. 그럼 안돼. 좀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요. 내 것 챙기고, 내 기분을 우선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돌아오는 답은 늘 같다.


"괜찮아. 내가 조금 참으면 되지. 다 사정이 있는 거지."


그녀를 아끼는 만큼 잔소리도 늘어간다. 홀로 외치는 메아리일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자격이 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그러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은 적이 대체  번이야.


저 마음은 바다라도 품은 걸까. 우리가 서로를 알기 이전부터 그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토닥이는 손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그녀의 전화기와 문지방은 잠잠할 때가 없다.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녀가 필요한 이들이 오늘도 '똑똑' 문을 두드린다. 물론, 쇳덩이를 얹은 듯 고단한 날에도 그녀는 기꺼이 문을 열고 손님에게 귀를 기울인다.


사람마다 주어지는 달란트가 있다. 누구는 총명한 머리를, 누구는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과 어학 능력을, 또 누구는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자랑한다. 세상이 열광하고 동경하는 달란트는 차고 넘친다. 사람들이 자신 있게 자랑하는 것들 보다, 그녀가 가진 달란트에 마음이 간다. 그리고, 나이를 먹지만 자꾸 옹졸해지는 어른답지 못한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마다 그녀의 '약손'을 떠올린다. 고령자는 늘어가지만 '진짜 어른' 만나기가 힘들다는 시대. '나잇값' 제대로 하는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역시, 자신이 없다. 늘어나는 주름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지만, 생각과 행동은 늘 엇박자이다.


자신의 몸 한 편을 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


그녀가 내어 준 소중한 마음 한 구석에 나는 어떤 씨를 뿌리내리고 싹을 틔워야 할까.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늘 다른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쓰다듬기에 바쁜 그녀에게 이번 가을은 퍽 고된 계절이다. 축 처진 어깨를 토닥이며 기도할 뿐이다.


이 누추한 마음에라도 그녀가 기대어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 무릎을 내주었지만, 사실 녀석의 온기에 기대고 있다.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시인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매거진의 이전글 #13. 그 과 나와서 밥은 먹고 사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