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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현진 Apr 29. 2023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절대 벗겨지지 않는 콩깍지, 타인을 향한 색안경

요즘은 츄리닝을 입고 수련 합니다..너무 편하고 좋네요



친하답시고  “너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이것 만 좀 고치면..” 으로 시작해서 “나니까 너한테 이런 얘기 해주는 거 알지?"로 끝맺는 주제넘은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얘길 들으면 고맙기는 커녕 ‘뭔 상관? 니가 날 알아?’라는 고까운 마음이 불쑥 든다.


이렇게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반응 하지만 그 옛날 철 없던 시절엔 나도 이런 말을 가까운 누군가를 위한다는 착각에 취해 곧 잘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진심으로 내가 옳다고 믿으며 그런 충고를 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은근한 뿌듯함까지 느꼈다. (오 마이..ㅠ)


내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근거 없는 믿음, 오만한 착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어떤 사람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마치 그 사람을 다 아는 양 나대는 이 병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우리는 꽤 자주, 습관적으로 타인에 대해 주관적으로 또 함부로 평가한다. 특정 시기, 짧은 순간에 잠시 겪은 타인의 일면 만으로 한 사람을 섣불리 판단 하고서는 너무나 쉽게 '누구는 이러이런 스타일이지..내가 걔를 잘 알아' 라며 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잔뜩 왜곡된 이미지를 영원히 그 사람이라고 믿어 버린다. 이런 행동이 얼마나 근거 없으며 상대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지는.. 본인이 당해 봐야 안다. 








퇴사를 한 지 10년 가까이 된 지금, 종종 과거 회사 동료의 경조사 혹은 우연한 자리에서 선후배들을 만나면 난감할 때가 있다. 예전과 비교해 내가 아예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졌다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거나 대놓고 너무 놀람+어색해 하는 반응 때문이다. 나도 잊어버린 까마득한 시절의 내 모습을 아직도 곱씹으며 나를 다 아는 척하는 그들 앞에서 뭐 할 말이 없다. 아 그냥 외모에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단 얘기를 돌려 깐 걸지도 모르겠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 강산은 심지어 몇 달 만에 변하기도 함) 교류가 전혀 없던 십 수년의 세월 동안 많이 변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세상 모르고 날뛰던 20대를 지나 온갖 커리어, 결혼 고민 다 이고지고 우울하게 보낸 30대를 건너 가정 꾸리고 애 낳고 기르며 나름 인생 쓴맛 종류별로 맛보면서 많이 겸손한? 40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20대 뇌청순 마냥 발랄하던 시절이랑 같으면 그거야말로 못봐줄 텐데.


저녁 회식을 대놓고 좋아하지 않던 나, 여기저기 학원 다니고 유학준비 하기 바빠 선후배와 밥 한끼 차한잔 하기 부담스러워 하던 나, 딱히 친하지 않은 동료의 경조사를 종종 까먹고 챙기지 못한 나, 선배 기분 파악 못하고 할 말은 꼭 하던 나. 써놓고 보니 나도 참 당시 선배들이 쯧쯧 혀차던 소위 '요즘애들'의 전형이었구나. 조직생활 오래 못버틴 이유를 알 것 같다.


뭐 억울한 부분도 있다. 같은 시절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 나는 의리있고 맡은 일 독하게 해내는 동료였(다고 하)고 힘들 때 술잔을 기울이며 쌓은 우정을 바탕으로 아직도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그때의 나도 항상 나쁘지만은 않았을 텐데 한 시절의 동료들이 지극히 일부 모습만으로 박제된, 나로서는 딱히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평생 기억하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를 '편견'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을 끼고 본 적은 없을까? 잠시만 떠올려 봐도 뭐 말을 말자. 나야말로 요즘 말로 '뇌피셜'로 상대를 멋대로 판단평가 하며 속단하는 데 선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아닌 척 하면서 그러고 있고, 평생 끼고 다닌 편견이란 이름의 색안경은 이제 내 피부 혹은 이목구비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하다. 






