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햇볕에서 김부각을 만들다니...
화씨 90도, 100도가 오르내리는 폭염주의보가 벨리 골짜기에 내렸다. 밤잠을 설칠 정도로 무더위가 계속되는 주말이다. 아침부터 벌써 거리에는 열기 가득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식재료도 구매하고 피서도 할 겸해서 동네 Whole Food Market에 들어섰다. Whole Food Market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유기농 식료품점이다. 세계 각 나라의 신선하고 청결한 유기농 식재료들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어 구매의 즐거움도 있지만 각 나라의 대표급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관찰하는 일도 그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틈틈이 이런 유기농 대형마트를 둘러보는 것이 생활 속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나 구매자의 입장보다는 내가 만약 오너라면 어떻게 상품들을 포장하고 배열할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하며 둘러보곤 한다. 자연스레 현시대 사람들의 건강식습관의 트렌드도 눈에 들어오고 어떻게 포장해야 그 상품의 가치가 일목요연하게 소비자에게 순간적으로 잘 전달되는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몇 해 동안 K-푸드는 열풍을 넘어서 가히 광풍으로 몰아쳤다. 그 많은 K-Food 식재료 중에 LAVER 또는 GIM이라고 표기되는 “김’은 여러 한국회사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조 생산되어 이곳의 여러 나라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진다.
우리 집에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경상도 아지메가 70 평생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았다. 고립무원 미국으로 시집보낸 작은딸의 사는 모습도 살펴보고 갓 태어난 외손녀의 산후조리도 도울 겸 친정엄마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 공항에 내렸다. 영어한마디도 모르는 엄마가 이민가방에 어마어마한 짐을 끌고, 미리 써온 영어쪽지와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SF공항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영접 나간 남편과 마주 하였다.
30여 년 전이니 지금처럼 고국왕래가 빈번하거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환이 거의 없던 때이라 엄마가 발품으로 여기저기 정보를 얻어 준비한 짐들은 정말 엄청났다. 아이들 용품과 가족들의 의류는 물론이고 한국 토종 먹거리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업가 특유의 구매력으로 생산지 도매상에서 품질 좋은 식재료들을 고르고 골라 푸짐하게 아니 넘치게 싸들고 온 모양새였다.
그동안 딸네 가족들을 이국 객지에서 가족처럼 돌봐준 이웃지인들에게 아낌없이 이것저것 나눠주었다. 그러고도 진도에서부터 공수해 온 김이 100장들이 20팩이나 아직 남아 거실 한쪽의 이민가방에서 미처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 있었다.
2000장의 김을 아파트의 냉장고에 보관하기에는 턱없이 공간이 부족했었다. 헤프다 싶을 만큼 넘치는 엄마의 통 큼을 끊임없이 원망(?)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걱정대신 해결점을 찾아 생각 중이었던 것이다.
일단 사위를 앞세우고 지역의 한인마켓의 시장조사를 마친 엄마는 아파트 매니저의 허락하에 낮시간동안 비어있는 파킹장의 한쪽에 깨끗한 비닐장과 채반을 폈다. 찹쌀풀을 머금은 김은 볕 좋은 CA의 햇살을 잘 받아들여 고작 두어 시간 만에 맛있고 귀한 Homemade상품으로 완성되었다. 브랜드도 없고 이름도 없이 그렇게 정성으로 만들어진 김부각은 적당량으로 소분되어 150개의 상품이 되었다. 한국마켓에 50개씩 Bulk Sale로 넘기니 엄마가 타고 왔던 비행기삯만큼의 마진을 남겼다. 그리고 그렇게 획득한 마진은 고스란히 교회의 선교헌금으로 드려졌다. 70세 노파의 뛰어난 그날의 사업수완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경상도 아지메는 늘 그랬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다가오더라도 오히려 차분하고 침착한 마음과 생각으로 원망하고 걱정하고 주저앉기보다는 그 너머의 해결점을 찾아내곤 하였다. 생각뿐 만 아니라 말씨 또한 늘 에너지가 넘치고 강한 확신으로 가득했었다.
생각의 차이다.
생각과 관점의 차이다.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계속해서 희망적인 마음과 강한 자기 확신들이 연줄연줄 이어져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똑같은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면초가에 갇히더라도 생각을 해야 한다.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반드시 살아날 방법이 생기더라는 엄마의 인생 조언이 오늘 나의 뇌리 속에 파고든다.
참 대단한 울 엄마, 경상도 아지메가 오늘도 많이 그립다.