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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ie Oct 23. 2022

남해고속도로 휴게소의 추억

선한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니 돈이 들어오는 길이 보이더라

얼마 전 실리콘 벨리에 추석이 지나갔다. 오를 때로 오른 고물가 덕에 송편 한 닢 입에 겨우 물고 추석을 보냈다. 내 어릴 적 우리 집의 추석 풍경은 여느 가정과 사뭇 달랐다. 실향민 출신의 아버지를 배려해 경상도 출신인 엄마는 거주지인 전라도식이 아닌 녹두 빈대떡과 왕만두로 황해도식 추석상을 마련하곤 하셨다. 풍성하게 만둣국 한 대접을 먹고 나면 엄마는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인 진주로 외조부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곤 했었다.


광주에서 경남 진주로 가는 길은 호남고속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남해고속버스로 갈아타야만 했었는데 그 갈아타는 곳에 자그마한 휴게소가 있었다. 그 해에는 엄마가 나만 데리고 외가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휴게소에 앉아 엄마는 아득한 옛날 일을 아스라이 떠오르는 대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친정이란 곳은 항상 그리운 곳이지. 여자는 친정에서 형제들과 성장하는 것을 동문수학(同門受學)한다고 비유하고 시집가서 사는 것을 수학(受學)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이 그 배움대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단다. 그래서 시집가서 살게 되면 항상 그 동문수학하던 형제들이 그립고 부모님이 항상 그리운 법이지..."


"그나저나 엄마, 엄마는 어떻게 장사를 하게 되었을까요? 6.25 전쟁 후 젊은 여성이 나서서 험하게 장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유교적인 집안에서 곱디곱게 성장한 엄마가 어떻게 대문 밖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날도 오늘처럼 친정에 다녀오는데, 친정아버지가 6.25 전쟁 후 삶의 터전도 없이 궁핍하게 생활하시는 게 너무 눈에 밟히는 기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를 좀 더 편안하게 보필할 수 있을까 싶데.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동네 어귀를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동네 아낙들이 빨래터에서 생전 처음 보는 빨랫비누로 빨래를 하고 있는 기라.  무심코 그들의 말을 엿듣다 보니 아이디어가 퍼뜩 떠오르데. 그래가 손에 쥔 기차 여비로 저 비누를 사서 걸어가는 길에 두배만 받고 팔아도 여비 하고 마진이 안 남겠나 싶은 거야. 그 마진을 아버지께 드리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데. 그래가 바로 동네 아낙들에게 물어물어 여비로 빨랫비누를 사니 그게 그 당시 서울에서만 판매되던  <무궁화 세탁비누 > 3장 값이 되는기라. 그걸 들고 기찻길을 따라 쭈욱 걷다 보니 그제야 정신이 드는데  누가 그 비누를 사줄지, 얼마에 팔지, 어떻게 홍보하고 팔아야 할지 조금 막막해지데... 그래도 부모에게 드릴 거라 마음먹어서 그런가 하나하나씩 얽힌 실타래 풀리듯 방도가 떠오르는기라..."


우리나라 최초의 세탁비누 / 경상도 아지메의 첫 장사 밑천이 되다.

어린 딸에게 독백처럼 풀어내는 지난 얘기에 외할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신지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 퍼뜩 드는 생각이 누구에게 이 빨랫비누가 가장 필요할꼬 싶데. 근데 그 필요한 사람이 또 이 빨랫비누를 살 형편이 되어야 하는 기라.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비누 3장을 꼭 쥐고 기찻길을 따라 걷는데 어느 냇가에 형편이 좀 나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는기라. 그래 이 동네를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물 한 모금 얻어먹자 하면서 말을 붙였지. 내가 진주시에 들어갔다가 오면서 이런 비누를 처음 보고 사 오는 길이다 그랬더니 어디서 구할 수 있나 하면서 단방에 관심을 보이는 기라. 그러더니 물건을 만난 김에 산다고 3장을 몽땅 다 사삐리더라고. 그때 시세와 상관없이 무턱대고 값을 쳐주는 데로 받고 보니 아까 내가 샀던 빨랫비누 값의 딱 3 배값이 된다 아이가. 그때 생각하믄 아버지를 위해 돈을 만들려고 해서 그랬는지 하늘도 감동했는가 보다 그리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첫 장사를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겠노. 말주변도 없고 그 비누를 써본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저걸 되팔아 돈을 만들어 우리 아버지 갖다 드려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어찌 그렇게 쉽게 첫 장사를 뚫었나 모르겠다 아이가.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무조건 도와 준기라꼬. 효심(孝心)으로 선한 목적을 세우니 돈이 들어오는 길이 보였던 기라. 신통 하제?"

 

돈을 모으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살아가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눈이 빠지게 돈이 들어오는 길을 찾고 또 찾으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돈' 돈' 하는가. '돈'이란 삶의 수단으로써 필요한 것일 뿐 삶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 삶의 수단인 '현금'이 어느 곳으로 흐르는지에 세계인의 삶의 초점이 조정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작고 아담한 수익구조를 가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익 창출을 기대하는가를 늘 생각하며 차근차근히 사업을 추진해가고 있다. 순수하게 때로는 바보 가게처럼 보일지라도, 비록 느리게 성장하더라도 게으름이 아닌 정직하게 사업을 꾸려가고 싶다. 울 엄마, 경상도 아지메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 사업의 목적과 목표가 하늘의 뜻에 합당하다면 내 작은 눈에도 돈이 들어오는 길이 뚜렷이 보이리라.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황혼의 노을이 남강 위로 은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빨랫비누 3장으로 시작한 장사가 점점 수익이 불어나서 결국에는 아버지 집도 새로 사드리고 살림을 도와 드렸더니 아들도 아니고 딸인 네가 어떻게 이런 집을 사줄 수가 있느냐 하시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경상도 아지메의 담담한 고백이 붉은 노을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선한 꿈을 꾸고 현실이 조금 힘들더라도 그 꿈을 위해 고민하고 도전하는 삶의 가치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던 추억이다.


전라도에서 47년을 사업하며 살고도 쉽게 바뀌지 않던 경상도 아지메의 진주 사투리 한마디가 오늘 귓가에 울려 퍼진다 "니 그 쿠이 내 그쿠지, 니 안 쿠크면 내 그쿠나 (표준말 번역: 네가 그러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네가 안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하겠느냐)" 경상도 아지메가 오늘도 많이 그립다. 그리고 오늘은 그날의 그 추억을 반추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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