기울어진 시선. 편견. 색안경..



마음이 선뜻 가지 않던 후배가 있다. 함께 근무한 시간도 짧았고 같은 프로그램을 한 적도 없어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데다 후배는 종종 내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포인트에서 사무실 한 복판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고 뭐든지 과하게 열심히, 목숨걸고 하는 스타일이라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좀 피곤하고 부담스러웠다. 회사에 다니던 내내 딱히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회사를 관둔 뒤 그 친구는 내 기억에서 자연히 멀어졌다.


가끔 그 후배가 과거 동료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를 때마다 회사 생활은 잘 할지, 적응을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건 아닌 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웬걸. 요즘의 그는 차곡차곡 노력으로 쌓은 재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핵인싸로 잘 지내고 있다. 후배의 노력 덕에 지금은 나와도 순수하게 서로의 안녕을 빌며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선배들에게 예쁨 받고싶어서 열심히 했을 테고, 원래 평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왔기에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방송국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걸 텐데 나는 그 모습이 왜 불편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세상에, 나도 잊고 있던 너무나 어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후배 입사 즈음 공교롭게도 내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그 친구에 대해 좋지 않은 뒷말을 전해 들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 지, 누가 잘했고 잘못 했는지 등을 따질 생각도 않고 그저 지나가는 한 마디, 지극히 주관적인 타인의 평가 하나에 기대어 후배의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각인해 버린 것이다.




살면서 이런 일들은 꽤 자주 일어난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영 마뜩찮은 지인이 누군가에게는 세상 사람 좋고 다정한 아군일 수도,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스치는 매너 좋은 이웃 남자는 사실 가족에겐 세상 까칠하고 자주 큰소리를 내는 권위적인 가장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랜 시간 꾸준히 요가를 하는 걸 보고 많은 지인들이 자신도 요가를 하고싶다고 물어 보는데 나는 요가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심신 단련에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누군가는 정작 해보니 너무 정적이라, 살이 왜 안 빠지냐, 종교색이 부담스러워서 등등의 이유로 맞지 않는다며 금새 다른 취미를 찾기도 한다.


내가 요즘 고민중인 요가 강사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업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각자 처한 상황이나 경험치에 따라 해 주는 조언이 너무나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너무 쉽게 자신의 한정된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 시켜 말한다. 이래서 너무 좋아 별로야, 해봤는데 이래서 안 돼, 너같은 스타일은(나같은 스타일이 뭔데?) 안하는 게 나아, 내가 경험 해봐서 알아..등.


하지만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저 전해 듣고는 모른다. 살면서 대부분의 낯선 일들과 새로운 사람들은 말로만 들을 때와 내가 직접 부딪히고 느껴 봤을 때 그 실체와 본질은 너무나 다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끝없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하는 이유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노력. 사트야..진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퀘스트를 수행하듯 살다보면 매 순간 진실하게, 모든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적어도 어떤 상황이나 사람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들때면 혹시 또 내가 습관적으로 편견의 색안경을 껴버린 건 아닌지, 지금의 불편함이 상대로인한 것이 아닌 내가 가진 편견이나 비뚤어진 마음이 만들어 내고 부풀린 게 아닌지 종종 의심해 보곤 한다. 이 과정만으로도 일상에서 경험하는 분노, 화,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에 아주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습관적으로, 또 관성적으로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질을 하려다가 문득 멈춘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생각은 상대가 만드는 게 아닌 내가 만들어 쓰는 색안경을 통해서 보게되는 나의 욕망과 편견의 반영임을 되새겨 본다. 내 요가 스승님이 공유하신 카톡 메시지의 일부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주할 용기, 내 생각이 사실이 아님을 인정할 용기,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를 용서할 용기.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내 삶을 뒤흔든 것까지..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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